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alew Zemborzycki>, 루블린의 일상 속에 있는 저수지
한동안 루블린에 대한 기행글을 열심히 적은 것 같은데, 드디어 이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에 다다랐다! 이번 글을 끝으로, 흑투리는 3박 4일에 걸친 루블린 여행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루블린이란 곳이 그렇게 인기 있는 관광 도시도 아닌데, 여기까지 충실히 투리의 글을 읽어준 독자들에게는 너무나도 감사의 말을 드리고 싶다!
본인도 이런 글이 당장의 돈이 되지 않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글을 쓰는 것은 투리에게 돈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첫 번째는 이 글 하나하나가 본인의 추억을 생생하게 남겨준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본인이 탐구한 폴란드란 국가를 한국인들에게 세세히 알려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이번 기행글의 여행지는 여행지라고 부르기 어려운 곳이다. 왜냐하면 이곳은 관광객을 유치하는 장소보다는 루블린 사람들을 위한 여가 공간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투리가 기행글에 여기를 포함시킨 이유는 이 장소가 도시 루블린을 설명하는 요소에 있어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꼭 박물관 같은 곳들만이 여행 대상이 되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모름지기 여행객한테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장소들은 모두 여행지인 법이다.
훗, 애초에 브런치의 인기만을 노렸다면 이런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럼, 슬슬 이번 이야기로 루블린 여행에 마침표를 찍어보자.
투리가 이 글을 읽기를 추천하는 대상은 다음과 같다.
1. 그냥 뇌 빼고 힐링되는 풍경 사진을 보고 싶은 분들
2. 투리의 정보성 기행글에 지친 분들
3. 유럽 관광지로서 꾸밈이 없는, 찐 일상 사진을 바라는 분들
벌써 느낌이 올 것이다. 이번 여행지는 설명할 배경이 많지 않다는 공간이라는 것을. 맞는 말이다. 해당 기행글은 진짜로 폴란드에 대해 알아간다는 느낌보다는 투리가 이곳에서 겪은 흐름대로 전개될 예정이다. 그만큼 여기는 정보 습득보다는 바람 쐬는 목적으로 방문한 곳이기 때문이다.
투리가 방문한 이 동네는 'Zalew Zemborzycki', 루블린에서 제일 큰 저수지가 있는 곳이다. 말은 저수지라고 하지만, 호수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여름철 휴식이나 낚시 등으로도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까 여행지 이름에 폴란드어 'Zalew'가 들어갔는데, 'Zalew'는 영어로 'Lake(호수)'로 표현되기도 한다. 엄밀하게는 'Reservoir(저수지)'가 맞는 표현이지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어차피 현지인들도 호수라고 말하는 마당에 외지인이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이트에 따르면 이 저수지는 1950년대에 설계되고, 1960년대에 건설되었으며, 1970년대에 공식적으로 개장되었다. 저수지를 만든 목적은 그 목적답게 도시를 홍수로부터 보호하고 루블린 시민들에게 지하수 접근을 보장해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도 시민들이 자연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효과까지도 노렸다.
이 아이디어의 주창자는 카지미에시 브린스키(Kazimierz Bryński)라는 지리학자였다. 그의 고안대로 이 저수지가 실제로 지어지기까지는 20년이 걸렸는데, 아쉽게도 카지미에시는 저수지가 1974년 7월에 개장되는 순간을 보기 전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래도 카지미에시 덕분에 루블린의 시민들은 좋은 여가 공간을 하나 얻은 셈이니, 이 어찌 좋지 않을 수 있겠는가?
Zalew Zemborzycki는 비스트르지차(Bystrzyca) 강 위에 조성된 댐형 저수지로, 면적은 278헥타르, 평균 수심은 2.3미터에 달한다. 루블린 남쪽 행정 경계에 위치해 있는 이 저수지는 지도를 보면 크게 뭉툭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투리 걸음으로 한 바퀴를 도는 데 약 4시간이 걸렸다.
사이트에 따르면 이 저수지는 호수라고 불려도 무방할 만큼 여러 가지 매력이 있다. 그중 하나는 저수지의 서로 다른 풍경을 가진 호안(湖岸)인데, 투리가 지금 보여주고 있는 서쪽 방면은 폴란드 도시 외곽 특유의 평온함이 담겨 있다. 그리고 동쪽 방면에는 숲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로맨틱하고 아름답게 자리 잡은 작은 만(灣)들이 많다. 숲과 만은 조금 있다가 보도록 하자.
사진을 보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수질은 수영을 할 만큼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수심이 얕은 연안 지역으로 인해 진흙이나 빽빽한 수생식물이 많은 데다가 남조류도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대신 낚시꾼들 입장에서는 이곳이 천국이나 다름없는데, 뱀장어나 도미, 농어, 잉어 등 다양한 어종이 물속에 서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낚시할 수 있는 스폿이 곳곳에 있을 뿐만 아니라 풀밭이나 도로, 심지어는 자전거 도로까지 조성되어 있어 주변 사람들이 방문하기에는 최적의 장소 같아 보였다. 더군다나 날씨까지 좋아서 투리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편하게 걷기에 너무나도 좋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가기 싫을 정도로 춥고 눈도 많이 내렸는데 말이다.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주변이 눈투성이었다고 얘기하면 믿겠는가?
지금 여러분이 보고 계신 사진은 호수 동쪽 부근의 사진이다. 길도 잘 조성되어 있고, 주변에 풀밭도 많고. 진짜 생각 없이 산책하고 싶을 때 좋은 곳인 것 같다. 심지어 여기에는 흰죽지오리, 논병아리, 뿔논병아리, 깝작도요 등의 다양한 새들도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단순히 저수지 역할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생태계에도 기여하는 바가 많아 보인다.
이렇게 저수지를 걷다 보면, 반대쪽 방면에 집들이 있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평온한 곳에 놓여 있는 집들을 보니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도 볼거리 많고 공부할 인프라 좋은 서울 사는 게 나으니까. 그래도 한 가구마다 저렇게 정원이 넓게 딸려 있는 걸 보니 신기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물론 가까이 가면 일정 확률로 정원을 지키는 개가 본인 앞으로 달려오기에 근처에 접근하는 것은 사양.
그렇게 한창을 가니, 이렇게 식당도 볼 수 있었다. 당시에는 이른 오후라서 사람이 없었지만, 저녁이 되면 사람이 모이지 않을까 싶다. 손님은 없었지만 들려오는 스페인 음악이 너무 아름다워서 무슨 노래인지 확인해 보니, 노래 제목이 메카노의 '달의 아들(Hijo De La Luna, 1986)'이었다. 독자들에게는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평온한 유럽의 호수를 걸으면서 생각이 많던 그때의 투리에게는 그 노래가 정말로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투리가 스페인어에 능통해진다면 이 노래 때문이라고 생각하시길.
오래간만에 그냥 걷기만 하니, 한국에서 느꼈던 스트레스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여러 생각들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지금은 이렇게 평안히 걷고 있지만, 당장의 평안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부담을 잠시 미뤄두는 것에 불과한 것 아닌가 하면서 말이다. 쩝, 그래봤자 어쩌겠어. 어쨌든 투리는 여기에 있는데. 이왕 온 이상, 교환학생을 가장 잘 보내는 방법은 최대한 누리는 것이다. 잠시 그 뒤의 미래는 제쳐두자. 이 순간만큼은 지금을 즐기는 것이다.
별의별 고뇌를 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저수지의 중간 지점에 도착하고 말았다. 그런데 풍경을 보니, 어라. 아까까지 보이던 호수가 어디로 간 거지.
사진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겠지만, 이쪽으로 이동할 때부터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호수는 어디 가고 다 이런 식의 집과 울타리들만 보였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좀 더 들어가니, 주변의 나무들이 울창해지고 개들이 투리를 보면서 맹렬하게 짖기 시작했다.
아마 그 순간이 투리가 제일 공포에 떨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분위기가 완전히 외딴 숲에 자리한 마을이라서, 거기서 누가 투리를 해코지해도 아무도 모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특히나 개들이 짖어대니 괜히 주민들을 더욱 자극하는 것 같기도 했고 말이다. 감사하게도 투리가 호수가 있던 곳으로 되돌아갈 때까지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디로 가야 호수 동쪽 방면으로 가나 확인해 보니, 구글 지도는 위의 사진에서 이어진 길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데 앞쪽에는 자전거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적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은 어떻게 했겠는가? 안전한 길인지 알 수 없으니 돌아간다? 그렇지 않으면 용기를 내어 들어간다? 많이 고민했지만, 더 이상 지체하다간 바르샤바로 돌아가는 버스를 못 탈 판국. 결국 투리는 폴란드가 치안이 위험한 나라가 아니라는 쪽에 걸고 위의 으스스한 길을 선택했다!
물론 신원이 보장되지 않은 길이면 개인적으로 가는 것을 추천하지는 않지만, 그날의 투리는 마음 한구석에서 이곳을 끝까지 탐험하고 싶다는 개척심이 타올랐다. 어차피 좀만 더 가면 저수지를 볼 수 있으니, 투리는 용기를 내어 선택한 길을 끝까지 달려갔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걸어가니, 예상대로 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까 이 저수지의 동쪽 방면은 어떻다고 했지?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로맨틱하고 아름답게 자리 잡은 작은 만(灣)들이 많다고 했지? 이제부터 그 멋진 장면들을 볼 시간이다!
어떤가? .....생각만큼 대단하지는 않다고? 하하하, 저수지에 바라면 얼마나 바라겠는가? 다만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사진이 저수지라는 것만큼은 잊지 말자. 투리 개인적으로는 인공 저수지치고 이 정도의 풍경까지 자아내는 것은 높게 취급한다.
보면 느끼겠지만, 확실히 동쪽 방면의 분위기는 서쪽과는 다르다. 서쪽 부근을 걸었을 때는 자전거도 지나가고 주변에 집도 있어서 마음이 편안했지만, 이쪽은 사람도 없고 주변은 온통 숲뿐이라서 조금 긴장하면서 걸었다. 몇 시간만 더 지나면 어두워질 것 같았고, 무엇보다 조금만 지체해도 기숙사로 돌아가는 버스를 놓치기 때문이었다.
사진을 보니, 이때 투리의 기분이 어땠는지 다시 기억이 생생하다. 투리가 폴란드에 있을 때 신발을 새로 산 적이 있었는데, 그 이유가 여기를 무리하게 걸어서 헌 신발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이쪽은 완전히 숲에 가까워서 바닥이 좀 울퉁불퉁했는데, 그 과정에서 신발 바닥에 손상이 있었다. 이로 인해 길바닥이 조금만 젖어도 빗물이 신발 안에 스며들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좋은 장면들은 놓치지 않고 찍으면서, 본인은 안전히 저수지의 한 바퀴를 모두 돌 수 있었다. 간만에 연속으로 4시간 동안 걸은 끝에, 투리는 루블린의 마지막 일정까지 모두 마치게 되었다!
드디어 투리의 네 번째 도시, 루블린 감상도 막을 내렸다! 우치에 이어 루블린에 대한 기행글까지 마무리한 지금, 누군가는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왜 자꾸 폴란드 안에서도 마이너한 곳을 가느냐고.
그런데 그거 아는가? 지금까지 투리가 언급한 곳들은 폴란드 안에서 나름 규모가 있는 도시들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도시들을 지속적으로 방문하는 것이 곧 폴란드에 대한 깊은 해석으로 넘어가는 길인 것이다. 폴란드 교환학생을 다녀오는 학생으로서 가장 의도에 어울리는 행동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 책에서의 투리는 폴란드의 여러 장소들을 탐험함으로써 이 나라에 대한 이해의 밀도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잠시 머물다 가는 관광객의 동선이 아니라, 해석자의 시선으로 이 나라를 바라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무조건 유명한 목적지보다는 폴란드의 대표적인 장소들에 더 자주 발이 향했다. 루블린은 그 대표적인 장소들 중 하나였다.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그 안에는 동유럽의 교차점으로써 지닌 역사와 흔적이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투리는 다시 이렇게 말하겠다. 루블린은 어떤 도시인가? "폴란드 역사의 압축판과도 같은 도시"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