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 게임 박물관>과 은근히 강한 폴란드 속 서브컬처
"폴란드가 좋아하는 랜덤 게임, 랜덤 게임
Game start!"
음, 큰일 났다. 운은 띄웠건만, 요즘 폴란드인이 좋아하는 게임이 뭔지 모르겠다. 일단 '아파트'나 '프라이팬 놀이'는 당연히 아닐 거고. 어떤 게임이 있지? 아, 송구스럽다. 무려 페이커, 무릎 등의 걸출한 인재들을 배출한 게임덕후국의 후예이건만, 투리는 그 게임 열정과 지식을 대변해주지 못했다. 하지만 조금은 이해해 달라. 제아무리 한국인이라도 게임에 관심이 없다면 당연히 무지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이 MZ 남자 사이에서는 드문 경우이지만, 놀랍게도 여기에 속한 사람이 있다. 바로 본인 '흑투리'와 파트너 '유한열'.
사실 투리는 게임을 싫어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게임문화에 긍정적이다. 소싯적에는 밤을 새워서 닌텐도 게임을 했던 적도 있었고, 하도 게임에 미치니까 부모님이 일부러 게임기를 망가뜨린 경험도 생생하다. 하지만 10대 후반, 20대 초반(물론 현생의 육체적 나이!)으로 갈수록 본인은 게임보다 입시에 빠졌고, 입시 이후에도 다른 우선순위로 인해 게임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게임에 집중했던 게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이제는 저 옛날의 빛바랜 추억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그런데 최근 그 기억을 되살릴 뻔했던 적이 있다. 그것도 전혀 예상치 못한 바르샤바에서. 오늘은 그 경험을 털어놓으려 한다. 글을 진행하면서 겸사겸사 폴란드의 서브컬처에 대해서도 간단히 설명해 주겠다.
때는 3월 19일, 수업이 끝나고 오후 시간이 많이 여유로웠을 때였다. 이때 우연히 '신과 우주'에 관한 특강이 있다고 해서, 캠퍼스 밖을 나갈 일이 있었다. 특강이 시작하는 시각은 오후 6시부터. 정규수업은 오후 1시에 끝나니, 무려 5시간의 공백이 남는다. 그동안 뭘 할까 생각하다가, 우연히 구글맵을 보는 와중에 평점 높은 게임박물관을 발견하게 된다. 게임박물관? 게임박물관은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데. 뭔가 신기할 것 같아서, 이날 투리는 여기를 가기로 한다.
투리가 내린 곳은 바르샤바의 Włochy (브워히) 구. 특별한 관광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상업 및 주거 지역이 밀집한 바르샤바의 남서쪽 구이다. 아, 한 가지 특징이 있긴 있다. 바르샤바 쇼팽 공항이 이 브워히 구 안에 있다. 여담으로 하는 말인데, 바르샤바는 공항으로 가는 교통편이 압도적으로 편한 편이다. 공항버스를 타고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 서울이나 부다페스트 등과 달리, 바르샤바는 시내교통만으로 충분히 공항으로 도달할 수 있다. 이게 다 저 공항이 브워히 구에 있는 덕분이다.
하지만 오늘의 목적지는 공항이 아니니 패스. 도로 밑으로 내려간 다음 게임박물관이 있는 방향으로 이동한다.
공사 현장 근처의 기나긴 석조 건물 끝을 따라가 보니, 드디어 한 입구를 발견했다. 'Museum Gier Wideo'. 한국어로 비디오게임 박물관. 맞게 찾아온 것 같다.
안을 들어가니, 상당히 많은 수의 오락기들이 안에 놓여 있었다. 이제 막 오픈을 했는지, 투리가 들어갈 당시 게임기는 대부분 꺼져 있었다. 사람들도 아직 안 온 것 같았다.
그러다가 카운터 안의 사람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 분 왈 안에 들어가려면 결제를 먼저 해야 한단다. 가격대를 보았는데, 생각보다 많이 비쌌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박물관. 말만 박물관이지, 솔직히 말하면 시간제 아케이드 게임장과 다를 게 없다. 오락 시설에 가까운 곳이니 일반 전시관보다 비쌀 수밖에.
학생 신분이니 일반인보다는 싼 편이지만, 그래도 가격은 여전히 비싼 편이다. 몇 시간 있을까 고민하다가, 어차피 여기 온 거 화끈하게 있어 보자 하는 마음으로 2시간짜리로 결제했다. 1시간 있기에는 특강까지 남은 시간이 애매한 것도 있고.
사이트의 정보에 따르면, 이 박물관은 폴란드에서 고전 아케이드 게임을 가장 많이 모아놓은 장소라고 한다! 해당 게임박물관이 모아 놓은 아케이드 게임은 80년대와 90년대에 만들어진 게임이 대부분인데, 바르샤바 지점은 120여 대 이상이 비치되어 있다고 한다.
말은 아케이드 게임의 역사를 체험하고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 사실상 그런 게임들을 그냥 다 플레이해 볼 수 있다는 말. 개인뿐만 아니라 단체 예약도 가능하다. 참고로 이런 박물관이 크라쿠프에도 하나 더 있는데, 그쪽은 기기가 150대에다가 아예 핀볼 게임기도 비치시켜 놓았다고. 아무래도 가장 많은 게임기 수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이트의 설명은 아케이드 게임을 운영하는 업체 전체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뭐, 즐기면 얼마나 즐긴다고. 어깨를 으쓱하며, 투리는 2시간짜리를 결제했다. 결제가 끝나자, 주인은 본인에게 손목에 종이 팔찌를 묶게 했다. 이용시간이 적혀 있는 팔찌였는데, 팔찌를 다는 건 작년에 갔다 온 수원 화성의 '스포츠몬스터' 이후로 처음이었다.
사진을 보면 DDR, 아이스하키, 3D? 오락기 등등 다양한 게임들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사람도 없고, 게임기도 아직 켜지지 않은 것들이 많아서 게임을 하기에 약간 뻘쭘했다. 그래서 무슨 게임이 있나 먼저 둘러봤는데, 익숙한 게임기들이 상당히 많았다. 뭐랄까. 90년대생들이 동네 문방구 근처에 가면 찾을 수 있는 오락기 느낌? 투리의 현재 육체가 초등학생이었던 시절만 해도, 그때는 철권이나 보글보글 같은 오락기들을 문방구 근처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되니, 그런 오락기들은 하나둘 자취를 감추었다. 생각해 보니, 당시에도 본인은 게임을 직접 하는 것보다 남들이 게임하는 걸 보는 걸 더 즐겼다. 그래서 오락실을 가면 항상 게임하는 사람이 있나 기대하면서 들어갔었다.
말이 길었다. 아무튼 이곳에는 투리 나이대의 오락실 게임부터 80년대에나 성행했을 것 같은 '1945' 류의 게임까지 다양한 종류의 게임기들이 있었다. 어느 정도 둘러본 이후, 본인은 가장 익숙한 게임부터 조심스럽게 건드렸다. 플레이스테이션 2로 해 봤던 'Sonic the Hedgehog'부터 시작해 보자.
어, 그런데 생각보다 재미있다. 오랜만에 게임의 맛을 느껴버린 투리. Continue를 계속하다 보니, 어느새 30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큰일 났다. 이러다간 이것만 붙잡고 두 시간을 다 써버리겠어. 4 스테이지까지 가다가 소닉이 죽어버리자, 투리는 다른 오락기로 자리를 옮겼다.
다음으로 시도한 게임은 모두가 들어본 그 고전 게임, '킹콩'.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플레이해 본 적은 없었는데, 몇 번 도전해 보다가 포기했다. 아예 모르고 시작하니까 너무 어려웠는데, 공략 방법을 도저히 모르겠다.
그렇게 미국 2D 감성 물씬 나는 게임기부터 극성 오타쿠들이 좋아할 것 같은 리듬게임까지 여러 게임을 찍먹 해보다가, 마지막 40분은 유령 잡는 루이지 맨션 게임으로 박물관에서의 활동을 마쳤다. 게임 도중에 재시도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뭐 그래도 만족하고 2시간을 썼으니, 불만은 없다.
그렇게 투리의 '관광지 발굴 일정'은 '게임에 눈을 뜬 소년'의 결말로 끝이 났는데, 투리의 독자들은 유럽이 이런 서브컬처에 얼마나 관심이 있을 것 같은가? 얼핏 보면 유럽인들의 취향이 고상해서 그런 쪽(?)과는 거리가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미국인이나 일본인이 즐기는 문화를 유럽 사람들이라고 못 즐긴다는 법이 있나? 사람 사는 게 똑같다는 건 이럴 때 하는 말이다.
실제로 유럽에서도 서브컬처 문화는 상당히 활성화되어 있어서, 일본애니나 모바일 IP 게임 캐릭터들의 코스프레를 하면서 코믹콘이나 트위치콘 같은 행사들이 많이 진행된다. 서유럽, 특히 영국과 프랑스 같은 주요 강국들은 이런 문화에 접근성이 높은 편인지, 찾아보니 코믹콘 진행 장소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이번 글의 주제는 폴란드이니, 여기서는 폴란드의 서브컬처를 중점적으로 다루어보자. 아무래도 교류가 활발한 서유럽 쪽에 비해, 중부 유럽은 상대적으로 그 세가 약하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폴란드인들이 일본애니나 한국웹툰 같은 서브컬처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학기 중반쯤 정규 학교 학생들과 대화했던 경험이 몇 번 있었는데, 그들도 일본애니를 즐겨본다고 말했었다(그런데 그 얘기가 어쩌다가 나온 거지).
실제로 폴란드의 서브컬처와 게임 문화는 은근히 강한 편인데, 바르샤바와 우치와 같은 대도시에는 코믹콘들이 정기적으로 자주 열린다. 특히 포즈난의 'Multigenre Fan Convention Pyrkon(약칭 피르콘)'이라는 행사는 규모가 5만을 넘을 정도로 유럽에서도 큰 박람회라고 한다. 아마 중부 유럽에서는 규모가 가장 클 것이다.
이런 행사들은 주로 여러 비디오와 보드 게임이나 인기 만화와 영화 등의 홍보, 체험활동을 주로 진행한다고 한다. 상설 전시장을 가면 <에반게리온>, <왕좌의 게임>, <스타워즈> 등의 세계적인 인기 작품들은 물론이고, 폴란드 인디 게임이나 자체 게임사의 홍보도 같이 진행되는 걸로 알고 있다. 물론 이 얘기는 포즈난만의 얘기가 아니라, 바르샤바나 우치와 같은 대도시의 코믹콘에도 해당되는 얘기이다.
폴란드 게임사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The Witcher》, 《Cyberpunk 2077》를 만든 'CD Projekt RED', 《Dying Light》시리즈의 'Techland', 《Frostpunk》, 《The invincible》 등으로 유명한 '11 bit studio'가 모두 폴란드의 대표 회사인데, 이들은 끊임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특색 있는 게임들을 만들고 있다. 이에 따라 여러 인플루언서들이 해당 게임들의 시참 겸 홍보차 폴란드를 방문하기도 한다.
1년 전이었나. '11 bit studio'에서 'Frostpunk 2' 홍보 행사를 주최한 적이 있었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버튜버들 중 한 명인 홀로라이브의 '오로 크로니'가 실제로 폴란드를 방문하기도 했다(제작사가 바르샤바에 있어서 아마 바르샤바로 간 것 같다). 오로 크로니가 'Frostpunk' 시리즈를 좋아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를 안 게임사가 그녀를 행사에 초청한 것 같았다. 최근 오로 크로니의 영상에 관심을 가진 투리로서는 그 사실이 왠지 모르게 신기했다. 그 외에도 올해 다른 홀로라이브 멤버 '타카나시 키아라'나 '네리사 레이븐크로프트'도 콘서트를 위해 폴란드를 방문하기도 했다.
(*버튜버: 3D 캐릭터를 이용해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는 스트리머)
이렇듯 폴란드는 서브컬처와 게임 분야에서 우리나라나 중국처럼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일부 인디 게임 분야에서는 상당한 강점을 지니고 있다. 어쨌든 게임을 한동안 놓았었던 투리는, 의외(?)의 서브컬처 강국 폴란드에서 이날 게임을 간만에 하고 왔다. 사실 이번 글은 관광지보다는 문화적인 비중이 커서 기행글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하다. 하지만 중부유럽과 폴란드에 대한 보다 넓은 이해를 위해 이번에는 서브컬처에 관한 내용을 투리의 경험과 접목시키고 싶었다. 아무쪼록 이 글을 통해 누군가의 (폴란드에 대한) 편견이 깨졌기를 바라며, 오늘의 글을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