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블린 기행] 나치 수용소, 아우슈비츠 말고 또?

<마이다네크 절멸수용소>, 동화 같은 루블린 속의 그림자

by 흑투리


한국인이라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대해 한 번쯤은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 세계 2차 대전 시절, 유대인들을 감금하고 대량 학살한 대표적인 강제 수용소 말이다. 얼핏 생각하면 가해 국가가 독일이기에 그 수용소가 독일에 있을 것 같지만, 사실 폴란드에 있다. 유럽 동부 식민지화 계획의 일환으로서 나치 독일이 크라쿠프라는 대도시 근처 오시비엥침이라는 소도시에 강제 포로수용소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관심이 없다면 잘 모를 수도 있는데, 유대인 절멸수용소는 아우슈비츠 이외에도 여러 곳들이 있다. 폴란드 안에서 절멸수용소는 트레블링카(Treblinka)나 크엘름노(Chełmno) 등 대표적인 곳들만 5군데가 넘으며, 인접 국가인 독일이나 체코 등에도 여러 수용소들이 남아 있다.



투리 본인의 루블린 첫 기행글을 본 독자들은 기억하시겠지만, 루블린은 폴란드 안의 모든 요소들이 담겨 있다고 앞서 언급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지만) 마치 폴란드 전체의 축소 버전을 보는 느낌 말이다. 이것은 수용소 역시 예외가 아니다. 루블린 외곽에는 마이다네크 수용소(Majdanek, KL Lublin)라는 절멸수용소가 기념관으로 운영을 하고 있다. 그것도 무료로 말이다. 이번 글에서는 이 수용소에 대해 다루어볼까 하는데, 그러면 이렇게 말하시는 분들도 있겠지?



"마이다네크? 아우슈비츠가 있는데...굳이 봐야 하나?"



물론 이해한다, 하지만 무시하지 마시라! 이 수용소도 아우슈비츠 못지않게 상당한 규모의 장소니까 말이다! 어쩌면 아우슈비츠 이외의 수용소를 처음 접하는 것만으로도 다가오는 의미가 다를 수도 있다. 이런 수용소가 한둘이 아니라는 걸 눈으로 체감하게 될 테니까. 그러니 아우슈비츠 감상에 앞서 전채(appetizer) 느낌으로 이번 글을 읽어주시면 좋지 않을까 싶다!








2025년 4월 6일, 다시 루블린에서의 셋째 날 오전. 겨우겨우 차가운 바람을 뚫고 이동한 끝에,



20250406_142921.jpg 멀리서 본 마이다네크 기념관.



짜잔~이번 글의 목적지에 도착! 23번 버스를 타고 계속 이동한 끝에, 드디어 그 마이다네크라는 절멸수용소에 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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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리가 맞게 도착했다고 알려주는 안내판 사진들.



다르게는 Konzentrationslager Lublin (KL Lublin)라고도 불리는 이 절멸수용소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이곳이 정확히 어떤 곳인지 모르고 들어갔다. 그래서 시설 안에 들어가니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깜짝 놀랐다. 이런 류의 절멸수용소는 과거의 아픈 기억을 많은 사람들이 보면서 소중히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방문객들이 무료로 방문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이는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도 마찬가지.



20250406_144159.jpg 기념관 안. 이곳에서 대충 허락을 받고 이동 경로 가이드 들으면서 바깥 수용소 이리저리 구경하면 된다.



다만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뭐가 문제냐! 그곳은 무료로 방문하려면 미리 몇 달 전에 예약을 해두어야 한다. 만약 원하는 날짜에 무료 예약란이 없으면 120zt가량을 낸 다음 무조건 가이드 동행으로만 예약을 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1~2주 전에 예약하려 하면 영어 가이드가 거의 없다. 본인도 이걸 몰라서 하마터면 아우슈비츠 방문을 못할 뻔했는데, 마이다네크 수용소는 원하는 때 언제든지 예약 없이 돌아다닐 수 있다! 그래서 즉흥으로 폴란드 여행계획을 세웠는데 아우슈비츠 예약이 꽉 차있을 경우 마이다네크를 대신 방문한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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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 데스크 뒷쪽에 있었던 당시의 사진들.



몸을 녹이면서 주변 사진들을 조금 구경한 뒤, 투리는 바깥으로 향했다! 절멸수용소를 돌아다니는 건 생전 처음이라, 그 규모가 얼마나 클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20250406_145151.jpg 기념관 앞의 설명판.



마이다네크 수용소의 넓이는 총 270헥타르 정도로, 아우슈비츠 전체를 합친 것보다도 더욱 큰 수준이다. 1941년 10월에 만들어진 이 수용소는 원래 소련의 전쟁포로들을 수용하는 것이 공식적인 목적이었는데, 1942년 말 절멸수용소로 개조된 뒤 수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시설이 되어버렸다. 2005년에 추산한 통계에 따르면 이곳에서 학살된 사람들의 수는 78000명에 달하며, 그중 유대인만 59000명이라고 한다. 이들 중 대부분은 라인하르트 작전 당시 희생당한 사람들이었다.



20250406_151649.jpg 이스라엘인들 틈에서 겨우 깔끔한 형태로 찍은 사진 ㅋㅋㅋ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 도착하니 마이다네크 여기저기서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가이드 투어를 하는 이스라엘인들이 있었다. 가장 처음 그들을 조우한 곳은 안내 데스크의 제안에 따라 첫 번째로 방문한 사진 위의 기념물에서였다. 수용소 오른쪽에 자리한 이 기념물은 위에서 언급한 희생자들을 기리는 목적으로 세워진 성찰의 장소인데, 벌써부터 학생으로 보이는 이스라엘인들 여럿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혼자 한국인이다 보니 어딘가 뻘쭘한 투리. 그때 무리에서 조금 떨어져 있던 이스라엘 남학생 둘이 본인을 보더니 호기심을 보이는 듯했다. 그러더니 영어로 말을 걸기 시작한 그들.


"헤이, 안녕?"


"어, 안녕...?"


"너는 어디 출신이니?"


"South Korea."


이스라엘인들한테도 한국이란 나라의 이미지가 좋은 편이었는지,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계속 말을 거는 그들.


"여기는 어떻게 온 거야?"


"폴란드에 교환학생으로 왔어."


"오, 그렇구나. 나 한국에 대해 묻고 싶은 게 하나 있어."


"뭔데?"


"그, 한국은 이스라엘이랑 같은 진영에 있는 국가임?"


당시에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이 워낙 격렬했던지라, (지금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걸 의식하다 보니 극동아시아 친서방 국가의 입장이 궁금했나 보다.


"뭐, 외교적으로 따지자면.....Maybe yes?"


팔레스타인을 과하게 진압하는 네타냐후 정권을 비호할 마음은 없지만, 그렇다고 테러단체 하마스와 같은 편에 설 수는 없는 법. 국가적으로 같은 진영에 속하기도 하고 본인이 반유대주의자도 아닌지라 그렇다고 대답하니, 그들은 Good!이라고 말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인이 여기를 알고 방문한 사실 자체가 신기한 듯) 마이다네크를 온 특별한 이유가 있어?"


"루블린을 좀 깊이 보고 싶어서 많이 돌아다니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네."



20250406_172806.jpg 투어를 마치고 복귀하는 이스라엘 여자 단체관광객들.



혼자 조용히 감상하고 싶은데, 이 이상 대화하기에는 피곤해서 본인은 대화를 대충 마치고 남학생들과 조금 거리를 두었다. 그러고 보니 좀 떨어져서 보니까 알게 된 건데, 이스라엘 단체투어는 정확히 남자랑 여자가 구분되어 있었다. 위 사진을 보면 모여있는 사람들이 여자들밖에 없지 않은가? 여자 투어 같은 경우는 남자 투어랑 반대로 본인이 조금만 붙어도 단호한 목소리로 떨어져 달라고 선을 긋는 경향을 보였다. 역시 소문대로 직설적이고 까다로운 이스라엘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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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 사진들.



여하튼 계속해서 마이다네크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이 절멸수용소는 7개의 가스실, 2개의 나무 교수대, 총 227개의 구조물이 있어 나치 강제 수용소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그러면서도 1941년 10월 1일부터 1944년 7월 22일까지 약 3년가량 운영되다가 거의 온전한 형태로 폐지되었다는 특징도 가진다.



20250406_151444.jpg 위 사진의 큰 기념물까지 가는 중간에 찍은 사진. 저 멀리서부터 수용소가 시작되는 장면으로 보아 규모가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수용소의 이름 "마이다네크"는 1941년 지역 주민들이 부른 별명에서 유래했는데, 해당 수용소가 루블린의 마이단 타타스키 게토에 인접해 있기에 '작은 마이단'이라는 뜻에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물론 이 수용소를 만든 독일 슈츠슈타펠(SS라고 부르기도 한다)은 루블린 강제 수용소라는 정식 명칭을 썼지만, 아무래도 현지 발음이 들어간 이름 쪽이 더 대중적으로 변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20250406_151538.jpg 다시 게이트로 가는 길.



20250406_152150.jpg 게이트를 지나 수용소로 향하면서.



지금 보여주고 있는 사진이 수용소로 가는 길을 찍은 사진들인데, 화물열차를 통해 수용소 입구 앞까지 이송된 수감자들은 SS의 호위를 받으며 정해진 길을 따라 이동했다고 한다. 투리 기억에는 입구에서 수용소까지 걷는데 10분 내외는 걸렸던 것 같다. 한마디로 엄청 넓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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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건물 역시 수용소로 가는 도중에 있었던 건물인데, 하얀 집(White House)이라고 불리던 이 건물은 처음에는 SS 의사의 숙소로 사용되다가 이후에 수용소장의 거처가 되었다고 한다. 체감상 입구와 수용소의 딱 중간지점에 있었던 것 같다. 참고로 과거 수감자들이 통과한 입구는 아까 봤던 기념비가 위치한 곳에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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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이동하니 서서히 보이는 수용소 건물들! 말로만 들었던 절멸수용소를 난생처음으로 직접 보게 되다니, 뭔가 두근(?)거리면서도 기분이 묘했다. 어딘가 음산한 기운이 강한 갈색 건물들과 적당히 깔린 먹구름, 그리고 눈이 덮인 풀밭들...이 모든 요소들이 마이다네크의 어두운 분위기를 더욱 극적으로 표현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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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리를 가장 먼저 반긴 수용소 건물은 38번과 39번 건물. 38번 건물은 여성 수감자들을 감시하는 사람들이 전용으로 사용한 곳이고, 39번 건물은 우체국 및 사무소 용도로 이용된 건물이다. 39번과 같은 사무용 건물들에는 수감자들의 인적 사항 및 사망 기록 정보 등이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20250406_153636.jpg 아까보다는 까마득해진 기념비. 이걸 보면 수용소가 입구에서 얼마나 떨어졌는지 대강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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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수용소들과 그 내부를 보여줄 차례다. 구체적으로 그 구조를 언급하면, 수용소가 집중적으로 모인 구간은 총 직사각형 모양의 30헥타르 넓이 공간으로, 총 5개의 구역으로 나뉜다. 각 구역은 Field I ~ V로 불리지만 편의상 1번 구역부터 5번 구역으로 대충 부르도록 하겠다. 1번 구역에는 총 20개, 나머지 구역에는 각각 22개의 수용소가 있으며, 동쪽 모퉁이 방향으로는 세면실이 설치되어 있다. 감시자들이 수용소들을 집합시킬 때에는 두 줄로 이어진 수용소들 사이 공간 쪽으로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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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 및 화장터 사진과 그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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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다네크 수용소 희생자들의 시신은 처음에는 집단 무덤에 매장되었다. 그러다가 1942년 중반부터는 화장로에서 태워졌고, 1943년부터는 아예 노천 화장용 장작더미에서 공개적으로 소각되었다. 어떻게 소각되었냐. 일단 트럭 차대 같은 물건들을 장작더미의 바닥으로 삼고, 그 위에 시신을 여러 겹으로 쌓는다. 그렇게 100구 정도의 시신이 소각되면, 그 위에 메탄올을 뿌리고 불을 붙인다. 소각시킨 뒤의 재는 퇴비에 섞어 토양 비료로 쓰였다고 한다.



20250406_154758.jpg 가스실. 사진의 독일어 표시판은 '목욕, 소독 시설'이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수감자들은 어떻게 학살당했나. 아실 분들은 아시겠지만, 가스실이다. 1942년 여름에 건설된 위의 가스실은 철근 콘크리트 천장과 세라믹 벽돌 등으로 지어졌다. 물론 겉으로는 샤워실이라고 저렇게 표시해 놓았지만, 그 방에서 물보다 다른 게 더 자주 나왔다는 건 다들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20250406_155208.jpg 가스실 안에도 실제 샤워실로 들어가기 전에 여러 설명판과 과거 사진들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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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실 안.



머릿속으로는 홀로코스트라는 사건이 인류에게 얼마나 끔찍한 인재(人災)였는지 알고 있었지만, 직접 안을 생생히 확인해 보니 다가오는 느낌이 확실히 달랐다. 차갑고 딱딱한 내부와 인간성이 결여된 분위기는 한 명의 방랑객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기분을 조용히 음미하며 묵상하고 싶었는데, 하필이면 감상 타이밍이 이스라엘 관광 단체랑 비슷해서 좀 신경이 쓰였다. 왠지 하나하나 세세하게 감상하다간 또 트집 잡힐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남은 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이 방은 좀 더 집중하면서 보고 싶어서 인내심을 가지고 투어 일행이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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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실을 다 둘러보고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피해자에 관한 전시관. 위 사진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곳이 관광객에게 열린 전시관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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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내부와 수용소 피해자들에 관한 일부 자료들.



마이다네크에서 수감된 사람들의 다수가 유대인이긴 했지만, 정치범과 인질, 여호와의 증인 소속 등의 사람들 역시 희생자들에 속했다. 이들은 수용소 안에서의 험한 조건 아래에서 굶주림과 질병, 과로 등으로 인해 고통받으며 살아갔다. 대부분은 결국 학살당하는 결말을 맞이했지만, 살아남은 자들조차도 그 기억으로 인한 정신적인 피해로 인해 고생해야 했다. 이 전시관은 마이다네크의 폐쇄 70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진 전시관으로, 당시의 수감자들에 관한 많은 내용들을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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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이야...뭐 말해 무엇하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직접 보는 것은 머리로 아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다. 수감자들이 잠들었던 공간을 들어가 봤는데, 진짜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아갔던 걸까 싶었다. 침대 상당수는 지푸라기로 덮여 있었고, 크기 자체도 좁아서 사람들이 움직이기에 불편했다. 게다가 건물 특성상 더위나 추위 등에도 너무나도 취약해 보였다. 뭐랄까, 일부러 사람 취급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담긴 환경이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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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수용소 건물 내부와 관련 지도. 오른쪽 사진의 지도에서 X 표시가 되어 있는 지역들이 수용소가 위치한 곳들이다.



그런데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살았던 죄수들을 SS 경찰들은 수용소 확장과 막노동에 투입시켰다. 대다수는 대량 학살에 의해 죽었지만, 위 과정에서 과로사나 피로 누적으로 죽은 사람들도 많았다. 여러 무리한 공사에 투입시키면서 위생적이지 않은 곳에 가두게 하니, 이쯤 되면 약한 죄수는 아예 죽으라는 식인 거다. 수용소 사진들을 보면 도로들이 깔려 있는 사진들을 아까 조금 봤을 텐데, 총 4km에 달하는 그 길들이 수감자들의 동원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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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수용소는 수감자들이 나가지 못하도록 수감 구역을 높이 2.2M의 이중 철조망으로 둘러쌓았으며, 철조망에는 고전압 전류가 흐르게 했다. 그리고 울타리를 따라서는 이동식 탐조등과 기관총으로 무장한 18개의 경비탑이 설치되었다. 수감 구역으로 통하는 출입문 옆에는 경비 초소가 배치되었고, 경비병들은 하루 24시간 동안 근무했다.



20250406_172032.jpg 방금 전에 말했던 경비 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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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들과 떨어진 화장터 내부.
20250406_170949.jpg 그 안에 있던 추모비.



결국 탈출하려고 해도 죽음이고, 계속 수감되어 있어도 개죽음인 거다. 잡아 가두려는 사람이 어찌나 많았으면 가스실로 대량 학살을 시도한 뒤 남는 자리에 다른 죄수들을 집어넣었겠는가. 이런 반인륜적인 곳을 보면서, 루블린이 마이다네크 관람을 무료로 둔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유대인을 향한 집단 학살은 아우슈비츠 한 군데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폴란드 전역이 유대인을 절멸에 동참했던 것이다. 그 광란의 도가니를 잊지 말자고, 마이다네크는 사람들에게 상기시키고 있었다.



20250406_171257.jpg 뒤에 있는 또 하나의 기념비.



그렇게 생각보다 넓은 마이다네크를 생각보다 오랜 시간 투자하면서, 투리의 3시간가량의 첫 수용소 산책은 끝을 맺었다. 처음 마이다네크에 갔을 때 절멸수용소가 이렇게 넓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각 전시관들에 대한 관리도 상당히 잘 되어 있어서, 이 수용소를 폴란드가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는지 느낄 수 있었다.



물론 투리의 독자들이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에 간다 하더라도 느끼는 것은 똑같을 수 있다. 그곳도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추모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이다네크는 투리에게 두 가지 지점에서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첫 번째는 그 아름답다고 평가받는 루블린에 이런 숨겨진 과거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그 넓은 규모의 유대인 절멸수용소가 비단 아우슈비츠에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것.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고, 이 루블린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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