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 기행] 지금은 떠나버린 당시의 전시 작품들

<자헤타 국립 미술관>, 상설전시관이 거의 없는 바르샤바의 미술관

by 흑투리


4월 초, 평소처럼 수업을 듣던 어느 날.



20250410_131208.jpg
20250410_152126.jpg
흔한 식물 수업 장면과 흔한 간간한 식사 장면.



여느 때처럼 하루를 보내다가, 마침 수업이 끝나고 일정 비는 날 발견!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투리는 어딜 갈까 고민을 하다가, 아직 미술관을 방문하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 그래, 이럴 때 틈날 때마다 유럽의 자랑거리, 미술관을 방문하는 것이 낭만 아니겠는가?



마음을 먹은 투리는, 구글 지도를 켜고 바르샤바에는 어떤 미술관이 있는지 검색해 봤다. 가장 먼저 들어온 미술관은 한국어로 '폴란드 국립 미술관'이라고 적힌 곳이었다. 오, 여기 괜찮겠는데?



기대 한가득 품고 밖으로 나가니, 같은 기숙사 동기 크리스티안이 본인에게 어디를 가냐고 물었다. 국립 미술관이라고 대답하니, 크리스티안은 좋다고 말하면서 미술관이 4시간을 봐도 다 못 돌아볼 만큼 상당히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에 더욱 솔깃하며 미술관으로 향한 투리지만, 당시에는 몰랐다. 크리스티안이 말한 미술관은 '바르샤바 국립 미술관'이었다는 것을.....







*해당 미술관은 2025년 4월 11일에 열린 전시관을 토대로 하는 내용이며, 현재는 위와 같은 전시관이 열리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20250411_135224.jpg



투리가 들른 곳은 '자헤타 국립 미술관(Zachęta National Gallery of Art)'이라고 하는 폴란드 국립 미술관. 근처에는 'Holy Trinity Church'라는 유서 깊은 루터교회가 있으며, 좀만 더 가면 대통령궁도 찾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



20250411_135451.jpg 아래에는 Andrea Fraser라는 작가의 특별전시회를 알리는 포스터를 발견할 수 있다.



얼핏 봐서는 그럴듯한 건물처럼 보이지만, 혹시라도 독자들 중에 '바르샤바 국립 미술관'에 대한 기행글을 기대하셨던 분들이 계신다면 이번 글은 넘어가 주시길 바란다. 너무 뭐라 하지 않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투리 본인도 저 건물이 그 미술관일 거라고 속았으니까! 해당 미술관은 바르샤바 중심부에 위치한 현대미술관으로, 이 갤러리의 주된 목적은 폴란드 동시대 미술과 예술가들을 소개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또한 다수의 세계적으로 알려진 해외 작가들의 기획전을 개최하면서, 나름의 국제적인 위상도 확립해 왔다고 한다.



여기서 ‘자헤타(zachęta)’라는 단어는 ‘격려’라는 뜻으로, 해당 이름은 1860년 바르샤바에서 설립된 미술 진흥 협회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미술관의 가장 큰 특징은 상설전시관이 거의 없으며 전시의 내용이 기간마다 항상 다르다는 것이다. 그 이유에는 오랜 배경이 있는데, 1830년 11월 봉기 이후 폴란드는 러시아 당국에 의해 고등 예술 교육의 탄압이 매우 심한 상황에 있었다. 이에 1850년 예술가들의 강력한 항의가 있었고, 결국 러시아와의 협의 끝에 1860년 이 미술관이 설립되었다.



20250411_165554.jpg



그렇게 만들어진 미술관과 협회의 주된 목적은 순수미술의 보급과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 및 장려, 그리고 폴란드 사회 전반에 미술에 대한 인식을 확장시키는 것이었다. 초기에는 모든 작품이 판매될 때까지 전시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나, 이는 곧 전시 벽면이 과도하게 빽빽해지고 단조로운 상설 전시를 초래하고 말았다.



그래서 1939년 이후 상설 전시는 임시로 교체되는 기획전과 병행하는 방식으로만 운영되다가, 현재에 이르러서는 기획전 속에 통합되어 전시시키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 3600점에 달하는데도 상설 전시를 운영하지 않는 이유에는 이런 역사적 목적이 반영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투리는 여기에서 어떤 현대미술을 보았는가? 그걸 차근차근 보여주도록 하겠다!



20250411_140443.jpg 가운데가 Wojciech Bruszewski의 작품, 가까이 이동할 때마다 자기장 비스무리한 소리가 난다.



본인이 방문했을 때의 전시관 테마는 영화 형식 워크숍(Workshop of the Flim Form) 소속 예술가들의 인티미디어 작업들이었다. 비록 1970년 우치에서 학생 연구 모임으로 출발하다 8년밖에 존속하지 못했지만, 각 구성원들은 수십 년에 걸쳐 워크숍에 형성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며 그것들을 자신들의 작품에 적용시켰다고 한다. 이 전시는 그런 그들의 작업을 현대적 맥락 속에서 보여주는 것들이었다.



20250411_141010.jpg YYAA. Wojciech Bruszewski, 1973



이 영상 작품은 소리의 시각적인 기록 가능성을 탐구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작가의 코멘트에 따르면 작가의 얼굴은 3분 동안 클로즈업 상태로 유지되어 있는데, 작가를 비추는 네 개의 광원은 전자 장치에 의해 1초에서 8초 사이의 간격으로 무작위로 작동된다고 한다. 이때 각 광원들이 비추는 방향들은 yyyyyyyy-라는 연속적인 소리를 내는 작가의 목소리에 서로 다른 변조를 대응시킨다.



음, 그렇구나. 소리에 대한 탐구라. 저 작가의 표정으로 보아 소리를 낼 때 상당히 애를 썼다는 건 알 것 같다. 다른 작품들도 한 번 봐볼까.



20250411_141031.jpg (왼) Ballet Language. 1973 / (오) black-and-white photograph. 1973. 모두 위 작품의 작가 것들.



음, 이번 작품은 아까보다 노골성이 더욱 강화된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아무래도 이분 역시 아방가르드 예술과 깊이 연관되어 있으니 그런 것 아닌가 싶다. 실제로 이분은 초기 폴란드의 비디오 아트와 소리 아트의 선구자격 되시는 분이다. 그는 아까 언급한 워크숍의 핵심 인물로서 구조영화(structural cinema)의 흐름에 영향을 미친 인물이기도 하다.



20250411_141738.jpg Project for Activating a Photographic Image: Icarus. Andrzej Różycki, 2021/2025



20250411_143342.jpg
20250411_143512.jpg
flim Tango, movement diagram, score for the film Tango. Zbigniew Rybczyński, 1980



이번에는 위 작품에 대한 설명도 좀 해볼까. 인상적인 부분을 언급하자면, 이 작품은 실험 애니매이션 작품으로, 총 36명의 인물들이 각자 독립된 행동을 반복해서 보이는 작품이다. 신기한 것은, 이 작품에서는 인물들이 차례차례 등장하는데 그 행동이 연쇄적으로 그 다음 등장하는 인물의 등장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해당 필름의 작가 코멘트에 의하면 이 작품을 완성하느라 16000개의 셀 애니매이션이 필요했다고. 하루 16시간씩 7달을 투자해 만든 결과가 위의 비디오 작품이라고 한다.



20250411_143853.jpg
20250411_143904.jpg
Scores of Cities. Antoni mikołajczyk, 1979~1984



위의 청사진처럼 보이는 작품은 빛에 관심이 많은 Antoni mikołajczyk의 작품! 이 작가 역시 워크숍의 일원이었는데, 그는 특히 빛과 시간, 공간이라는 현상에 깊은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그는 현실과 인식 사이의 규정에 의문이 많았으며, 그 고민을 토대로 여러 설치 작품들과 인터미디어 오브제를 제작했다. 이 작가는 세상을 둘러싼 모든 것이 에너지의 투영이라고 믿었는데, 예술은 그것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어쩌면 위의 작품들도 그런 작가의 인식이 반영된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그런 거면 우리는 굳이 아름다운 작품에 열광할 필요가 있나, 라는 개인적인 생각도 든다.



20250411_144037.jpg Action on the Window Pane. Ryszard Waśko, 1976



위 작품은 레몽 갤러리에서 이루어진 예술적 행위를 기록한 작업. 유리창 표면에는 각 공간에 번호가 매겨진 구획으로 나누는 선들이 그려졌고, 이 구획들은 사진으로 촬영된 현실의 이미지와 겹쳐지며 결합되었다. 이를 통해 현실에 기하학적 구조가 부여되었다고 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느껴지시는지.



20250411_144058.jpg Accident. Ryszard Waśko, 1971



20250411_152635.jpg 뭔가 무시무시한 경고가 담겨 있다. 요약하면 성적인 장면들도 많으니 관람에 주의를 요한다고.



뭐, 이쪽 코너의 작품은 이만하면 본 것 같고, 다음으로 열려 있던 특별전시관은 Andrea Fraser라는 작가의 'Art Must Hang'이라는 주제의 전용전시관이었다. 아까 분들이 폴란드 아방가르드 작가들인 것과는 달리 이 작가는 미국의 개념미술가이자 퍼포먼스 아티스트, 비평가로, 특히 제도 비판(Institutional Critique) 분야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미술관과 미술 시장, 그리고 예술 제도를 둘러싼 권력 구조와 이데올로기를 날카롭게 드러내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전해진다.



전시되어 있던 작품들 모두가 비디오 작품들이긴 하지만, 대충 어떤 작품들이 있었는지 몇 개만 보도록 할까.



주의! 글에 개제한 일부 작품들 중에는 다소 선정적이거나 특정 신체 부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작품들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위 사실에 먼저 유념하며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A visit to the Sistine Chapel, 2005.jpg A Visit to the Sistine Chapel. 2005
실제 사진들.jpg 그 안에 있던 실제 장면들



일단 투리가 가장 처음으로 본 비디오 작품은 위의 작품! 여기서 Andrea Fraser라는 작가는 위의 오디오 가이드를 듣고 있는 여자인데, 영상 속의 그녀는 바티칸 박물관 안의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다. 그녀는 작품 속의 순교자들을 보면서 경외감에 몸을 떨고, 마리아의 순결함에 어깨를 가리면서 예수의 그림 앞에서 존경을 표한다. 해당 작품은 박물관 안의 수많은 관광객들과 문화적 경이로움의 대조성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한다.



20250411_152804.jpg
20250411_152754.jpg
Inauaural Speech. 1997 / 오른쪽은 연설 내용을 들을 수 있는 이어폰.



이 영상은 1997년 9월 26일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inSITE97의 개막식 때 진행된 작가의 연설 장면. 원래대로라면 그녀는 전시를 소개하고 주최자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것에서 연설을 마쳐야 했지만, 그녀는 나아가 큐레이터, 이사로, 공직자로, 마지막에는 기업 후원자의 역할로서 차례차례 발언을 이어간다. 이 연설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시대 속 국제 전시의 정치성을 다루었는데, 해당 작업은 이해관계들 사이의 결속을 공고히 하는 의례들을 내부에서부터 붕괴시키려 시도했다고 한다.



20250411_154153.jpg Soldadera. 1998/2001



이 작품은 1998년 멕시코시티 인근 농장에서 촬영된 16mm 필름을 편집해 제작한 2채널의 비디오 설치 작품이다. 원래는 '테틀라파야크에서의 연회(Un Banquete en Tetlapayac)'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편집된 장면인데, 해당 장면 안에서는 프레이저가 혁명 농민 여성으로 등장해 농장에서 일어난 봉기와 그 실패를 암시하는 서사적 단편들이 이어진다. 이 5분짜리 반복 영상 속에서 시각적인 혁명적 이미지는 반복과 이중화라는 비디오 아트 전략을 통해 점차 추상화되는데, 이를 통해 현대 예술에서 급진적 열망이 어떻게 점점 공허한 스펙터클로 변질되었는지 분석하는 틀이 되었다고 한다.



untlitled.png Untitled의 일부 장면. 2003 / 미술관에서는 실제 작품 촬영이 금지되었다.



잘은 몰라도 대충 그녀의 작품들 속에 사회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건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가장 노골적인 작품들 중에는 'Untitled'라는 작품이 있었는데, 이 작품은 아예 작가가 남자와 성관계를 하는 영상이었다. 그녀는 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미술상에게 그녀와 섹스를 할 작품 수집꾼을 구해 달라고 요쳥했는데, 그렇게 해서 구한 수집꾼과의 예술 행위(!)는 60분 무편집본으로 6개의 비디오테이프 형태로 완성되었다. 수집꾼은 관계와 비디오 구매 대가로 작가에게 20000 달러를 지불했다고 한다.



Fraser가 이런 기상천외한 작품을 만든 의도는 극도로 계층화된 경제 구조 속에서 개인적 친밀성과 시장 가치가 얽혀 있는 관계를 수행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일반적인 인식 속에서 해당 작품은 예술 판매를 매춘에 비유해 온 오랜 관념을 실제로 수행한 작품으로 여겨졌지만, 작가 본인은 자신의 일부-이를테면 자아와 환상, 심지어는 욕망까지-를 작업으로서 판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논하고 싶었던 것이다.



20250411_154627.jpg Reporting from São Paulo, I'm from the United States, 1998



이 작품 같은 경우는 제24회 상파울루 비엔날레를 위해 제작된 작품으로, 전시에 관한 텔레비전 뉴스 보도와 인터뷰, 그리고 현장에서 기록된 다큐멘터리 자료를 편집한 5개의 짧은 영상들로 구성되어 있다. 아쉽게도 비엔날레 개막 시기 브라질 대통령 선거나 지역 홍수, 세계 경제 위기 등으로 인해 이 작품은 전시는커녕 방송되지도 못했지만, 작품의 내용 속에는 국제 전시와 신식민주의, 그리고 경제적 세계화 사이의 관계가 연구되어 있다고 평가받는다.



20250411_163735.jpg Diagram. 2024



이렇듯 그녀의 작품들은 어딘가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가 상당히 녹아든 작품들이 많이 있었다. 물론 투리는 이분의 정확한 사상과 가치관은 잘 모르지만, 현실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는 분이라는 것은 이해했다. 이 예술가는 이런 식으로 자신만의 세계관을 표현하는구나, 싶으면서.



20250411_165704.jpg



이 작품들이 그날 투리가 봤던 작품들의 전체적인 내용이었다. 폴란드 아방가르드 작품들Andrea Fraser의 특별전시회. 물론 여러분이 이 미술관을 들른다면 그때는 다른 현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을 것이다. 뭐, 기간에 따라 전시되는 작품들은 다르겠지만, 이 미술관은 어떤 식으로든 그 나름의 방법대로 가지고 있는 소장품들을 조금씩 푸는 것 같다.



어쨌거나 바르샤바 국립 미술관이었으면 글 하나로는 안 끝났을 기행글. 이번에는 비교적 그보다 전시 작품이 적은 '자헤타 국립 미술관' 글로 감상평을 남겼다. 바르샤바 국립 미술관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넘기도록 하자. 이미 지금까지의 내용으로도 내용이 충분히 많았을 테니까 말이다. 하하하!

이전 19화[루블린 기행] 인공인데 인공 같지 않은 풍경의 저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