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CAK 미술관>, 홀로코스트 부지 위에 세워진 현대예술의 장
주의! 글에 개제한 일부 작품들 중에는 다소 선정적이거나 특정 신체 부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작품들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위 사실에 먼저 유념하며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이 글을 찾아온 독자 분들을 환영한다! 해당 글을 찾아오신 분들 중에는 순전히 크라쿠프에 관심이 많은 분도 있을 거고, 폴란드 여행을 준비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글의 배경을 누구보다도 흥미 있게 바라볼 분들은 아마 '영화 덕후', 특히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팬들일 것이다. <쉰들러 리스트>, 다들 한 번 들어본 적 있는 영화 이름 아닌가? 바로 이번 글의 배경이 해당 영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것도 아주, 아주 슬프게 연관되어 있다.
일단 미술관 소개부터 하자. 투리가 크라쿠프에 방문했을 때는 ESN 단체여행 형태였는데, 가장 첫 번째 공식 일정이 'MOCAK 미술관'이었다. 이 미술관은 크라쿠프에 있는 가장 대표적인 현대 미술관으로, 2011년 5월 19일에 개관한 비교적 따끈따끈한 장소이다.
왜 다른 미술관도 아니고 굳이 MOCAK 미술관을? 솔직히 아무것도 몰랐던 투리는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생각은 미술관을 갔다 온 뒤에도 가시지 않았다. 원래 현대 미술관이라는 것이 어떨 때는 조금 난해한 법이니까. 그렇지만 해당 일정을 짠 위원회는 실제 폴란드 현지인들. 이들이 아무 이유 없이 이곳을 방문 리스트에 넣지는 않았을 것이다. 재미를 위해서라기보다, 어떠한 상징적 의미가 있기에 구태여 버스까지 타면서 그 먼 길을 가는 것이다.
아쉽게도 우리가 갔을 때 위원회가 그 배경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투리가 이곳을 방문할 누군가를 위해 대신 설명을 해주겠다. 폴란드는 과거 나치에 의해서 점령을 당한 역사가 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유대인 격리시설들이 만들어졌다. 대표적인 장소가 오스카 쉰들러(Oskar Schindler)라는 나치당원의 공장이었는데, 그 공장 부지 위에 만들어진 곳이 MOCAK 현대미술관이다. 오스카 쉰들러의 공장은 도심에서 3km 떨어진 금속 제품 공장으로 1937년 처음 세워졌는데, 에나멜 접시 및 주석 제품을 주로 생산하는 곳이었다. 그중 일부를 2005년 크라쿠프가 인수해서 그중 일부를 미술관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오스카 쉰들러라는 인물에 대해 최대한 짧게 소개를 하자면, 그는 원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첩보 경력도 있는 독일 나치당의 사업가였다. 들리는 말로는 여성편력도 심하고 돈도 꽤 밝히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원래는 본인 공장의 값싼 노동력을 얻으려고 유대인들을 대거 데려왔는데, 그들과 함께 지내는 기간이 늘고 동료 나치들의 악랄한 행위를 보면서 이들을 향한 인간성이 생겼다고 한다. 이후 그는 본인의 장교 권위와 여러 값비싼 뇌물을 통해 게슈타포로부터 더욱 많은 유대인을 빼돌렸고, 결과적으로 1200여 명의 유대인을 구한다.
'쉰들러 리스트'를 보신 분들이라면 지금까지 투리가 한 설명이 이해가 될 것이다. 그 공장이 이 날 우리 동기들이 거쳐간 장소이다. 실제로 이 미술관 근처에 당시의 역사를 기리는 '오스카 쉰들러 공장'이 존재한다. 저기도 크라쿠프의 대표 관광지들 중 한 군데라서 관심 있는 분들은 방문하기를 권장한다. 다만 ESN 위원회가 저기를 방문하지 않은 건 너무 분위기가 가라앉을 것 같아서인 것 같다.
이 이상 배경을 설명하면 그때부터는 쉰들러 공장 기행글이랑 다를 바가 없으니, 이제부터는 현대미술관 자체에 집중하자. 투리는 쉰들러 공장을 가지 못해서 관련 배경설명은 여기까지가 전부이다!
설명에 의하면, MOCAK 미술관의 목표는 두 가지란다. 첫 번째는 전후 아방가르드와 개념 미술의 맥락 속에서 최근 20년의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예술의 인식적, 윤리적 가치와 일상과의 관계성을 부각하는 것이다. 예컨대 이곳은 85년 전쯤 수많은 폴란드인과 유대인이 고통받았던 곳이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으니, 작품들을 통해 다시 윤리적 의식을 일깨우는 용도로 이 땅의 존재의의를 뒤집어 놓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이 있다면, 이 미술관의 대부분이 폴란드인의 작품들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투리가 이곳에 와서 찍은 사진들이 별로 없었다. 워낙 미술관이 작았던 것도 있고, 미술관에 들어갔을 당시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어쩔 수 없다. 몇몇 장면들은 본인의 기억과 사이트의 정보에 의존해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나니, 바로 옆에 있는 위 사진의 작품들부터 이 미술관의 난해함을 알려주고 있었다. 처음에 본인은 오른쪽 냉장고에 있는 단어가 오렌지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그렇다. 현대미술관은 참으로 독특한 곳이다.
위의 여러 조각상들은 Teresa와 Andrzej Starmach가 2023년 가을에 기부한 예술 작품들이라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폴란드 현대 작가들의 작품들을 소유하다가 기부한 것들인데, 모두 67점에 달한다고 한다. 해당 작품들을 만든 폴란드인 중에는 Magdalena Abakanowicz, Władysław Hasior, Mirosław Bałka, Marzena Nowak 등이 있다는데, 당연히 투리가 모르는 분들이다. 애초에 투리가 아는 서양 미술가 이름이 열 손가락을 넘는지부터가 의문이다. 어쨌거나 해당 작품들은 1945년 이후 폴란드 미술의 특징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고 한다.
투리 본인이 봤던 가장 인상 깊은 현대 미술 작품이 백남준의 텔레비전 탑 작품(?)이라서 그런가, 현대미술관 하면 영상 매체 아니겠는가! 유럽의 현대미술관에 오면 영상을 이용해 시각적인 효과를 노린 작품들이 참 많다.
위 작품이 아마 투리가 폴란드에 와서 처음으로 본 영상 형태의 작품인 것 같다. 영상을 보니까 여자가 남자를 따라서 엎드려 있는 장면 같은데, 일종의 행위 예술을 보는 느낌이었다.
위의 영상은 발리 엑스포트(Valie Export)라는 이름의 오스트리아인 작가의 작품들을 전시한 영상의 사진들인데, 설명문을 보니 작품의 이름은 'Metanoia'인 것 같다. 이 작품은 1966년에서 2010년까지 만든 29개의 영상들을 엄선해서 내보낸 것인데, Metanoia라는 말 자체는 그리스어로 영적, 정신적 변화를 뜻한다고 한다. 해당 작품 안에는 실험적인 작품, 퍼포먼스 아트, 비디오 포엠(시의 형식을 영상으로 표현하는 기법)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이 들어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방식을 통해 사회 속에서의 여성의 시선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본인이 보았을 때는 한 여성이 저렇게 옆으로 누우면서 콧구멍을 벌렁거리는 모습을 찍는 것 같았지만(...), 유럽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인물인 것처럼 보인다. 설명문에 따르면 Valie Export는 유럽 페미니즘 아방가르드의 대표 주자들 중 한 명이며, 여성의 몸을 저항과 표현의 수단으로 활용한 혁신적인 예술가라고 한다. 오해하면 안 되는 게, 저 예술가가 활동했을 당시는 1960~70년대라는 것을 잊지 말아 주길 바란다. 그때의 페미니즘은 지금의 과격한 이데올로기 형태가 아니라, 예술 안에서의 여성의 역할에 대한 담론이 활발했을 시기였다. 그런 부분에서 해당 작품은 특정 사상이 담긴 게 아닌, 그저 예술에 대한 성찰과 비판을 상징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같은 작가의 또 다른 작품. 작품의 이름 'Hyperbulie'라는 말은 보통 사람보다 의지가 비정상적으로 강해지고 정신적으로 흥분한 상태라는데, 투리의 설명을 들으면 왜 그렇게 지었는지 납득이 갈 것이다. 영상을 보면 긴 철사들이 여러 개 보일 텐데, 모두 전류가 흐르는 것들이라고 한다. 그 사이를 작가가 통과하는 걸 직접 찍은 거다. 그것도 나체로. 저 철사, 닿으면 당연히 아플 텐데, 여자는 철사들과 여러 번 접촉한다. 설명을 보면 작가는 급진적인 신체적 도전을 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싶었나 보다. 그것도 자기 몸으로.
여러모로 본인의 머리로 이해가 안 되는 작품들을 지나가면서 보는데, 한쪽에 피아노가 전시되어 있었다. 딱 보니 일반인들도 이용이 가능했는데, 어떤 여자가 피아노에 앉아 OST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프랑스인인 이네즈였다. 나중에는 투리가 마주치는 프랑스인들 중 가장 편한 사이가 되지만, 당시의 본인은 친분이 없었기에 그냥 연주를 괜찮게 한다고만 생각했다. 악기를 연주할 수 있다는 건 인생에 있어 메리트니까. 사실 행위 예술 하면 또 생각나는 것들 중 하나가 악기이다. 애초에 연주 가능한 악기를 배치한 것부터가 예술가들도 전시실 안에서의 즉흥적인 연주를 긍정적으로 본다는 말 아닐까?
아까 나왔던 아날로그 영상들처럼 일반인에게 다소 기괴한 작품들도 있었는가 하면, 위 사진처럼 상대적으로 의미가 있어 보이는 작품들도 있었다. 단어 해설부터 하면 Było, jest, będzie는 각각 it was, it is, it will be라는 뜻인데, 작가 스타니스와프 드루시치(Stanisław Dróżdż)는 저렇게 반복적으로 단어를 배치하면서 시간, 존재, 반복이라는 주제를 집약적으로 담고 싶었다고 한다. 저렇게 물질적 형태보다 관념이나 아이디어에 치중한 미술 작품을 개념미술이라고 하는데, 드루시치는 대표적인 폴란드인 개념미술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또한 저렇게 콘크리트식 시 형태의 작품들도 여러 개 만들었다고 한다.
아, 당연히 청각적인 효과를 강조한 작품들도 여러 개 있었다. 어쩌다 보니 다시 발리 엑스포트의 작품을 소개하게 되는데, 영상 속에서는 그녀의 목과 후두를 카메라로 찍은 모습이 나오고 있다. 영상 아래의 헤드셋을 끼면 그녀의 발음을 들을 수 있는데, 엑스포트가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낼 때마다 후두의 변화를 영상으로 담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상이 투리가 이 미술관에서 찍은 사진의 전부이다! 현대미술관 같은 경우는 다른 전통적인 형태의 미술관과 달리 시각이나 청각적 효과가 강조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추상적인 관념,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을 예술가마다 각자의 방법으로 표현한 독특한 작품들도 참 많은데, MOCAK 미술관의 내용은 지금까지 투리가 말한 내용들을 알고 가면 감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솔직히 미술관의 의도대로 예술과 일상의 관계가 일반인에게 부각될 만큼 설득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주변 동기들한테 물어보니까 난해하고 이해할 수 없었다는 반응이 거의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다시 대표적인 작품들을 정리해 보니, 그 노력이 나름 들어간 흔적들을 엿볼 수는 있었다. 작품들의 양이 많지도 않고, 내용도 난해해서 다시 MOCAK 미술관을 가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현대미술관이 궁금하신 분들은 크라쿠프에 갈 때 찍먹하는 느낌으로 가면 좋을 것 같다. 비록 내용은 적었지만 그 안에 여러 배경이 담긴 MOCAK 현대미술관. 다음 현대미술관 글은 더욱 재미있는 장소로 찾아오도록 하겠다! 이번 글도 독자 분들의 교양에 도움이 되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