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 동기들과 맞이하는 첫 여행날 밤
구시가지 탐방, MOCAK 박물관, 크라쿠스 언덕으로 첫째 날 관광 일정을 모두 마무리한 ESN 동기들.
단체로 우르르 버스를 이용한 끝에, 우리는 다시 호스텔이 있는 구시가지 쪽으로 돌아왔다. 투리 본인은 엘리나와 산다라 등의 일행과 같이 있었는데, 마침 산다라가 예술가 모자를 쓴 남자와 독일인 알렉세이와 있었다. 그러다 보니, 투리는 본인도 모르게 그들과 같이 저녁 시간 동안 붙어 다니게 되었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 예술가형 모자를 쓴 남자와 대화를 조금씩 할 기회가 있었는데, 남자의 이름은 발렌틴. 본인의 편견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생긴 게 딱 프랑스인이었는데, 예상과 달리 스웨덴에서 온 친구였다. 생각해 보면 프랑스인인 이네즈랑 자주 대화를 해서 프랑스인으로 착각한 것도 있는 것 같다.
어쨌거나 자기소개를 하는 과정에서 발렌틴도 투리 본인의 국적을 알게 되었는데, 그 뒤로 가끔씩 숙소에서 쉴 때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이따금씩 말을 걸어왔다. 예를 들면, 오후쯤 방에 있었을 때 "저녁 먹었어요?"라는 말을 영어식 발음으로 말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게 맞냐고 물어보는 식으로. 한국어를 잘 아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국어 자체에 약간의 관심은 있어 보였다. 그게 아니면 저렇게 굳이 굳이 어색한 한국어로 말을 걸 리가 없잖아.
ESN 위원회에서 준 시간표를 확인해 보니, 크라쿠프 여행의 밤은 첫째 날과 둘째 날 모두가 클럽 타임이다. 9시 정도에는 호스텔 안 어딘가에서 댄스파티를 하거나 바에 따로 가 있는 등 각자의 시간을 가지다가, 11시 반쯤 정식 클럽에 가서 노는 것이 일정의 흐름이었다. 버스에 내려서 호스텔로 도착할 당시에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던 상태. 일단은 식사가 우선이다. 금강산은 식후경이라고, 먹지 않으면 놀 힘도 없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발렌틴이 아이디어를 낸다.
그 장소는 바로 여기! 딱 봐도 음식을 받아가는 곳처럼 생긴 이 가게는, 앞에 몇 명이 먼저 줄을 서 있었다. 무슨 요리를 하나 봤는데, 하나같이 네모난 피자빵처럼 생긴 것들이었다. 애초에 폴란드어를 모르는 투리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도 감이 안 오는 상태. 메뉴를 보니, 본인이 알아볼 수 있는 단어는 '폴란드식'과 '페퍼로니'밖에 없었다.
이 음식점에 온 동기들은 투리, 산다라, 발렌틴, 알렉세이와 키키. 일단 각자 들고 있는 물건이 많아서 몇몇은 받았으면 먼저 빠지기로 했다. 나머지 일행은 음식을 받으면 다른 간식들과 준비를 하고 호스텔 위쪽 휴게실에서 모이는 걸로 했다. 투리는 가장 마지막으로 주문을 받기에 어떤 걸 골라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그나마 제일 확실한 게 페퍼로니밖에 없어서 그걸로 먹기로 한다. 덤으로 콜라까지 편의점에서 산 다음, 재정비 바로 뒤에 휴게실로 가는 거다!
대충 먼저 취침하는 방에 들어가서 재정비를 하면서 잠깐 침대에 있는데, 발렌틴 아래 침대에 있는 터키인 동기가 갑자기 방향을 틀더니 어딘가를 형해 기도를 하는 자세를 보였다. 그러자 오전에 본인에게 말을 걸었던 친구(2권 9화, 'ESN 동기들과의 첫 동거' 참조)가 기도하는 건지 확인하다가, 터키 친구가 양해를 구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신경 쓰지 말라고 대답했다. 친구의 종교는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터키인의 90% 이상이 이슬람교이고 기도가 향하는 방향이 따로 있는 걸 보면, 그 터키 동기도 이슬람교인 것 같았다. 조금 신기하기는 했지만, 투리도 친구가 방해받지 않도록 굳이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터키 동기의 기도가 끝나고 본인도 재정비를 마칠 즈음, 이번에는 그 친구가 다시 본인에게 말을 걸었다. 그때랑 똑같은 표정, 똑같은 말투로. 지금 생각해 보면 별 감정 없이 그냥 순수하게 물었던 느낌이지만, 아직 동기들과 친하지도 않고 그들의 말투도 적응이 안 됐던 당시의 투리는 계속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어이, 투리!"
"응?"
"그, 한국에 유명한 기업이 삼성 말고 어디가 있지? 한 번 읊어봐!"
"유, 유명한 데? 어....LG?"
"응? LG? ......'Life Is Good'의 그 LG? (다른 친구에게 시선을 돌리며) 거기도 한국 거였어?"
신기하다는 듯, 그 친구는 확인받듯이 다른 친구를 보며 말했다. 보아하니 저 친구도 LG 기업 자체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놀랄 것도 없는 게, 본인도 '엑손모빌' 같은 큰 기업들도 어느 국적 회사인지 전부 알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해당 기업을 들어봤다는 거 자체가 의외이긴 했다. 본인에게는 그냥 자동반사적으로 튀어나온 기업들 중 하나에 불과한데.
아무튼 그렇게 심심한 대화를 마치고, 본인은 휴게소로 올라갔다. 발렌틴, 알렉세이와 산다라, 본인은 거의 같은 타이밍에 올라왔다. 휴게소에는 우리 넷 이외에 아무도 없었다. 키키는 조금 늦게 휴게실에 도착했다.
우리는 각자가 식당에서 주문한 피자빵 모양의 음식(?)을 비교한 다음,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아까 말했다시피 본인이 주문한 메뉴는 페퍼로니. 사진만 딱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저 음식의 이름이 뭔가. 제목을 봤다면 어느 정도 눈치챘겠지만 저것은 피자가 아니라 '자피에칸카'다. 피에로기와 함께 폴란드의 대표 국민 음식 격이라고 보면 되는데, 맛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피자 바게트의 맛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그 차이가 만두와 피에로기 사이의 간격보다도 더 작은 것 같지만, 양끝 부분이 바삭하고 딱딱한 점은 피자빵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아주 간단히 어원을 풀이하면, 자피에칸카는 폴란드어 동사 zapiekać에서 유래했다. 해당 동사는 "재료가 서로 결합하고 위에 바삭하고 갈색으로 구워진 껍질이 형성되도록 요리를 굽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 그냥 간단히 요약하면 '폴란드식 오픈 피자 샌드위치'라는 말이다. 자피에칸카가 만들어진 건 1970년대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식량 부족 기간이었던 당시 푸드트럭의 형태로 팔리면서 국민 음식으로 거듭났다고 한다.
음식이 바게트의 형태를 띤 것은 개발자가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성장 기간을 보내면서 관련 면허를 딴 배경이 컸다. 지금이야 폴란드도 자본주의 시대라서 수요가 그때처럼 많지는 않지만, 크라쿠프와 같은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인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크라쿠프에 유독 '자피에칸카'라는 간판이 많았던 것 같다. '크라쿠프식'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이는 건 덤이고.
허기를 어느 정도 달랠 즈음, 키키가 과자 하나를 추가로 꺼내기 시작했다. 키키 말로는 이 과자가 불가리아에서 흔히 살 수 있는 과자라고 했는데, '마레띠'라는 이름의 브랜드 과자였다. 생각해 보면 키키는 친구들한테 불가리아 관련 음식을 나누어줄 때마다 좋은 반응을 기대했는데, 저 과자도 그랬던 것 같다. 기억은 정확히 안 나지만 불가리아인들이 즐기는 음식들 중 하나라고. 한 번 맛이나 볼까 하는 마음으로 한 개 집어 먹었는데, 가벼운 맛이 아니었다. 아니, 과자는 분명히 과자인데, 뭔가 과자가 아니라 패스트푸드를 먹는 듯한 묵직한 맛이랄까. 키키가 기대하는 눈으로 어떻냐고 물어봤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 무게감 있는 과자라고 좋게 표현했던 것 같다. 적응이 안 되는 맛이라고 해야 하나. 계속 먹다 보면 마음에 들 것 같기는 한데, 과자에 한해서는 한국 과자가 유럽 과자보다 나은 것 같다.
어쨌거나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이어가는 도중, 문득 다들 오늘 밤 몇 시까지 놀 건지 궁금했다. 아무리 밤늦게까지 놀고 싶어도 8시에 기상하려면 어느 정도 일찍 자 두기는 해야 한다. 음주도 적당히 해야 하고. 그런데 여기 있는 몇몇은 밥을 먹으면서 이미 맥주까지 같이 마신 상황. 본인 기억 속에 키키도 그들 중 하나였다. 사실 키키는 이미지나 얼굴로 봤을 때 파티나 클럽 문화를 많이 좋아할 인상이었다. 뭐랄까, 조금 퀸카끼가 있는 타입이랄까. 알렉세이도 이미지는 순하고 선한 이미지지만, 마찬가지로 클럽에서 잘 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둘은 자정이 넘어서까지는 놀 것 같다는 반응이었다. 의외인 건 발렌틴이었는데, 남자 동기 중에서는 이 친구가 제일 활발한 이미지였음에도 클럽 일정에는 단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런 문화를 좋아하지 않은 유형인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본인과 산다라는 경험주의 마인드. 본인은 그때까지 살면서 클럽의 'ㅋ'자 근처에 간 적도 없었고, 산다라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주변에 제삼자가 있었다면, 분명 우리 둘이 클럽과 가장 거리가 먼 인상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인종의 문제가 아니라, 인상 얘기를 하는 거다. 흥미로웠던 게, 산다라는 풍경 사진이나 본인 사진 찍는 것은 아주 좋아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화장은 전혀 안 하는 타입이었다. 그러다 보니 더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뭐 그런 전개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각자가 언제까지 남을지는 가봐야 아는 법. 친목의 의미로 서로 인스타 맞팔까지 마친 우리는, 일단 각자 자리로 돌아가서 9시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유럽의 파티 문화와 클럽 문화. 과연 어떤 느낌일련지. 지금까지 서양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던 파티가, 불과 몇 시간 후 베일이 벗겨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