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이시라면 이런 과목은 무조건 들어라
한국을 떠난 지 정확히 한 달. 어김없이 생일이 찾아왔다. 하지만 여기에는 나의 생일을 축하해줄 지인도 없고, 친한 사람도 많지 않다. 큰 기대를 안 하고 상심에 빠진 채 수업에 들어가는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교수님께서 나를 친하게 반긴다. 무슨 일인가 하고 자리에 앉는데, 교수님께서 흐뭇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수업은 10학점짜리란다. 그리고 점수는 출석이랑 발표 1번, 딱 이것만 반영할 거야."
그 날, 나는 최고의 생일선물을 받았다.
본인의 글에 '흑'며들다 못해 이미 내성까지 생기신 독자 분들이여. 평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제목과 첫 시작에 놀랐는가? 미안하다! 제목을 생각보다 이쁘게 지은 것 같아서, 약간 분위기 낚시를 해 보고 싶었다. 실제로 감성 에세이 코너에는 저런 분위기로 시작하는 글들이 아주 많다. 하지만 역시, 그런 글은 꼬이다 못해 성격이 심연까지 가버린 투리와는 맞지 않다. 혹시나 그런 글을 기대하고 오신 새로운 독자 분들이 계셨다면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그래도 본인의 의도는 확실히 전한 것 같다. 각색이 많이 들어가긴 했지만, 공부가 싫은 교환학생에게 최고의 수업은 '학점이 높고 시험이 없는 수업'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농담은 됐고, 이제부터 진짜로 투리가 선택한 과목에 대한 에피소드를 꺼내겠다. 조금 더 오랜 여행기간을 위해 과감하게 월요일 아침 과목을 하나 포기한 투리. 교환학생 학교에서 요구하는 최소 학점이 20 ECTS라서, 특정 과목을 포기하면 그것을 메울 과목을 하나 더 들어야 한다. 어떤 과목을 선택해야 하나 전전긍긍하던 투리. 그런데 기숙사의 옆 방 동기, '아루잔'이 마침 본인이 수강한 과목에 대한 얘기를 했다.
*ECTS: 유럽의 학점 단위. 편의상 1.5ECTS가 한국의 1학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 10 ECTS짜리 수업 하나 듣고 있는데, 진짜 괜찮은 것 같아."
"뭐, 그 10학점짜리 과목?"
"응. 교수님 질문에만 잘 대답하면 추가점수 주는 것 같고, 과제도 딱히 없던데? 근데 개강한지 얼마 안 돼서 학생들이 아직 적극적이지는 않은 것 같음."
그 과목이 무슨 과목을 얘기하는지, 투리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과목란에 유일하게 떡하니 10 ECTS로 박혀 있던 과목이 'Climate change impacts on plant growth and crop yield'였기 때문이다(사실 저것보다 이름이 더 긴데 가독성을 위해 절반으로 줄였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 여러분도 잘 알지 않나. 저렇게 학점이 높은 과목이라면, 그만큼 어떤 대가가 있음이 분명했다. 뭐 과목의 난이도가 높다거나, 과제가 미친 듯이 많다거나, 그런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아루잔의 말은 뭔가 이상했다. 마치 과학적으로 따졌을 때, 그것은 마치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간다'와 같은 기본적인 법칙을 거스르는 무언가와도 같았다. 아니 모든 과목을 통틀어 가장 학점이 높은 과목이, 그렇게 쉬울 수가 있다고?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아루잔이 믿음직한 친구이긴 하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아직 반신반의였다. 그러다가 같은 방의 한국인 동기와 대화를 하는데, 또 그 'Climate' 과목 얘기가 나왔다.
"...네, 저 그 과목 듣고 있어요."
"아, 그렇군요. 괜찮으세요, 그 과목?"
"네. 그냥 학점이 제일 높아서 그거 들었는데, 그냥 교수님 발표하는 것만 듣고 과제는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저번에는 수업도 평소보다 2시간 일찍 끝났어요."
"???"
이건 또 무슨 얘기? 학점이 높다는 이유로 단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 과목을 수강한 동기도 신기했지만, 그보다 더 신기한 건 그 과목이 진짜로 학점'만' 높은 것 같았다. MZ식 전문용어로 풀이하자면 거의 '이왜진'과 같은 상황. 세 사람이 말하면 호랑이도 만든다고, 두 사람이 얘기하니까 귀가 솔깃해졌다. 거기에 투리의 몸은 잦은 아침 수업으로 이미 녹초 상태. 아직 수업도 몇 번 안 나갔다면, 지금이 그 수업을 수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한 번 들어는 보자는 심정으로, 투리의 손은 그 과목을 수강정정 바구니에 넣는다.
그리고 3월 20일, 투리의 생일. 드디어 시작된 투리의 첫 'Climate' 수업.
수업은 매주 목요일, 시간표상으로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의 5시간 수업. 하지만 거의 항상 오후 2~3시에 종료.
수업시간이 아주 약간 길지만 그건 학점이 높으니 당연한 거고, 수업 시작도 상대적으로 널널한 편.
첫인상(?)은 좋았지만, 그럼에도 기대 반 의심 반으로 교실에 들어간 투리. 안에 들어가니, 교수님이 본인에게 흥미를 보이며 처음 온 학생이냐고 물어보셨다. 그렇다고 대답을 하며, 본인은 본인의 메일을 교수님의 엑셀 파일에 추가해드렸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수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자, 그럼 첫 수업이 어떤 식이었는지 소개하도록 하겠다.
이 수업은 크게 3개의 순서대로 진행이 되는데, 외부 교수님의 강연, 강연 관련 기기 체험, 학생의 발표 순으로 전개된다. 담당 교수님이 직접 강의식 수업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고, 화상으로 외부 교수님과 연결이 되면 위 사진처럼 화상 수업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수업을 하시는 교수님은 매주마다 바뀐다. 그렇게 한두 분 정도 수업을 하시면, 쉬는 시간을 약간 가지다가 강의실의 교수님이 여러 가지 기계들을 보여주시면서 체험식으로 강의를 하신다. 가끔씩은 밖으로 나가서 기기를 만지시기도 한다. 그러다가 한 명이라도 해당 날짜에 발표 일정이 있다면 그 학생의 발표를 듣는 것으로 수업이 끝난다.
투리가 첫 수업에 참여했을 때는 화상 수업의 주제가 식물의 기본적인 내용이었다. 화상 수업을 진행하셨던 온라인 교수님은 약간 뽀글머리셨는데, 그때 세 가지 질문을 통해 수업을 진행할 거라고 말씀하셨었다. 그 중 첫 번째 질문은 '식물이 무엇이냐'였다. 식물이 어떤 특징을 가진 존재인지 명확하게 정의를 내린 다음, 그 다음으로 '식물은 어떤 방식으로 에너지를 얻는가'라는 질문을 하셨다. 그 뒤부터는 까먹었다. 강의실의 교수님이 노트필기와 핸드폰 이용을 자제하셨기 때문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초반에는 수업을 들으면서 노트필기를 하는 것도 지양하셨다. 그래서 투리는 노트에 해당 자료가 거의 없다.
그래도 괜찮기는 하다. 놀랍게도 이 과목의 성적반영은 출석과 발표 1번이 끝이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Sensors'와 관련된 주제로 발표를 한 번 더 하면 다른 7 ECTS 수업도 같이 수료가 된다는 사실이었다. 투리는 당시 이미 많은 과목들을 수강한 상태라 굳이 'Sensors' 수업까지 신청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같은 기숙사 방의 한국인 동료는 목요일 수업 한 번만으로 과목 2개를 넣어서 17 ECTS를 한 번에 모았단다. 투리는 졸업학점 인정 때문에 그런 편법(?)을 쓰지는 못했지만, 만약 저학년이었다면 본인도 그런 방식을 썼을 것 같기는 하다. 오후 수업을 같은 요일로 잡기만 하면 학교 수업을 일주일에 하루만 들어도 되는 거니까!
흠흠. 본색을 너무 드러냈다. 프롤로그에서 미리 말하기는 했지만, 학교는 영어로 기본적인 수업 이해도가 있는 학생을 선호하기는 한다. 그럼에도 막상 교환학생으로 지내는 학생의 관점에서 보면, 역시 학점 높고 시험 없는 과목이 최고이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공식 수업시간이 5시간이나 된다는 점이긴 하지만, 다른 실험과목들에 비하면 수업시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편도 아니다. 게다가 주기적으로 들어오는 과제도 없다. 이 정도면 MZ식 전문용어로 거의 '개꿀 빠는 과목'인 격이다.
어쨌든 결론이 뭐냐, 세상에 공짜가 거의 없긴 하지만, 드물게 진짜 공짜가 올 수도 있다! 하지만 당연히 공짜를 너무 좋아하면 안 되고, 정당한 대가를 통해 원하는 것을 얻는 자세를 가져야겠지? 그럼에도 순수한 공짜가 당신을 찾아온다면, 그 순간을 즐기시길! 이 글을 읽는 미래의 교환학생 꿈나무들도 각자의 소망에 맞게 원하는 시간표를 짤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교환학생 때는 그 학교 수업이 미친 듯이 좋은 게 아니라면, 최대한 많은 여행과 많은 학교 활동을 하시길. 그것이 여러분에게 미래에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