<루블린 야외 박물관>, 동폴란드 민속촌의 유산
같은 여행지라 하더라도, 방문한 사람과 시기에 따라 그 여행지의 느낌은 다르다. 날씨에 따라 그 도시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기도 하니까 말이다. 일례로 '자코파네'에 대한 여행글을 남긴 한 사람의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분은 흐리고 비 오는 날씨에 자코파네를 방문해서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고 한다. 그 후기를 보니 아쉬웠다. 자코파네 같은 자연의 동네는 날씨가 좋을 때 가는 게 최고이기 때문이다.
브런치 플랫폼의 독자들 중에는 거의 없을 것 같은데, 여러분 중에서 루블린을 다녀온 사람들은 루블린 하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가? 투리가 브런치 글들을 좀 살펴봤는데, 루블린에 대한 후기를 밝히는 사람은 투리 이외에는 없어 보인다. 맙소사, 비교할 대상이 없다니. 그 말은 즉 브런치의 독자들은 오로지 투리의 글을 통해서만 루블린의 이미지를 가져간다는 얘기 아닌가? 어쩔 수 없지, 본인이 책임을 가지고 루블린을 알리는 수밖에!
어느 폴란드의 도시나 마찬가지지만, 투리는 루블린 하면 먼저 구시가지가 떠오른다. 여기까지는 똑같지만, 그다음부터가 다르다. 루블린에 대해 구시가지 다음으로 생각나는 이미지는 이번 글의 배경 사진, 풍차 사진이다. 그것도 그냥 사진이 아니라, 매우 추운 날씨에 눈으로 덮인 풍차 사진 말이다. 왜 그렇냐고? 그만큼 이번 관광지는 투리에게는 추운 곳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투리가 교환학생 시절에 방문한 관광지들 중에서는 이곳을 제일 오들오들 떨면서 관광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박물관에서 찍은 사진의 감성은 유일하리만치 그 특유의 고즈넉한 감성이 있었기에, 본인은 이 박물관을 끝까지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이번 글에서는 그 아름다운 사진을 공유하면서, 동시에 과거 루블린 사람들의 삶을 담아낸 '루블린 야외박물관'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다!
2025년 4월 6일, 루블린에서의 셋째 날 오전.
최고로 화창한 날씨였던 첫째 날과 다르게, 셋째 날은 아침부터 저녁 내내 도시가 눈으로 뒤덮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따스한 햇빛 기운은 어디 가고, 이 날은 살을 에는 추위가 투리의 몸을 오들오들 떨게 했다. 하필이면 이런 상황에서 여행하기로 계획한 곳들은 모두 야외 관광지. 감기나 걸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투리는 바람을 피해 겨우겨우 관광지로 향했다.
해당 박물관은 '루블린 야외박물관(Muzeum Wsi Lubelskiej w Lublinie, 영어로 Lublin Village Open Air Museum)'이라는 곳으로, 루블린에서 제일 큰 야외 민속박물관이다. 공식 설명에 따르면 이 박물관은 폴란드에서 가장 큰 축에 속하는 야외 박물관들 중 하나라고 한다.
유럽에는 야외박물관들이 꽤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박물관에서 눈여겨볼 점은 전시의 구성인데, 이 부지에는 마을(농가), 귀족 저택, 1930년대 소도시, 목조 교회(가톨릭과 그리스 가톨릭), 풍차, 밭과 농경지 등 매우 다양한 유형의 전통문화와 건축이 함께 보존되어 있다. 이런 구성을 가지고 있는 야외박물관은 상대적으로 드문 것으로 알고 있다.
간략한 배경설명은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고, 그러면 어디 한 번 표를 사고 밖으로 나가볼까? 좀 많이 춥긴 하지만 이왕 멀리 여기까지 온 거,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가보자! 참고로 전시관의 시작은 오른쪽부터가 시작이니 나중에 직접 방문하실 분들은 참고해 주시길!
박물관을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건축물은 위 사진의 풍차. 이 야외박물관의 랜드마크(?) 되시는 풍차는 1918년에 지어진 건축물로, 지붕 부분만 날개와 회전축과 함께 회전하는 형태(Smock mill)로 설계되었다. 루블린에서 주로 만들어졌던 풍차는 몸통 전체가 통째로 돌아가는 형태의 풍차(Post mill)였다는데, 사진의 풍차는 건물의 윗부분만 돌아가는 특징을 가진다.
원래 이 풍차는 지그문투프(Zygmuntów)라는 포즈난 쪽 지역에서 지어졌는데, 1976년에 이 박물관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 건물은 루블린 야외박물관에서 가장 처음으로 옮겨진 건물이기도 하다.
풍차를 둘러본 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농가 마을 구역! 이 마을촌은 전체적으로 도로를 따라 정착촌 형태를 띠고 있는 곳이었는데, 각 집들의 형태에 따라 그 집에 거주했던 사람들의 생활수준이나 양식도 가늠할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저 위의 검정 오두막집은 대장장이의 집이고, 아래의 두 사진은 농장을 운영하는 사람의 집 형태이다. 한 번 좀 더 안을 들여다볼까.
확실히 시골 민속촌이라서 그런지, 집 안은 상당히 텅텅 비어 있는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생각보다는 안이 깔끔한 벽돌 형태라서 조금은 놀랐다. 겉으로 봤을 때는 나무로만 만들어진 줄 알았는데 말이다.
대충 지도를 보니, 루블린 민속촌은 아까 보여준 풍차나 다른 농장 건물들을 포함해서 총 10개가량 존재했다. 전시된 모든 건물들을 합하면 총 56개로, 약 24만 m² 이상의 넓이를 자랑한다. 꽤 넓지 않은가? 투리도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건물들을 하나하나 둘러봤는데, 생각보다 지도를 따라 모든 건물들을 구경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만큼 다른 건물들의 전시관이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투리가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는 날씨가 추운 데다가 눈까지 내린 뒤라 다른 관광객들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본인이 찍은 마을 사진들을 보면 사람의 온기가 떠난 텅 빈 마을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전시관은 박물관이라 당연히 지속적으로 관리를 하는 곳이니 오해 마시길.
이때가 겨울이라서 그렇지, 특별한 계절에는 해당 야외 시설에서 농사철 축제나 전통 행사, 혹은 여러 교육 프로그램이나 문화 행사가 진행된다고 한다. 그 말인즉슨 이 박물관은 여전히 수요가 많다는 얘기겠지? 그렇지 않다면 1970년에 열린 이 야외박물관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테니까 말이다.
이 박물관이 생생하게 유지 중이라는 또 하나의 증거. 가축들이 실제로 이 민속촌 안에 있다! 야외박물관을 거의 처음 방문하는 투리 입장에서는, 이렇게 동물들까지 재현된 모습을 보면서 "이게 왜 진짜지?"라고 생각하며 어안이 벙벙했다. 보통 동물원도 사람들 사이에 가림막을 두는데, 여기는 아예 그런 것도 없었다. 민속촌을 보여준답시고 가축들까지 라이브로 관리할 줄이야.
민속촌을 돌아다니면서 웬 동물 X 같은 형체들이 이따금씩 보였는데, 넓은 반경으로 돌아다니는 새와 닭들을 보니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여기 관리인 분들은 동물이 실종될 걱정은 안 하시려나. 그래도 동물들이 행복하게(?) 돌아다니는 걸 보면 잘 관리하고 계신다고 믿는 수밖에.
과한 걱정은 됐고, 남은 민속촌 구경이나 마저 하자. 이 농장집 같은 경우는 작은 방과 외양간, 곡물 저장고 등을 보유한 집이다. 구조로 보아 만들어진 시기는 18세기 말로, 1925년경 삼대가 함께 살았던 중산층 집의 구조를 토대로 만든 곳이라고 한다.
이만하면 민속촌 사진들은 충분히 둘러본 것 같다. 이번에는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형태의 집을 살펴보도록 하자. 다음 전시관은 1930년대 이 부근에 존재했던 소도시의 건물들이다.
확실히 소도시 전시관이라서 그런지 건물들은 아까보다는 문명이 더 발달된 상태로 보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시기 작은 마을들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둔 이 건물들은, 주거 건물들이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는 형태를 가진다. 여기서부터는 학교나 마을 회관과 같이 마을에 꼭 필요한 요소들이 있는데,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할까.
위 사진들은 당시의 감옥과 그 내부를 담아낸 사진들. 해당 감옥은 지역 사무소 옆에 위치해 있었으며, 바로 위의 왼쪽 사진은 여성 죄수의 방, 오른쪽 사진은 남성 죄수의 방으로 이용되었다. 이곳에서 감금된 사람들은 주로 경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 한해서였다고 한다.
여기는 미용실! 1930년대를 풍미한 이 마을의 이발소는 남자 손님들이 주로 머리를 자르기 위해 방문한 곳이다. 물론 가끔씩은 여성 손님들도 당시 유행했던 웨이브 머리를 하기 위해 이곳을 들렀다고 한다.
여기는 식당! 여러분이 보시는 이 식당은 1933년 루블린 근처 지역인 Zemborzyce라는 곳의 식당을 정확히 재현한 곳이라고 한다. 식당 안의 디자인은 1937년 여름 분위기를 자아내도록 만들어졌으며, 뷔페식 식사 공간도 이 안에 구비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는 얼음 창고! Adam Jaworski라는 사람이 1920년 중반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이 창고는 육류를 보관하거나 맥주를 식히는 용도로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관되는 얼음은 보통 겨울에 호수 근처에서 공수해 왔다.
드디어 이 소도시 전시관의 가장 하이라이트, 시청 건물과 우물이 등장했다! 1916년까지 행정사무소로 쓰인 시청 건물은 이후 여관, 학교 등으로 용도가 바뀌다가, 나중에는 협동조합 건물로도 이용되었다고 한다. 0층에는 의회, 시장의 사무실, 비서관이나 경찰서 등의 공간이 있다고 하지만 아쉽게도 안은 공개되지 않은 상태였다. 시청 건물뿐만 아니라 오른쪽의 우물 사진도 도시에서 나름 중심적인 요소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마을 사진들만 계속 보여주다간 피곤할 테니, 이번에는 종교 건축물들도 좀 구경해 보자.
해당 건축물은 17세기 Matczyn라는 마을 출신의 로마 가톨릭 교회이다. 요즘 교회와는 다르게 확실히 목조 양식의 건물이 특징이었는데, 안은 아담한 사이즈의 교회인 것 치고는 나름 화려했다. 그럼에도 웅장하지 않은 로컬 감성이라서 큰 성당들에 비하면 친숙했지만 말이다.
위의 원형 모양의 건축물은 18세기 Tarnoszyn라는 마을 출신의 그리스 가톨릭 양식 교회이다. 건축 양식에 차이가 느껴지는가? 폴란드의 성당과 교회들을 밥먹듯이 방문한 투리의 데이터상, 해당 교회는 확실히 내부의 장식들이 일반적인 폴란드의 성당들과는 차이점이 있었다. 투리의 독자 분들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더라도 본인의 글들을 자주 읽었다면 어떻게 다른지 대강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위의 호수에 대한 설명을 끝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사진에서 보이는 커다란 호수는 비스툴라(Vistula) 강과 이어지는 호수인데, 이 야외박물관은 그 강의 일부와 호수를 포함한 부지에 세워졌다. 이는 대부분의 전통 농촌 마을들이 강이나 하천, 습지를 끼고 형성되었던 역사를 고려한 맥락으로, 실제로 존재했던 농촌의 공간구조를 사실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의도한 것이었다.
그래서 사진 위의 창고 비스무리한 건축물들도 강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다만 해당 지역에는 거주지들보다 물 근처에서 사용되는 도구들이나 위 사진처럼 목재들을 적재하는 시설들이 주로 놓여 있었다. 투리는 이 시설들을 보기 위해 소도시 전시관에서 멀리 떨어진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손과 발이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이상이 '루블린 야외박물관'에 대한 투리의 전체적인 감상이었다. 사람이 없고 눈이 쌓인 오전 시간대에 방문해서 그런지 고요한 매력도 있었지만, 방문했을 당시에는 어찌나 추웠는지 말이다! 한 전시관 감상을 마치면 몇 번을 몸을 녹이려고 소도시 안의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남아 있는 사진으로 보니, 역시 투리의 방문은 헛되지 않았다. 여기를 다시 온다 하더라도 이렇게 눈으로 뒤덮인 풍경 사진을 찍을 기회가 몇 번이나 있겠는가?
물론 이 외에도 투리의 사진첩에는 더욱 많은 사진들이 있지만, 이 글에서 다 공개해 버리다간 독자 여러분의 흥미가 꺾일 것이다! 나머지 장소들이 궁금하신 분들은 언젠가 한 번 방문해 보셔도 좋을 듯하다. 아무튼 이렇게 투리 인생 첫 유럽 야외박물관 소개글은 끝이 났다. 한 박물관 안에 1930년대의 통나무집과 양옥집이 모두 존재해서 조합이 조금 신기했지만, 오히려 그런 특이한 조합 덕분에 3시간의 관광이 지루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투리는 다시 좋은 기행글로 찾아오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