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드츠카 문>, 루블린의 숨겨진 기억의 문
이번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투리의 독자들! 여러분에게는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번 글의 제목에는 불특정 다수 중 그 어느 누구에게도 어그로를 끌만한 요소가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루블린"이란 곳이 궁금한 한국인이 얼마나 되겠으며, 또 그곳에서 "유대인"의 흔적을 찾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지만 투리가 자부하는 게 한 가지 있다면, 적어도 본인은 루블린을 방문한 한국인들 중에는 꽤 많은 곳들을 방문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본인은 루블린에 3박 4일간 있지 않았나? 이렇게 한 소도시에 나름 충분한 시간을 들인다면, 그 도시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맥락까지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이를테면 유대인의 역사 같은 것들 말이다! 별생각 없이 루블린을 즉흥적으로 당일치기나 1박 2일로 여행한 사람들이라면 저런 부분을 알 수 있었을까?
본인의 마이다네크에 대한 글을 읽었다면, 루블린에서 유대인들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는지 알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글은 유대인들이 루블린에서 남긴 흔적들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그 대표적인 장소들 중 하나가 '그로드츠카 문(Brama Grodzka)'인데, 사실 이 문에 대해서는 구시가지 기행글에서 간략히 설명한 적이 있다. 여기서는 그 문 안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생각이다.
독자들에게 한 가지 좋은 얘기를 해주자면, 지금부터 보여줄 사진들은 아마 한국인들 중에서는 투리가 유일할 것이다. 왜냐하면 투리가 검색한 바로는 이 안을 들어간 사람이 찍은 사진들을 못 봤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레어한(?) 기회, 놓칠 수 없지 않겠는가? 한국인의 흔적은 어디에든 있다는 이 신화를, 투리가 다시 한번 만들어보도록 하겠다!
2025년 4월 7일, 루블린에서의 마지막 날.
루블린에 가기 전에 추천 관광지를 몇 군데 찾아본 적이 있었는데, 그중 한 군데가 'Teatr NN' 사이트를 통한 가이드 투어 관광이었다. 해당 사이트를 확인하면 가이드 투어 옵션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투리가 아는 바가 맞다면 관련 전시관은 오로지 가이트 신청만을 통해 관람 가능하다.
사진에서 보면 저렇게 옵션이 두 개가 있는 것이 보일 텐데, 그 외에도 선택할 수 있는 투어 가이드가 두 개 있다. 투리는 원래 그 아래 옵션인 'Lublin Underground Trail'을 신청하려고 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사이트 이해의 미숙함으로 인해 'The Grodzka Gate' 투어를 신청하고 말았다. 원래 계획에 차질이 생기긴 했지만, 뭐 어떤가. 어차피 가이드 투어로만 신청 가능한 관광지를 찾은 건 똑같고, 아예 아무것도 못 보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이런 예상치 못한 요소들도 자유여행의 묘미인 것 같다.
본인은 이런 경위도 모르고 'Lublin Underground Trail'이 있는 입구 쪽에서 마냥 기다렸는데, 나중에 들어가서 확인해 보니 다른 쪽에서 기다려야 했다는 충격적인 깨달음. 다행히도 허겁지겁 그로드츠카 문 안으로 들어가 보니, 가이드는 사무실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기다리고 계셨다.
예상보다 도착 시각이 늦어져서 다른 투어 관광객들한테 민폐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기다리는 사람은 가이드 이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 시간대에 신청한 사람이 본인밖에 없었는지, 아니면 원래 그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기행은 어쩌다 보니 1:1 가이드 밀착 케어(?) 관광이 되어버렸다.
아슈케나짐이신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중동인은 아닌 인상의 가이드는 본인이 투리를 안내할 가이드임을 밝히셨다. 친절히 영어로 간단한 인사와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질문을 마친 뒤, 가이드는 바로 투어 안내를 시작하셨다.
당연한 말이기는 하지만, 대다수의 한국인 기준으로는 이런 경우 소통 가능한 언어가 영어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이드를 동반하는 이런 류의 투어는 어느 정도의 영어 소통이 필수이기 때문에 교환학생을 간다면 영어를 어느 정도까지는 쓸 수 있는 상태로 만들 것을 권장드린다. 투리가 말 안 해도 다들 알고 있겠지만.
(*아슈케나짐: 중부유럽과 동유럽에 정착해 사는 유대인. 외모상 유럽 백인과 큰 차이가 없는 경우가 많다)
먼저 그로드츠카 문에 대한 설명을 간략히 하자면, 이곳은 기독교인과 유대인들이 자주 지나던 통로였다.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통로에만 그치지 않고, 루블린의 다문화적 과거 및 유대인 공동체의 삶과 홀로코스트의 역사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 기억들을 하나하나 직접 체험해 보는 것이 이 투어의 목적이다.
투리가 가이드와 함께 나간 계단이 위 사진 쪽의 방향이었는데, 이 공간부터가 투어가 시작되는 곳이다. 루블린 성 주변을 둘러보면 상당히 빈 곳들이 많은데, 원래 그쪽이 루블린 유대인들이 거주했던 공간이라고 한다. 1939년에는 루블린에 약 12만 명의 인구가 거주했는데, 그중 유대인의 숫자는 43000명이었다. 1/3을 상회하는 숫자인 셈이다. 그들 중 대다수가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는 이미 마이다네크 글에서 언급했을 것이다. 유대인 공간 역시 그 여파로 완전히 소멸되고 말았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이 문의 주인과 여러 관계자들이 그 흔적마저 잊히지 않게 하기 위해 당시와 관련된 자료들을 최대한 모아두었다고 한다. 어떤 것은 그들의 사진이었고, 어떤 것은 그들의 목소리였는데, 그 시절에 해당하는 유대인 자료라면 모두 문 안에 보관해 두었다. 그렇게 끊임없이 보존한 결과가 지금의 그로드츠카 문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보면 저렇게 계단 벽들에 많은 과거 사진들을 전시해 놓은 것 같다. 마침 저 확성기 아래의 폴란드어 구절도 그 의도를 알려주기라도 하듯, "(요약하면) 우리의 증언들은 언젠가는 어떤 다른 시대에 다시 돌아올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찾아보니 저 시는 폴란드 현대 시인 리샤르트 크리니트키(Ryszard Krynicki)의 시 구절이라는데, 수용소나 전쟁과 관련된 전시에서 자주 인용되는 시라고 한다.
다음으로 가이드가 걸음을 멈춘 곳은 저 표시판 앞. 표시판에는 이디시어로 "향신료"라고 적혀 있는데, 저 사료가 과거에 유대인들이 루블린에서 교역을 했다는 사실을 말하는 자료들 중 하나라고 한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저런 표식은 보통 루블린 유대인 지구에서 쓰이던 상점이나 창고의 벽면이었는데, 당시 유대인들은 향신료나 직물, 약재 등을 취급하면서 상업 활동을 이어나갔다고 한다.
투리가 이전 글에서 언급한 것 같은데, 유대인은 유럽에서 살아가는 데 토지 소유나 여러 분야에서 이런저런 제약이 많았다. 이로 인해 후추와 같은 고부가가치 상품들을 거래해서 많은 이윤을 남기는 상업 활동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싶다. 마침 루블린은 동유럽과 서유럽을 잇는 주요 교역 도시들 중 하나이기도 하고 말이다.
가이드의 말을 다 듣고 다음 방으로 이동한 우리.
뭔가 CD가 넘쳐나는 방처럼 생긴 이곳은, 유대인들의 말을 녹음한 것이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그들이 녹음한 말 자체에 어떤 함축적인 의미나 특별한 암시가 담긴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럼에도 그들이 굳이 이렇게까지 유대인들의 평범한 말의 나열을 녹음한 이유는, 그들의 존재와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가이드가 벽에 전시된 여러 개의 녹음기들 중 하나를 키니, 비교적 옛날에 녹음한 것 같은 남자의 목소리가 또박또박 들렸다. 그 외에도 몇 개의 녹음기들을 더 켜자,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들이 흘러나왔다. 본인은 그들의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뭐 당연히 이리디시어를 녹음한 거였겠지.
사진을 보면 각 녹음기 옆에 대응되는 설명서들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아이스크림 장수, 어떤 사람은 구두 수선공, 또 어떤 사람은 유리공의 목소리였다. 다 하나같이 평범한 사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지금은 유대인이 완전히 소수가 되어 버린 루블린이기에, 이런 일상의 기억들도 이 유대인 공동체에게는 소중하게 느껴졌던 것 아닐까. 즉, 이 방은 역사의 흐름이 아니라 사람을 말하는 공간이었다.
녹음 공간에 대한 설명을 마친 뒤, 가이드는 다른 쪽 방향으로 위 사진의 지도를 꺼냈다. 해당 지도는 세계 2차 대전이 시작된 1939년 이전의 사진으로, 루블린의 구시가지를 촬영한 사진이었다. 가이드의 언급에 따르면 지금의 구시가지와 저 사진의 구시가지 구조에 차이가 있을 텐데, 저기 있는 건물 대다수가 나치 독일에 의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치에 의해 파괴된 전적이 없는 폴란드 도시를 찾기가 더 어렵기는 하다.
다시 계단 쪽으로 올라간 가이드와 투리. 계단 통로 천장에 위 사진과 같이 여러 개의 표시판이 달린 막대가 걸려 있었는데, 가이드는 각 단어들이 유대인의 거주지들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브로드츠카 문 안의 이 장소는 "NN Theatre Center"라는 극장 전시관이라고도 언급했는데, 이런 질문을 하셨다.
"혹시 NN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시나요?"
"아니요, 무슨 말인데요?"
"NN은 라틴어로 무명, 즉 우리가 속한 근원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남겨진 많은 사람들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거나 잘 기록되지 않은 사람이죠. 이 분들을 ‘이름 있는 인간’으로 불러내 그 흔적들을 남기는 것이 이 전시관의 목적입니다. 그저 숫자와 통계로만 남은 이름 없는 존재들을, 우리는 각각의 사람들로 복원시키려 하는 겁니다. 그럼 계속 이동해 볼까요?"
고개를 끄덕거린 투리. 일단은 좀 더 들어가 보자.
가이드를 따라 어두컴컴한 방으로 들어가니, 드디어 가이드가 언급한 그 극장이 등장했다! 위의 사진으로만 봐서는 잘 안 보이겠지만, 투리가 찍은 모습은 무대의 화면이다. 이곳에서는 종종 영화 공연이 이루어졌던 장소고 지금도 문화 활동이 여기서 왕왕 벌어진다고도 하지만, 유대인들끼리 모여서 중요한 회의를 하는 곳으로 사용된다고도 한다.
아울러 극장에는 구석에 1930년대를 살았던 루블린의 사진들도 담겨있었다. 가이드가 천천히 구경하라고 말씀하셔서, 사진 몇 장을 찍어 이렇게 올려 본다. 어떤가? 개인적으로는 낭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해야 하나.
본인이 극장 구경을 어느 정도 마쳤다고 판단했는지, 가이드는 극장 무대 뒤의 창문 쪽을 활짝 열었다. 창문을 여니 순식간에 방 안에 빛이 들어오면서 구시가지의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이야, 투리가 집 창문을 여는데 이런 장면이 나왔더라면.....너무 좋겠지만 저것도 한두 번 봐야 아름답게 느껴지지. 오히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기에 투리의 눈에 예쁘게 보이는 것이다.
계속해서 다음 방으로. 이쪽은 자료실처럼 보이는 공간이었는데, 안에는 한 남자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투리가 가이드랑 같이 들어오는데도 그 남자는 그게 일상이라는 듯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한편 방 안에서는 옛날 라디오 소리가 송출되고 있었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지금 들리는 소리는 전후 생존자가 과거의 상업 광고를 직접 녹음해서 들려주는 소리라고 한다. 그리고 사진에 보이는 서류철들은 루블린에서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기록 묶음이라고 한다. 이들은 세세한 정보 하나하나까지 수십 년에 걸쳐서 이렇게 여러 권의 형태로 저장해 두었는데, 실제로 아카이브 형태로 필요할 때마다 활용한다고 한다. 단순히 전시를 목적으로 보관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
보관소를 어느 정도 둘러본 뒤, 가이드는 시선을 돌려서 다른 쪽 방향의 구시가지 모형도로 향한 뒤 설명을 이어갔다. 모형 역시 옛날 사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모습이라 지금의 구시가지와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면 왼쪽의 사진에는 성을 기준으로 바로 위쪽 방향에 건물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고, 오른쪽 방향에도 (16세기에 건축된) 큰 건물이 세워져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건물들은 모두 나치의 공습에 의해 처참히 파괴되었다. 그 외에도 실제 사진과 모형을 비교해보니, 지금은 발견할 수 없는 형태의 건물들도 많이 있었다.
오른쪽 사진 같은 경우는 가이드가 왼쪽 아래의 건물과 왼쪽 위에 있는 건물을 나누어서 언급하셨다. 전자의 경우는 유대인 설립자가 돈을 빌리면서까지 설립한 건물이라고 말씀하셨으며, 후자의 건물은 전쟁 당시 여러 유대인들의 목숨을 살리는 병원 역할을 했다고 한다. 아쉽게도 유대인이 만든 건물의 용도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는 투리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도시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루블린의 유대인들은 결국 비참한 결말을 맞고 말았다. 가이드는 방을 옮기면서 위 사진에 있는 나무 모형들이 있는 곳으로 본인을 안내했는데, 이 나무들이 그 유대인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상징이라고 언급했다. 아울러 Polin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설명했는데, 역사적으로 Polin은 히브리어로 폴란드를 지칭하는 단어이자 평화를 상징하는 말이었지만, 전쟁 이후 그 의미가 황량하다는 뜻으로 변질되었다고 한다. Polin에 대해서도 투리가 이전 글에서 설명한 바가 있다.
마지막으로 가이드가 들른 곳은 위 사진의 유대인 명단들! 계단 위의 명단들은 모두 나치에 의해 희생된 루블린의 유대인들이라고 한다. 여러 문헌과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나치는 유대인에게 특히 잔인했다. 그들은 유대인을 잡으면 거기서 끝나지 않고, 그 잡은 유대인의 친인척까지 추적해 학살의 대상으로 삼았다. 원체 유럽에 반유대주의 정서가 흐른 부분도 있었기에, 그런 학살극이 자행되기 쉬운 면도 있었을 것이다.
유대인 박물관을 다룰 때도 언급한 말이지만, 백만 명이 죽으면 통계가 된다고 하지 않나. 지금도 보면 군국주의나 전체주의 체재들은 사람을 부품이나 도구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그 통계로 남을 뻔한 자들의 기억을 이 도시에 심고 계승하는 역할을 이 극장이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저 명단을 끝으로, 투리의 그로드츠카 문 내부 투어는 끝을 맞이했다. 약간은 예상 외의 방문지이긴 했지만, 루블린의 다른 측면을 확인할 수 있어서 참으로 인상적인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숨겨진 장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게 장기여행의 또다른 묘미기도 하다. 여러분은 투리의 글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나? 폴란드와 루블린, 루블린과 유대인. 이번에도 다시 느끼는 거지만, 폴란드의 역사에 유대인은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