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룬 기행] '진저브레드 길드'가 진짜 있었던 도시?

<시가지>, 전쟁통에도 살아남은 코페르니쿠스의 중세 전통 도시

by 흑투리


길드.



유감스럽지만, 만에 하나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길드를 기대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이 글을 패스해 주시길 바란다. 투리가 말하는 '길드(Guild)'란 중세 시대에 상공업자들이 만든 동업 조합, 본인들의 사업에 대한 생산권과 상권의 자치권을 보장받는 집단을 말한다. 메이플스토리에서 나온 '길드'도 따지고 보면 그 '길드'에서 유래한 것이다.



여기서 길드 하면 어떤 길드가 생각나시는가? 게임 속 길드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보통은 대장장이, 무기제작, 혹은 모직물이나 정육점 쪽에 특화된 길드가 생각날 것이다. 그런데 진저브레드 길드? 뭔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가? 다시 강조하지만, 게임 '쿠키런'에서나 나오는 길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역사 속의 현실 길드를 말하는 거다.



놀랍게도, 그 길드가 실제로 존재했던 대표적인 도시가 있다. 그리고 그 도시는 지금도 진저브레드 쿠키를 관광 상품으로 내세우고 있다. 중세 도시의 교과서라고 불릴 만큼 상당한 이미지를 풍기면서 말이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어난 상징적인 도시이기도 한 이곳은 바로 토룬! 이번 글에서는 토룬과 엮인 투리의 이야기와 그 배경에 대해 다루어보도록 하겠다!








투리의 5번째 폴란드 여행 도시, 토룬.





기억하시는 독자 분들도 계시겠지만, 토룬은 투리가 ESN 동기들과 함께한 두 번째 폴란드 도시이다. 그와 동시에 투리가 당일치기로 방문한 몇 안 되는 지역들 중 하나이다.



카롤리나의 공지를 캡처한 장면. 다음으로 네덜란드 동기 브램이 질문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ESN 활동의 주최자는 카롤리나. 투리가 이전에 크라쿠프 편에서 불가리아 삼인방 중 한 명인 카롤리나(줄여서 '키키'라고 지칭)를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이 여자 동기는 교환학생 동기가 아니라 ESN 도우미이다. 말하자면 동명이인인 셈이다. 어차피 명확한 구분을 위해 각각 키키와 카롤리나로 다르게 부를 예정이므로 여러분이 헷갈릴 일은 없을 것이다. 참고로 이번 여행에 키키는 참여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집합 시간을 확인해 보니, 세상에. 새벽 5시 반이라니. 게다가 날씨도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란다. 왜 이렇게 빡빡하나 싶었는데, 당일치기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제정신으로 돌아오자마자 찍은 사진.



멍한 상태로 동기들을 따라서 겨우 기차를 타고 이동하니, 정신을 차린 순간 본인은 어느새 토룬에 도착해 있었다! 시각은 아침 8시가 조금 넘은 상태. 투리가 아는 동기들이 누가 있나 살펴보니, 지난 크라쿠프 여행 때 만났던 브램 같은 기숙사 한국인 동기의 버디 마티 등이 있었다. 아, 크라쿠프 여행 때는 언급하지 못했지만, 터키에서 온 우뭇이라는 동기도 있었다. 이 친구는 투리와 깊이 연관되지는 못했지만 ESN 여행에 모두 함께한 동기라서 얼굴이 많이 익숙한 동기였다.



특별히 이번 여행에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다른 세 명의 한국인 동기들 모두가 있었다. 이들은 확실히 마티랑 친한 편이라 점심도 카롤리나와 함께 다섯이서 같이 먹는 것 같았다. 반면 투리가 모르는 동기들도 여럿 있었는데, 프랑스인 니콜라스와 포르투갈인 펠리페, 벨라루스인 막스 등이 있었다. 특히 막스랑은 기차에 내리면서 여러 가지 얘기들을 주고받을 만큼 첫만남이 좋았다. ESN 위원회 동기들이 정숙을 요하면서 대화가 끊어지기는 했지만.





아무튼 투리와 동기들이 모인 이 광장은 코스모폴리스 분수! 저녁이 되면 주민들 앞에서 음악에 맞춰 화려한 분수 쇼를 펼친다지만, 지금은 저녁도 아니고 사람도 없는 상황. 모두의 시선이 ESN 위원회에게 쏠리자, 그들은 토룬을 안내할 가이드를 우리에게 소개했다. 백인을 많이 접한 경험은 없어서 주관적인 의견이긴 하지만, 투리의 눈에 가이드는 4~50대로 보이는 여성 분이셨다.





가이드는 간단히 인사를 마친 뒤, 토룬이란 도시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한 뒤 구시가지 쪽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사실 가이드가 하신 말씀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관계로 투리가 찾은 내용을 바탕으로 토룬을 설명하도록 하겠다. 토룬(Toruń)은 8세기부터 마을이 형성된 유서 깊은 중세 도시로, 세계대전 중에도 폭격당하지 않아 중세 모습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장소들 중 하나다. 이에 유네스코도 그 가치를 인정해 토룬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이전에 크라쿠프 기행글에서 소개했지만, 이렇게 도시 자체가 인정받은 비슷한 사례로는 크라쿠프와 자모스크가 있다.



근처 건물.



다만 토룬이 크라쿠프 등의 다른 도시들과 구별되는 특징은 도시 자체가 '중세 일변도'라는 것이다. 가이드도 그 지점을 명확히 강조하셨는데, 이 도시는 중세 시대의 양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대표적인 소도시이다. 글을 연재하면서 보게 되겠지만, 구 시청사와 토룬 대성당 등 상당수의 건물들이 14세기에 지어졌다. 이러한 영향으로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토룬에 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이동하다가 처음으로 마주친 구시가지의 풍경.



토룬이 본격적으로 도시로 성장하게 된 시발점은 13세기 중엽 튜튼 기사단이 이 부근에 요새를 세우면서였다. 튜튼 기사단은 요약하자면 1190년 예루살렘에서 창설된 가톨릭 기사단인데, 이들은 당시 프로이센을 본부로 삼으며 발트해 연안과 중부 유럽, 동유럽에 이르는 지역에까지 활동했었다. 토룬도 그때에는 프로이센 쪽에 속했으니 당연히 튜튼 기사단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 머리 탑.



이로 인해 토룬은 한자동맹에 가입하면서 무역과 상업을 통해 많은 이익을 얻고, 15세기에 튜튼 기사단이 토룬을 포기하면서 폴란드 왕국으로 넘어갔다. 그러다가 17세기 스웨덴의 침공을 계기로 토룬은 여러 나라들에게 호시탐탐 노려지고 말았다.



마침 스웨덴 하니까 위 사진의 탑과 관련된 일화가 하나 있다. 1629년 2월, 스웨덴 군이 토룬을 침공하자 방어벽에 누워 있던 고양이가 토룬 성문에 도착한 스웨덴 지휘자의 손을 발톱으로 할퀴었다고 한다. 그 뒤 고양이는 토룬의 영웅이 되면서 고양이 머리 탑이 유명해지게 되었다. 하지만 1703년 스웨덴이 토룬을 재침공하게 되면서 해당 탑은 파괴되고 만다. 이후 이 탑은 1825년 지금과 같은 둥근 요새 형태로 재건되었다.



토룬 구시청사 사진.



토룬 건물들의 전체적인 특징은 절제되어 있는 붉은 벽돌들이다. 어느 정도 사진을 보고 눈치챘겠지만, 토룬 구시가지에는 유독 붉은 건물들이 많이 있다. 고딕 양식의 건물들도 사진 속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실제로 토룬은 폴란드에서 가장 많은 고딕 양식 주택이 보존된 도시이다. 심지어는 16~18세기의 고딕 벽화나 목조 들보 천장을 그대로 간직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단체로 이동 중인 ESN 동기들.



이 부분을 동기들도 의식했는지 막스는 주변이 온통 빨간 건물들뿐이라고 언급했다. 그만큼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붉은 건물들은 다들 생소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건물들 구석구석이 중세 시대의 감성을 띠고 있는 건 나름 볼만했다. 바르샤바에서 장기간 공부한 막심 본인도 토룬의 배경이 바르샤바보다는 낫다고 했으니. 2007년에 폴란드 7대 경관에 선정되었고,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30곳 중 하나로 뽑힐 정도면 솔직히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방금 말하긴 했지만, 토룬 구시가지 건물들의 또 하나의 특징적인 요소는 바로 고딕 양식 그 자체다! 당시의 토룬은 한자동맹 시대의 부유함을 바탕으로 벽돌을 사용해 웅장하고 수직적인 성당과 시청사, 주택 등을 건설했다. 이때 만들어진 높은 첨탑스테인드글라스, 복잡한 기하학적 장식이 당시 건축의 정수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모르고 도시를 훑어봤을 때는 그러려니 하겠지만, 도시 방벽과 시청, 성당, 그리고 지금 여러분이 보시는 사진 속 건물들의 모습은 중세 시대의 토룬이 풍족했다는 증거라고 한다. 그도 그럴게, 토룬은 비스와 강(Vistula) 연안에 위치한 도시로 당시 장인들과 수공업자 중심으로 경제가 활성화되었다. 이런 도시가 제대로 번영하지 못하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각각 지도와 글귀가 적혀 있는 벽 부근.



그리고 이 지점에서 토룬의 트레이드마크가 또 하나 탄생하는데, 그것이 바로 '진저브레드'이다! 진저브레드는 그 시절 상업도시에서나 누릴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는데, 진저브레드를 만들려면 향신료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향신료오래 보관이 가능하고 운반이 쉽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 편리한 향신료가 중세 유럽에서는 귀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향신료에 대한 접근성이 좋은 항구도시 혹은 한자동맹 상업 네트워크의 핵심 거점 정도는 되어야 그 귀한 향신료를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토룬은 비록 내륙 도시였지만, 비스와 강을 통해 발트해로 연결되는 좋은 위치에 있었고, 한자동맹의 상업 네트워크 안에 있었기에 향신료를 접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향신료뿐만 아니라, 토룬은 비옥한 토양 덕분에 밀을 재배하기 유리한 환경에 있다. 거기에 인근 마을에서는 꿀도 쉽게 공급받을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진저브레드를 만들기에는 안성맞춤이라는 얘기다!





가이드를 따라 우리는 계속 걷다가 오른쪽 사진의 한 녹지에 멈추었다. 이곳은 과거 교회가 서 있던 자리였는데, 지금은 프로이센에 의해 파괴되어 성 니콜라우스 교회의 유적으로만 남아 있다.



녹지 위에 있던 지도. 이 지도 앞에 교환학생 동기들을 모아놓은 가이드는 토룬에 대한 설명을 지속하셨다.



가이드는 우리를 위의 지도 앞으로 안내하고 설명을 이어가셨는데, 그분의 말씀에 따르면 토룬은 세계대전 전과 후의 구조가 크게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20세기의 기준에 있어서 토룬은 군사적 가치가 그다지 높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는 상징적 의미가 너무 커서 폭격하기에 부담스러운 크라쿠프와는 대조적이다. 그렇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폭격이 없었다는 사실은 토룬에게는 좋은 일이다. 덕분에 지금처럼 유서 깊은 건물들을 즐겁게 찍을 수 있었으니까.





이렇게 소개한 내용들이 토룬에 대한 전체적인 배경설명이다. 물론 이 외에도 설명할 부분들은 많이 있지만, 기본적인 설명은 아마 이번 글 정도로만 알아도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다만 토룬의 이야기가 여기서 멈출 거라고 생각하지 말아 주시길. 비록 토룬이 다른 기행글에 언급되는 도시들에 비해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그 가치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큼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토룬이 크라쿠프보다도 좋은 관광지라고 여겼을 정도니까.





하지만 이번 글만으로 토룬의 모든 구시가지를 구석구석 다루기에는 역시 부족하다. 이에 투리는 시간순에 최대한 맞추어 투리의 두 번째 ESN 모험담을 하나둘 풀어내도록 하겠다. 그 글들이 공개될 때마다, 토룬의 숨은 매력에 조금씩 눈을 뜨는 여러분이 되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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