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생에게 사랑받는 음식에는 역시 이유가 있다
파스타. 투리가 고등학생 시절까지만 해도 참으로 고급지다고 느낀 음식이었다. 그런데 육체적(!)으로 성인이 되고 나니, 가성비 최고의 자취음식으로 파스타만 한 게 없다는 증언을 여럿 입수했다. 아니, 크니까 이렇게 인식이 확 달라졌다고? 비유하자면, 완전 초초초 유명 배우가 어느 순간부터 민낯까지 공유하는 절친이 된 기분이다.
그렇지만 한 학기 동안 유럽에서 기숙사에 살아온 끝에, 투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포만감이 좋으면서 조리법도 간단한 음식들 중 하나가 단연 파스타라는 것을. 사실 이 진리는 교환학생이 아니라 자취생만 되더라도 쉽게 깨달을 수 있는 내용이다. 사람은 살면서 편하고 가성비 좋은 것을 찾기 마련이니까. 이번 글에서는 요리에 무관심한 필자가 교환학생 시절 거의 유일하게 배운 일상 기술, '파스타(혹은 그와 유사한 형태의 요리) 혼자 해 먹기'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고자 한다. 그래도 유럽이니까 요리가 뭔가 정통에 가까운 느낌이 들지 않겠냐고? 뭐.....감성은 다르겠지? 자세한 내용은 여러분이 직접 보고 판단하시길.
필자 투리에게는 서로 모순적인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투리는 혼자 있을 때 돈을 최대한 아낀다.
본인은 사정상 타인과 함께 하는 활동들이 많고, 그에 따라 지출이 동반되기에 일정이 없을 때는 불가피하게 집 밖으로 안 나간다. 원래 성격이 집돌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아직 돈도 못 버는데 쓰기만 하는 게 너무 죄책감이 들어서다. 그래서 본인은 폰에 그 유명한 배달 앱 하나 설치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둘째, 투리는 요리하는 것을 매우 귀찮아한다.
보통 집에 자주 있으면 요리를 많이 하기 마련인데, 특이하게도 본인은 성격상 요리에 관심이 없다. 아무래도 당장 관심 있는 활동들에만 신경 써도 시간이 부족한 판국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글 쓰고 공부하고, 중간중간 머리 식히면서 유튜브만 봐도 벌써 하루 뚝딱인 게 차가운 현실. 그런 본인에게 요리에 관심 가질 틈은 털끝만큼도 존재하지 않는다.
돈 아끼는 걸 좋아하면서 돈 아낄 수 있는 요리를 싫어한다라. 참으로 아이러니한 성격이다. 하지만 그런 인간도 강제적으로 요리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있기 마련인데, 바로 자취생이 되는 순간이다. 한 번 교환학생이나 유학생이 되면, 자연스레 밥을 해주는 사람들과 멀어지는 운명에 처한다. 그렇게 되면 매번 외식을 하지 않는 이상 본인이 어떻게든 직접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문제는 유럽이나 북미는 대부분 외식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 그나마 투리가 지낸 폴란드는 비교적 물가가 나은 편이지만, 그럼에도 매번 외식은 역시 부담스럽다. 고로 투리도 자동적으로 식재료를 써서 이것저것 시도해 보게 되었다. 하지만 대다수는 본인의 기준에서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거나 번거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음식을 만들까 고민하던 와중, 불현듯 파스타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어, 생각해 보니 나는 지금 유럽에 있잖아. 그러면-비록 이탈리아나 프랑스만큼은 아니더라도-파스타의 재료에 한해서라면 그 종류가 한국보다는 퀄리티가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자, 몸은 바로 파스타의 재료를 찾으려 달려 나갔다.
본인이 영감을 받은 듯 갑자기 나갈 채비를 하자, 기숙사 동기 크리스티안이 본인을 보며 물었다.
"이번에는 어디 가는데?"
"파스타 재료를 사러!"
"파스타?"
"응, 갑자기 파스타를 먹고 싶어졌어. 오늘 한 번 처음으로 만들어볼 예정이야!"
Chat GPT의 도움을 받아 대략적인 재료를 파악한 뒤, 본인은 늘 가던 마트 'E-leclerk'로 향했다. 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크림 파스타(까르보나라)! 토마토 파스타는 어렸을 때 그 냄새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선호하지 않는다. 사실상 필자가 파스타를 먹는다 하면 거의 열에 아홉은 까르보나라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러면 재료를 확인해 보자.
파스타 초짜 투리가 산 재료는 유럽산 스파게티 면, 우유, 크림, 모차렐라 치즈와 빵수프 가루이다. 거기에 미리 사놓은 식용유와 계란까지 가져오면 준비 완료!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었지만 과정이 그리 복잡해 보이지는 않았기에, 투리는 과감하게 요리를 실행에 옮겼다. 우선은 냄비에 물을 끓이면서 동시에 면 포장지를 뜯고, 다음으로 전기레인지에 열이 돌아가는지 점검해 보았다.
열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한 뒤, 투리는 곧바로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그 위에 달걀 두 개를 올려놓았다. 그런 다음 프라이팬을 위 사진과 같이 전기레인지에 올려두고 우유와 크림, 빵수프 가루를 뿌렸다. 당시에 치즈는 맨 마지막에 뿌리는 거라고 생각해서 프라이팬에 치즈는 뿌리지 않고 나머지를 휘휘 저었다.
3분 정도 젓고 기다리기를 반복한 끝에, 어느 정도 크림이 완성되었다고 판단한 투리는 8분 정도 끓인 파스타 면을 프라이팬 위에 부었다. 그런 다음 어느 정도 섞으니, 처음치고는 꽤나 그럴듯한 모습의 파스타 형태가 완성되었다. 보시다시피 사진 위에 있는 프라이팬 내용물이 투리가 인생 최초로 만든 크림 파스타이다. 어떤가? 혹시나 해서 노파심에 전하는 말이지만, 투리는 숙련된 요리사가 아니다. 부디 독자들 중에 투리의 조리법을 덥석 믿고 섣불리 따라하는 분들이 없으시길 바란다. 이것은 그저 투리가 파스타를 만들게 된 썰을 푸는 내용에 지나지 않는다.
충분히 다 섞었다면, 마지막으로 모차렐라 치즈를 넣고 끝~~~! 이것이 바로 기념비적인 투리표 첫 크림파스타 사진이다! 소금도 안 놓고, 양파도 안 넣고, 베이컨이나 다른 고기도 하나 안 넣은, 완전 밍밍한 베이식 크림파스타. 비록 다른 요릿집에서 하는 파스타랑은 비교도 안 되게 싱거운 내용물이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좀 더 마음 편히 먹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다지 기름진 재료가 많이 들어가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투리가 요리한 저것이 정녕 크림파스타인가. 이것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나중에 이탈리아와 터키 혼혈 니코라는 동기와 같은 주방을 썼을 때, 투리는 그에게 부득이하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 난 지금 크림파스타가 아니라 파스타의 형태를 띤 나만의 요리를 하고 있어. 너무 오해하지 않기를 바라!"
그때 호기롭게 만들었던 크림파스타, 아니 투리파스타는 앞으로도 폴란드 기숙사에 있을 때마다 계속 만들어 왔으며, 한국에 도착한 지금도 간간히 만들고 있다. 참 웃기게도, 폴란드 교환학생 경험을 통해 실용적으로 배운 것을 하나 말하라고 하면 투리는 이 경험을 말할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고작 짭 파스타 만드는 숙련도라니.
물론 지금은 양파랑 소금도 넣고 크림소스에 치즈도 한 번에 넣으니 수준이 조금 더 나아지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본인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만든 투리파스타 하나 덕분에 삶의 질이 한 층 높아졌다고 자부한다. 어차피 인생에 있어서 요리는 필수적인 관문이니까 말이다. 아, 그렇다고 이탈리아인 앞에서 투리파스타를 자랑스럽게 꺼내지는 못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