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쿠프 기행] 다른 열강들마저 사린 이 도시

<구시가지>, 폴란드의 정신적 심장을 담은 중심지

by 흑투리



여기 한 도시가 있다.


이 도시의 주권 국가는 열강이 아니다. 오히려 나라를 여러 번 잃기도 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파괴당한 역사가 없는 도시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도 그 점령한 주체가 합스부르크 제국, 나치 독일, 소련이라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여기 오늘, 그 '기적의 도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오늘의 기행글 주인공은 '크라쿠프'. 투리의 브런치북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역시 폴란드의 도시이다.


크라쿠프. 이 글을 읽는 독자 옆 친구한테 이 도시를 물어보면, 스물에 열아홉은 전혀 모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이 모른다고 해서 절대로 이 도시를 과소평가하지 마시길. 폴란드의 수도는 '바르샤바'이지만, 폴란드의 관광 도시는 '크라쿠프'이다. 이 도시가 바다가 아닌 비스와 강 근처에 있다는 것만 빼면, 상징성만으로는 거의 한국의 '부산'과 같다. 문화, 예술, 역사. 전방위적으로 빠질 데가 없는, 한마디로 올라운더 도시이다. 심지어 혹자는 폴란드인의 '정신적 수도'라고도 한다.


얼마나 대단하냐. 우선 이 도시는 초창기부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도시다. 바르샤바나 그단스크처럼 일부분이 아니라, 도시 '자체'가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다. 물론 토룬이나 자모시치처럼 도시 자체가 유네스코로 등재된 곳이 또 있긴 하지만, 크라쿠프는 대도시라는 것부터 규모가 다르다. 이 도시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세워진 도시인만큼 종교와 교육, 전통과 역사 등 여러 부문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래서 중부 유럽을 깊이 있게 보고자 하는 여행자라면 크라쿠프는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도시이다. 실제로 크라쿠프는 폴란드 최대의 관광도시이기도 하다.


게다가 크라쿠프는 근처에 쳉스트호바, 오시비엥침, 자코파네 등의 다른 관광 도시들도 있고, 소금 광산으로 유명한 비엘리츠카와는 아예 바로 옆에 있다. 상술한 도시들은 모두 투리가 각각 다른 날짜에 간 만큼 나중에 따로 다루겠지만, 위의 도시들까지 여행을 고려한다면 이틀만으로도 부족할 지경이다.



이 도시를 투리는 3월 21일부터 2박 3일간, ESN 교환학생 동기들과 함께하기로 했다.





비록 크라쿠프만 보는 것이라 해도, 애초에 폴란드 제2의 도시인만큼 볼 곳이 많기에 2박 3일로도 일정이 빡빡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ESN 위원회는 아침 6시 반쯤 학교 기숙사 앞으로 모이기로 정했었다.


그런데 다들 알지 않나. 규모가 많으면, 짧으면 10분, 길면 20분까지 지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거기에서 20분 정도 더 기다리다가, 정말로 시간이 없을 때가 되어서야 동기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왼쪽 사진을 보면 앞에 짐이나 가방을 들고 있는 학생들이 보일 텐데, 다들 본인 학교의 교환학생 동기들 내지는 현지 도우미 학생들이다. 오른쪽 사진을 보면 오전 8시 10분에 떠나는 크라쿠프행 열차 전광판이 보일 것이다. 해당 열차가 우리들이 탄 기차이다. 학교에서 바르샤바 중앙역까지 가는데 50분 정도 소요해서 딱 맞게 도착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당시의 투리는 폴란드 기차가 처음이기도 했지만, ESN 단체 여행도 처음이라 약간 어버버 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는 첫인상이라는 게 있는데, 몇몇 친구들은 굳거나 정색한 인상이라서 무서운 마음도 들었다. 안 그래도 저때는 백인 동기들과 함께 있는 게 완전히 익숙하지 않아서, 더 긴장했던 것도 있는 것 같다. 아, 혹시나 해서 얘기하지만 흑투리는 언어, 인종 모두 한국인이다. 혹시나 한국어 작문이 능숙한 독일인이나 다른 민족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있을까 봐 노파심에 적는 것이다. 어쨌거나 마지막이 되었을 때쯤은 저 친구들하고도 나름 익숙해져서, 지금은 이탈리아로 교환학생 간 그 한국인 후배가 본인 동기들보다 더 무섭다.(...)





ESN 위원회가 기차 좌석을 미리 예약해 두어서, 우리는 지정된 좌석에 앉기만 하면 됐다. 다행히도 같이 있었던 동기들이 모두 처음 보는 친구들은 아니었고, 기숙사 동기 아루잔이나 이전부터 자주 봐온 핀란드 동기 엘리나도 있었다. 엘리나는 와지엔키 공원이나 다른 행사가 있을 때마다 가끔씩 마주친 사이라 나름 익숙한 사이였다. 참고로 엘리나는 원체 한국 문화에 호감이 많은 동기라서 다른 한국인들과도 사이가 좋은 편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콘스탄틴이라는 독일인 동기도 있었는데, 그 월요일 첫 수업 때(2권 3화 '폴란드 교환학생이 맞이한 첫 수업' 참조) 한두 번 정도 만난 적이 있는 사이였다. 그러다가 투리가 해당 과목을 포기해서 정규수업에서는 인연이 없어졌지만.



기차가 지나가면서 찍은 사진



몇 시간 동안 이동한 끝에, 점심이 조금 안 되어서 우리는 모두 크라쿠프에 도착했다. 기차를 타면서 불편한 점이 있었는데, 휴대폰 전파가 중간에서 계속 끊기는 데다 기차의 와이파이까지 통하지 않아서 폰을 이용하기 너무 불편했다. 본인만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폴란드 버스나 기차를 이용하면 가끔 그럴 수도 있으니 참고하시길. 듣기로는 미국도 장시간 국토 횡단하면 전파가 안 터지는 지역이 있다고 하니, 위 문제는 앞으로 여행자들이 익숙해져야 할 부분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저런 경우는 드물지 않다고 본인의 버디가 와서 친히 증언해 주었다. 아, 이 여행에는 투리 본인의 버디도 포함되었다! 얼라라고 하는 투리의 동기는 만날 때마다 본인을 많이 귀여워해주던 좋은 폴란드 현지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잠깐 여행에 관해서 물어볼 게 있어서 DM을 미리 보냈는데, 그 부분을 직접 답장해 주려고 본인의 자리에 왔던 것이다. 투리의 질문에 관한 답을 알려면 웹을 여러 번 뒤져야 했는데, 계속 전파가 안 잡혀서 잠깐 그 얘기가 나온 것.





뭐 그래도 기차 밖을 나오면 전파 문제는 말끔히 해결이다. 크라쿠프 기차역에서 나오니, 투리의 오렌지 플렉스(폴란드 핸드폰 통신사) 유심은 다시 데이터를 열심히 돌렸다.





기차역에서 나오고 얼마 안 가 위의 상가같이 생긴 건물이 보였다. 사람들도 꽤 많이 보였는데, 이쪽 부근의 기차역은 1847년 완공된 이후로 수많은 열차들이 오고 가는 곳이라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군이 크라쿠프를 점령할 때에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이 역은, 현재 총 10개의 선로를 통해 폴란드 전국으로 퍼지는 다양한 열차 편을 운행한다고 한다.





자 이제 슬슬 크라쿠프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건물들 쪽으로 이동을 해볼까. 우리는 걸으면서 계속 이동을 했다. 일단 첫 번째 도착지는 구시가지 안에 있는 어떤 호스텔.





바로 위의 사진이 호스텔 근처에서 찍은 구시가지의 골목 사진이다. 유럽 경험이 적은 독자분들. 뭔가 정말로 활기차면서도 리얼한 느낌이 들지 않나? 그런데 지금 보니까 앞에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본인 학교의 동기들인 것 같다. 당장 앞에 얼굴이 나와 있는 두 친구는 왼쪽부터 각각 불가리아 출신의 마리아카밀라이다. 투리와 인연이 닿았던 불가리아 여자들은 총 세 명 있는데, 그중 두 동기가 저 친구들이다. 마리아는 ESN 여행을 다니면서 기회가 닿아 이런저런 대화를 한 적 있는 사이이다. 카밀라는 초반 행사 때 감기로 상태가 안 좋은 본인에게 가끔씩 신경을 써주어서 고마운 적이 있었다. 본인이 술집 순회 비슷한 행사를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1권 17화, '나랑 키스 한 번 할래?'), 길을 잃었을 때 도움을 조금 받았다.





짐을 호스텔에 풀고 다시 시가지를 둘러보니, 확실히 시가지답게 여러 기념품 샵과 고풍스러운 골목들이 눈을 즐겁게 했다. 마침 해당 동기들 중에 대만인인 산다라가 있었는데, 이 친구도 분위기가 맘에 들었는지 연거푸 이곳 근방에서 사진을 찍었다. 투리 본인은 본인 사진을 찍는 것을 그다지 즐기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본인마저 산다라의 설득(?)에 못 이겨 사진을 몇 장 찍고 말았다. 그때의 투리의 얼굴 스타일을 생각해 보면, 그다지 만족스럽게 나오지는 않은 듯. 감사하게도 본인이 생각했던 멋진 샷은 나중에 다른 여행지들에서 많이 찍는다.





이전 글들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많은 동기들의 이름이 나와서 다소 당황할 수 있다. 하지만 독자 분들이라면 걱정할 필요 없다. 저들 중 상당수는 이후의 여행에도 지속적으로 언급이 되어서 나중 되면 어느 정도 익숙해질 것이다. 아직까지는 동기들 소개에 밀려서 크라쿠프에 대한 소개를 많이 못했는데, 이제부터 조금씩 설명을 하도록 하겠다.



크라쿠프 빵을 파는 스탠드



점심때가 되었으니, 간단히 크라쿠프의 명물 빵에 대한 소개부터 해보자. ESN의 친절한 설명이 사진 왼쪽에 있긴 하지만, 조금 풀이하자면 오브바자넥(Obwarzanek)이라는 고리 모양 빵이 있다. 겉은 쫀득하고 속은 부드러운 형태의 해당 빵은 중세 시대부터 크라쿠프에서 팔렸던 전통 거리 음식인데, 삶아서 구운 형태로 만들어진다. 생각보다 이 빵을 그대로 재현하는 게 쉽지는 않은 모양인 게, 유럽에서는 EU 전통 특산물 보호를 명목으로 왼쪽 설명문의 PGI 마크를 단 스탠드만을 진짜 오브바자넥을 파는 빵으로 인정한다고 한다. 이런 예습이라고는 하나도 안 한 문제아 투리. 당시의 본인은 그저 동기들이 따라가는 스탠드를 기계적으로 따라다니기만 했다. 그때 갔던 스탠드가 제대로 된 스탠드였다는 걸 투리는 지금 사진을 업로드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무튼 베이글도, 프레젤도 아닌 오브바자넥은 개당 가격이 2.5~4zt 사이로 저렴한 편이다. 투리는 개인적으로 빵 위에 깨를 뿌려놓은 게 취향이었던 것 같다. 그쪽이 소금을 뿌린 것보다는 괜찮은 고소함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전체적인 맛으로 따지면 그렇게까지 특이한 맛은 아니었다. 퐁츠키 잼도 구별 못하는 투리가 오브바자넥의 독특한 맛을 구별해 낼 재간이 어디에 있다고. 투리가 아는 것은, 배고플 때 먹는 빵은 언제나 맛있다는 것. 그거 하나뿐이다. 아, 아는 게 하나 더 있다. 오브바자넥을 먹으시려면 무조건 동전이나 10zt짜리 지폐를 준비하시길. 어떤 스탠드는 현금도 너무 큰 지폐는 아예 안 받는다.





그러고 보니 위 사진에 노란색 차량들이 보이는데, 저 차량은 도보 보행이 불편하신 어르신 분들을 위해 만들어진 관광용 차량이다. 색깔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그단스크나 자코파네와 같은 다른 관광 도시들도 위와 같은 차량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새파랗게 젊은 ESN 학생들이니 저런 걸 탈 필요는 없겠지?!





위 사진은 구시가지에 있는 광장 부근들 중 한 군데였는데, 바르샤바나 브로츠와프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크라쿠프는 특히 그 광장이 뻥 뚫리다 못해 시원할 정도로 넓었는데, 유럽의 전체 광장들 중에서도 두 번째로 넓은 광장이라고 한다. 위 사진은 시장 쪽이라서 감흥이 없을 것 같은데, 아래 사진을 한 번 보자.





확실히 아까보다는 약간 넓어 보이지 않는가? 이렇듯 생각보다 장대한(?) 크라쿠프의 광장은 여행의 시작이자 끝마무리의 장소로 잡아도 전혀 흠이 없을 장소이다. 한편 사진 위의 중앙 건물은 직물회관으로, 과거 크라쿠프가 중부유럽의 무역 중심지로서 번영했음을 보여주는 건물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고딕양식으로 14세기에 지어졌지만 오랜 세월 동안 몇 번의 변화를 가해 19세기를 마지막으로 리모델링한 상태로 유지 중이다.





중앙 건물 쪽 사진으로는 보이지 않아서 위의 사진도 따로 찍었는데, 해당 사진은 직물회관 뒤에 있는 시청 시계탑이라고 한다. 지금은 철거되어 없어졌지만, 옛날에는 이곳에 시청사가 따로 있었나 보다.





크라쿠프가 유명한 이유는 넓은 구시가지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일단 첫 번째로 도시 발전이 시작된 바벨 언덕과 바벨 성이 있다. 특히 바벨 성은 폴란드에서도 가장 큰 성들 중 하나로 불릴 정도로 많은 중요한 건축 양식들과 상징성이 있는 곳이다. 두 번째로 크라쿠프에는 예술적으로 중요한 건축물들이 많다. 주변에 있는 일반 상점들부터 교회에 이르기까지, 그 양식과 웅장함은 이탈리아와 프랑스에도 견줄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거기에 학문적으로도 크라쿠프는 중부 유럽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대학교(야기에우워 대학, Uniwersytet Jagielloński)를 보유하고 있다. 해당 대학은 코페르니쿠스와 요한 바오로 2세도 다녔을 만큼 유서 깊은 학교이다.





투리가 보내는 광장과 구시가지의 사진들이 독자들을 얼마나 설득시켰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목 그대로 폴란드를 점령한 열강들은 그 누구도 이 아름다운 도시를 파괴하지 않았다. 합스부르크 제국(쉽게 말하면 지금의 오스트리아) 같은 경우는 분할 협정의 결과물로 크라쿠프를 양도받았고, 이 도시를 역사적인 문화 수도로 활용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 도시의 유산 자체를 존중해 주었다. 독일 나치 역시 이 도시를 파괴하기보다는 통치의 중심으로 남겨서 활용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고 한다. 당장 당시 총독이 바벨 성에서 거주하면서 아예 해당 도시의 문화를 '독일화'시키려고 한 것부터가 그들의 도시 보존 의지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소련이 파괴하지 않은 이유는 의도적인 활용 때문이라기보다는 타이밍이 맞아 운이 작용한 게 컸는데, 소련이 침공할 당시 나치는 크라쿠프에서 대피를 거의 마쳤기 때문이다. 굳이 손쉽게 손아귀에 넣을 수 있는 역사적 도시를 소련도 억지로 파괴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소련은 조금 특수한 케이스이긴 하지만, 열강들도 모두 이 도시의 상징성만큼은 인정했다는 얘기이다. 실제로 유럽 국가들 중에서 지배당한 국가 중 파괴당하지 않은 대도시는 정말로 손에 꼽을 정도이다.



앞의 동기들 상당수가 ESN 동기들이다.



대부분은 모르겠지만 아는 사람은 아는 엄청난 도시, 크라쿠프. 프라하나 부다페스트에 가려져서 그렇지, 이곳도 숨겨진 관광 맛집인 것은 확실하다. 나중에 몇몇 ESN 동기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관광으로만 봤을 때는 크라쿠프가 바르샤바보다 더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그렇게까지 공감이 가지는 않았지만, 역사나 건축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크라쿠프도 충분히 만족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개인의 생각은 여러분 각자에게 달려있지만, 그럼에도 이것 하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크라쿠프에 간다면, 그 주변 지역들도 볼 것이 많다. 혹시나 폴란드 집중 투어를 바라는 분이 계시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크라쿠프가 바르샤바보다 편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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