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마주치는 교환학생 외국 친구들
교환학생 글을 시작하고 어느덧 30개가 넘은 흑투리의 글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문제점이 하나 생겼다. 기행글이나 개인생활에 관한 글은 많이 있는데, 정작 다른 동기들과의 이야기는 별로 없다. 이런! 아무리 독고다이 성향이 강한 본인이지만, 이러다간 독자들이 투리를 자발적 아싸(?)로 오해할라. 아니, 사실 그것보다 큰 문제가 있다. 앞으로 동기들과의 에피소드를 다룬 글을 쓸 때, 여러분의 이해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이번 글부터는 투리가 알게 된 동기들을 조금씩 소개해보려고 한다.
아, 여기서 몇몇 독자 분들은 투리가 친구를 어떻게 사귈 수 있었는지 궁금해할 수 있다. 다만 이번 글의 주인공들은 서로 친해질 수 있었던 장소가 입으로 내뱉기 영 안 좋은 곳이다. 그게 어디냐고? 놀라지 마라. 답은 제목에 이미 나와 있다.
"투리는 초반에 만난 친구들과 화장실 앞에서 친해졌다."
그렇게 이상한 눈으로 봐주지 않길 바란다. 혹시 투리가 화장실에 들어간 사람을 변태처럼 옆에서 기다리다가 나올 때쯤 말을 거는 식으로 사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걱정 말라. 아무리 심연의 기운을 내뿜는 필자라지만, 본인은 그렇게까지 음흉한 성격이 아니다. 투리가 이 친구들과 대화를 많이 한 곳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거기가 화장실 앞이었던 것이다. 왜 하필 거기였냐고? 왜냐하면 그곳에 세면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면대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다 보면, 우연히 누군가와 겹치는 시간대가 있다. 그러다 보면 그 동기들과 생각보다 얘기를 많이 하게 된다. 그것이 투리가 일부 동기들과 말을 튼 비결(?)이다. 그러면 이 동기들은 어떤 동기였고, 또 투리에게 어떤 존재였냐. 그걸 이번 글에서 처음으로 집중적으로 다루어보고자 한다. 어차피 뒤에도 꾸준히 언급될 친구들이 대부분이니, 길게는 쓰지 않겠다!
참고로 본인과 같은 세면대를 공유하는 한국인들 역시 세 명이나 있었다. 그중 한 명은 투리와 같은 방을 썼던 남학생 분이다. 아쉽게도 투리는 외국 동기들을 집중적으로 다룰 예정이라서, (게다가 한국인 당사자들이 본인이 특정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어서) 해당 부분에 관한 얘기는 최소한으로 하겠다.
1권에서 서술했듯(1권 8화 '여자랑 먹고 자고 씻는 기숙사?' 참조), 투리는 9명의 학생들과 같은 세면대와 화장실을 공유하고, 다른 방에 있는 동기들은 전원 여자이다. 다시 말해, 남자는 본인을 포함한 세 명이 전부라는 뜻. 당연히 이 셋은 같은 방을 쓴다. 그러면 같은 방 멤버부터 소개하자. 감사하게도 외국인 친구들에 대한 이름 엠바고는 풀린 상태. 이 친구들을 직접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게 되어 기분이 좋다!
1) 크리스
본명은 상당히 길지만, 편의상 '크리스'라고 소개하도록 하겠다. 당연히 같은 방을 쓰는지라 이 친구랑은 구태여 세면대에서 대화하지는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 이 친구가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사람들이 아시아인은 방을 상당히 깨끗하게 관리한다는 편견이 있는 것 같단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정확히 된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까지 결벽증 있는 타입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투리의 예상대로 그 친구는 청결에 지나치게 둔감하지도 예민하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 딱 좋은 기숙사 동기였다는 말씀.
기숙사 안은 전체적으로 필요한 말만 딱 주고받고 할 일하는 조용한 분위기였다. 각자 적당히 거리를 두었던 느낌이랄까. 서로가 어색해서 그랬던 게 아니라, 본인이나 크리스 둘 다 말이 많은 타입이 아니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오히려 '크리스'는 투리와 단둘이서 여행을 함께한 거의 유일한 동기일 정도로 가까운 존재였다. 그리고 이 친구는 동기들 중 유일하게 본인에 대한 일부 과거를 알고 있기도 하다.
1) 아루잔
여기서부터가 '세면대'에서 대화를 좀 한 친구들이다. 이 친구는 투리가 만난 교환학생 동기들 중 가장 처음 얼굴을 마주한 사람이었다. 그때가 투리가 처음으로 기숙사에 왔을 때였는데, 현지 학생 '마티'의 도움을 받아 체크인 장소로 갔을 때 행정실에서 그 친구를 발견했었다. 홍콩 사람인가 싶은 생각이 순간 들었지만, 당시에는 정신이 없었던지라 인사를 나누지는 못했다.
이 친구와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 곳은 며칠 뒤 바에서였다. 여자임에도 남자 느낌을 풍겼던 이 친구는 알고 보니 카자흐스탄 출신이었다. 그 아우라(?)에 맞게 이 친구는 밴드 공연을 즐기는 타입이었으며, 일렉기타를 연주했던 경험도 있다. 그리고 이 친구는 놀랍게도 양성애자이다. 양성애자나 동성애자는 그때까지만 해도 말로만 들었었는데, 당사자가 가까이 있으니 뭔가 신기했다.
한편 이 친구는 영어 구사력이 아시아인들 중에서는 제일 현지인에 가까웠다. 그만큼 투리랑 함께했던 수업에서는 나름 우등생스러운 면모를 보였다. 투리는 이 친구에게 초반에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Biedronka' 마트의 위치를 알려준 친구가 아루잔이었다. 그녀는 또한 본인이 처음에 수업 시간표에 적응하지 못했을 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다.
2) 말키, 누라이
아루잔과 같은 방을 쓰는 것으로 보이는 나머지 두 카자흐스탄인이다. 말키는 세면대에서보다는 ESN 활동에서 얼굴을 마주한 적이 더 많았는데, 나름 활발한 성격이었다. 실제로 단체 채팅방이나 개인 DM을 보냈을 때도 말투가 상당히 살가웠다. 여러모로 정이 많은 동기 아니었나 싶다.
누라이는 화장실 앞, 그러니까 세면대에서 보는 일이 많았다. 나올 때마다 그녀는 70% 확률로 누군가와 자국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딱히 인상적인 대화를 많이는 못 했던 것 같지만, 그럼에도 화장실 앞에서 자주 보기는 해서 나중 가서는 그녀의 존재 자체가 아예 익숙해졌다.
1) 헤일리
화장실 앞에서 대화를 가장 많이 한 동기를 말하라고 하면 단언컨대 이 친구라고 말할 수 있다. 솔직히 투리는 그녀와 처음 만난 곳이 어디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International dinner' 파티라고, 각자 자국의 음식을 선보이는 파티에서 대화를 많이 한 기억은 있다. 이 친구는 가나에서 온 친구였는데, 몇몇 친구들이 그녀를 '공주님'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별명만 '공주님'이 아니라, 시간표도 '헤르미온느 공주님' 수준이었다. 투리가 화장실 앞 세면대에서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볼 때마다, 대부분 그녀는 과제와 수업으로 바쁘다고 말했었다. 아무래도 학점 이슈상 수강해야 하는 과목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돈도 많지 않아서 여행도 자주 못 갔던 것으로 보인다.
이 친구와는 대부분 세면대나 주방 쪽에서 얘기를 많이 했다. 가끔 본인의 식재료에 문제가 생기면 옆에서 그녀가 도와준 적도 있었고, 본인에게 무료로 과자를 베풀어주기도 했다. 화장실 앞에서는 과목 포기에 대한 얘기나 각자의 현실에 관한 얘기도 여러 차례 주고받았다. 이름 '흑투리'의 어원 역시 화장실 앞에서 그녀에게 설명해 줬었다. 참고로 이름 '흑투리'의 의미를 들은 적 있는 사람은 헤일리와 아루잔 둘뿐인데, 아루잔한테도 그 얘기를 화장실 앞에서 알려 주었다.(...)
2) 수수
아침에 부스스한 얼굴로 세면대에 나오다가 엉겁결에 통성명을 해버린 친구(1권 8화 '여자와 먹고 자고 씻는 기숙사?' 참고), 기억나시는 독자들 있는가? 그 친구가 바로 수수이다. 수수와 헤일리는 서로 같은 기숙사 방 동기로, 같은 가나인이다. 수수는 의외로 헤일리만큼 자주 마주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주방에서 우연히 만나면 가벼운 인사나 일상 얘기 정도는 나누었던 사이다.
이 친구를 생각하면 기숙사 외에는 상대적으로 많이 만나지는 않았지만, 의외로 많이 편한 사이였다. 주방에 같이 있을 때 가끔씩 뭔가가 필요하면 서로 물건을 빌리기도 했고, 초반에 투리가 칼질이 서툴렀을 때 수수 쪽에서 "도와줄까?"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실험복이 필요할 때 수수의 것을 빌리는 걸 고려하기도 했었다. 마지막 작별 행사 때는 서로 유쾌하게 사진도 잘 찍으면서 마무리했던, 그런 친근한 관계였다고 생각한다.
이상의 친구들이 투리와 한 세면대를 썼던 기숙사 메이트들이다. 간혹 다른 기숙사의 동기들 얘기를 들었을 때 이래저래 까다로운 사람도 있었던 것 같은데, 투리의 메이트들은 다들 괜찮은 동기들이었다. 위의 친구들 모두 어떻게든 앞으로의 서사에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물론 이 외에도 다른 친근한 사람들도 여럿 있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기행글과 학교생활을 연재하면서 천천히 언급하겠다. 이번 글에서는 일단 근본이 되는, '화장실 앞' 동기들까지 만족하시길.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얘기하자면, 외국인과 익숙하지 않은 독자 분들 입장에서 말을 거는 것이 긴장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도 같은 사람이다. 조금만 용기를 가지고 그들에게 편하게 대화를 시도한다면, 최소 사람 사귀는 데 인색한 투리 수준까지는 잘 사귈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스레드에서는 번역기만으로 바에서 친구를 여럿 만든 일본인 남자의 썰 얘기도 있었다. 이건 극단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여러분이라고 왜 못하겠나? 문화 차이 따위의 변명은 나중에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갈 때나 생각해 볼 일. 일단 한 번 부딪쳐보자! 시도를 해 본다면, 최소한 무언가는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