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용사의 묘>, 국가를 되찾기 위해 싸운 폴란드 민족의 추모 공간
세계의 역사를 보면, 과거의 전장에서 뛰어난 공헌을 세워 그 이름이 세세토록 전해지는 영웅들이 있다. 예를 들면 카르타고의 한니발이라던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 대왕이라던가. 하지만 그렇게 세상사에 한 획을 그은 전쟁들마저 그 아래에 있던 수많은 무명의 용사들이 희생이 없었다면 빛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알 수도 있는데,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라는 애니메이션을 보면 '아처'라는 캐릭터가 있다. 정체를 스포하지 않는 선에서만 말하자면, 이 애니메이션은 7명의 마술사가 각각의 서번트를 소환하면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소원을 이루어주는 성배를 얻는 내용이다. 서번트는 보통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영웅이나 반영웅에 해당하는데, 예를 들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아킬레우스나 헤라클레스가 대표적인 예시가 될 수 있겠다.
그런데 작중에서 등장하는 아처만은 지명도 하나 없는 무명의 용사이다. 그는 그저 인류를 지키기 위해 위험요소들과 싸워오며 나름의 정의를 실천했던 인물에 불과하다. 나중에 유사한 세계관의 IP게임에서 이 캐릭터를 소환할 때 나왔던 대목들 중 하나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그것은 '이름도 없는 사람들이 선출한, 얼굴 없는 정의의 대표자'라는 설명문이다. 원래대로였다면 위 인물은 소환되는 것조차 불가능한 존재였으나, '인류의 존속'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정의의 사도로서 싸워온 무의식의 집합이 대표로 삼은 존재가 그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갑자기 웬 애니메이션 캐릭터 소개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재미있게도 이번에 소개할 관광지를 보자면 투리는 그 아처가 떠오른다. 왜냐하면 지금 둘러볼 '무명용사의 묘' 역시 폴란드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피 흘리며 희생한 수많은 무명의 용사들을 대표하는 한 명의 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둘 다 특별한 점 하나 없는 평범한 개인이지만, 둘 다 임의로 선출된 결과로써 모두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 묘는 정확히 어떤 용사들을 대변하는 것이며, 또 어떤 사정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그 내용을 알아보도록 하자! 폴란드의 기구한 역사를 듣다 보면 한국인들도 나름의 공감 포인트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미술관 투어를 하나 마치고 근처에 볼만한 무언가가 없을까 싶을 찰나,
오, 꽤나 큰 공원이 본인의 눈길을 끌었다! 'Ogród saski'라고 소개하고 있는 이 정원은 '색슨 정원(Saxon Garden)'이라고 불리는 정원인데, 바르샤바의 중심부에 있는 공원이자 가장 오래된 공공 공원이기도 하다.
이 정원은 원래 바르샤바의 방어 시설인 ‘지기스문트의 성벽(Sigismund’s Ramparts)’이 있던 자리였으며, 이후 아우구스트 2세 국왕의 재위 기간 동안 꾸준히 확장되었다. 그러다가 1727년 5월 27일, 대중에게 공개적으로 개방되었다.
초기에 이 정원은 프랑스식 바로크 정원 양식을 띠었으나, 19세기에 들어 낭만주의적 영국식 풍경 정원으로 개조되었다. 그 이후 바르샤바 봉기 도중 파괴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후 부분적으로 복원되었다. 이 정원은 원래 1666년 유력한 귀족 얀 안제이 모르슈틴(Jan Andrzej Morsztyn)의 궁전(Saxon Palace)을 위한 정원을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아쉽게도 궁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의해 폭파되었다. 다행히도 세 개의 아치 구조물만큼은 아직 궁전의 잔존물로 남아있는데, 그 구조물이 바로 지금의 '무명용사의 묘'이다.
어차피 곧 있으면 묘가 보일 테니, 공원을 조금만 더 둘러보자. 색슨 공원은 베르사유 궁전의 공원에서 영감을 받아 형식적 조망축(formal vistas)을 확장한 바로크 정원의 전형적인 사례였다. 그럼에도 이 공원의 특징에서 눈여겨볼 만한 사실이 있다면, 이 정원은 타 유럽 국가들의 대표적인 공원들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개방이 되었다. 이 공원이 1727년에 개방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이는 미합중국이 세워진 1776년보다도 먼저 일어난 일이다.
공원 안에는 눈여겨볼 만한 건축물들이 여러 개 있었는데, 첫 번째로 발견한 구조물이 분수였다. 1855년 조성된 이 분수는 연인들이 약속 장소로 자주 사용하는 공간이라고 하는데, 무려 바르샤바를 대표하는 가장 소중한 도시 상징물들 중 하나라고.
다음으로 발견한 인상적인 건축물은 대리석 해시계(Marble Sundial)였다. 아까 있었던 대형 분수 근처에 위치한 이 수평식 해시계는 저명한 물리학자이자 기상학자인 안토니 셀리가 마기예르(Antoni Szeliga Magier)가 만들었다고 한다. 만들어진 시기는 1863년.
자, 드디어 이 공원의 하이라이트. 무명용사의 묘와 그 앞의 정원의 모습이다! 어떤가? 날씨가 조금만 더 좋았다면 정말로 좋은 사진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아까 언급했듯이 저기 멀리 보이는 아치형 구조물은 세계대전 이후에도 끝까지 살아남은 건축물이다. 당시 바르샤바는 독일 점령군에 의해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며 인구 피해 역시 막심했다.
당시의 독일군은 폴란드의 민족 정체성까지 뿌리 뽑기 위해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바르샤바를 파괴하려 했다. 그 와중에도 살아남은 저 구조물은 폴란드인에게 자유와 독립을 위한 투쟁의 강력한 상징이 된 것이다.
궂은 날씨에도 군이 지키고 있는 이 묘에는 24시간 꺼지지 않는 불꽃이 청동화로에서 타오르고 있다. 이러한 상징적인 아이디어는 파리의 개선문에서 일부 착안한 게 아닌가 싶다. 그도 그럴게, 이곳은 무려 폴란드에서 열리는 대부분의 공식 군사 추모 행사가 거행되는 장소이다. 그래서 외국 사절단이 폴란드를 방문할 때 이곳에서 공식적으로 헌화를 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요한 바오로 2세가 이 묘에 들러 추모를 했었다.
이미 1권에서 사진을 보여준 적은 있지만, 그때 묘지와 화로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 지금 제대로 올려본다. 피우수트츠키 광장(Piłsudski Square)에 위치한 이 묘는 1923년 르비우 방어전(Defence of Lwów)에서 전사한 젊은 무명 병사 한 명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이 병사의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후에는 폴란드 군인들이 싸웠던 수많은 전장의 흙이 항아리에 추가로 봉헌되었다. 그리고 근위병 교대식은 연중무휴로 매시 정각, 하루도 빠짐없이 진행된다.
그렇지만 이 묘는 단순히 해당 국군 용사를 위한 묘가 아닌, 제1차 세계대전과 그 뒤에 이어진 폴란드–소비에트 전쟁에서 전사한 모든 무명의 폴란드 군인들을 기리기 위한 석판이기도 하다. 1923년 당시의 시민들이 그 염원을 담아서 블라디스와프 시코르스키 장군의 지지 아래 저 석판을 설치했으니까 말이다.
저 자리에 묻히게 된 주인공의 선별 과정은 몇 단계를 거쳤는데, 투리가 보기에는 상당히 엄청난 확률이었다. 우선 폴란드 전쟁부가 어떤 전장의 용사를 바르샤바로 이동시킬지 골랐는데, 약 40여 곳의 전투지들 중에서 르비우(Lwów)가 선택되었다. 그중에서 수호자 묘지(Cemetery of the Defenders of Lwów)에서 발굴된 세 개의 관들 중 하나를 바르샤바로 옮기기로 결정했는데, 어떤 유해를 옮길지는 아들 병사의 시신을 찾지 못한 한 어머니가 직접 선택했다.
그렇게 선정된 관은 성 요한 대성당(St. John’s Cathedral)으로 옮겨져 미사를 거행한 이후 위의 장소에 안치되었다. 이 묘는 독일 점령기를 제외하고는 항상 명예근위대가 배치되어 왔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을 들은 여러분은 이제 이 국군 용사의 묘가 특정 전쟁터에서 전사한 한 명이 아닌 폴란드를 위해 싸운 모든 시대와 전쟁의 무명용사들을 대표하는 묘라는 것을 이해했을 것이다. 실제로 2016년에는 안제이 두다 대통령이 포로들을 9차례에 걸쳐 구출했던 폴란드 보안 기관의 군사 작전을 기리는 석판을 공개했고, 2017년에는 안토니 마치에레비치 국방장관이 우크라이나 반군과 민족주의자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한 폴란드 자위대 병사들을 기리는 석판들을 공개했다. 전자의 경우에는 다소의 논란이 있는 듯하지만, 어쨌거나 이 묘는 시대뿐만 아니라 장소까지 초월한 상징이 된 것이다.
이상의 내용들이 이 묘지가 세워진 전체적인 배경이었다. 비록 저기에 잠든 젊은 용사가 대표자로 내세워지긴 했지만, 그의 유해는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폴란드를 위해 장렬히 투쟁할 인물들을 대변할 상징으로 남을 것이다. 그 정도의 상징이기에 많은 공식적인 행사가 이곳에서 거행되는 것이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오는 것 아닐까.
듣기로는 조만간 피우수트스키 광장에 이전에 파괴된 색슨 궁전과 다른 건축물들도 다시 세울 예정이라고 한다. 당시의 건물들이 폴란드의 역사와 문화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에 그렇게 결정한 것이 아닐까 싶다.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히 바라는 점은 있다. 더 이상 폴란드에 파괴되는 문화유산과 추모해야 할 용사들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