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쿠프 기행] 폴란드 왕국의 심장, 여기에

<바벨 성>, 폴란드 왕국의 시작이자 중심지

by 흑투리


오늘은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한국인 여러분의 화를 자극할 수 있는 말로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 어떤 말이냐? 길게 말할 것도 없다. 단 한 마디면 충분하다.



한국인 여러분, 你好(니하오)! こんにちは(곤니치와)!



어떤가, 바로 반응이 오는가? 투리가 얘기하니까 그나마 뜬금없게 느껴지지, 유럽에 장기간 여행한다면 그대는 현지인에게 저 두 인사말 중 하나를 최소 한 번 이상 들을 확률이 '매우' 높다. 이는 중국인이나 일본인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그저 한국인의 입장에서 우리 고유의 민족성을 부정당했기 때문에 저런 행동에 화가 난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한국인이 옆나라 중국이나 일본에 대한 경쟁심리가 클 수밖에 없는 배경도 감안해야 하지만 말이다. 반대로 대만인이나 베트남인도 유럽인한테 '안녕하세요'라고 한국식 인사말을 계속 받으면 불쾌하게 여기는 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재미있는 게, 이건 동아시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투리는 폴란드에 와서 절대로 안 쓴 말이 있다. 바로 'Здравствуйте(즈라스뜨부이제, 러시아어 인사말)'와 'Hallo(하로, 독일어 인사말)'다. 영어 Hello도 아니고, 역사적으로 적대국이었던 나라들의 언어를 쓴다는 거 자체가 비하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게 아니면 뭔가? 인종차별을 하는 폴란드인에게 거울치료용으로 대응하는 말이 아닌 이상은, 그들의 언어로 인사하는 게 가장 정상적인 행동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엄연히 폴란드 민족에 속한 폴란드인이기 때문이다. 마치 유럽인이라고 다 같은 유럽인이 아니고, 아프리카인이라고 다 같은 아프리카인이 아닌 것처럼.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증! 폴란드 민족의 정체성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100년 이상을 타국에 지배당했음에도 여전히 유지되어 온 이 민족. 분명히 그 뿌리가 되는 그들만의 왕조와 역사가 있을 텐데 말이다. 오늘은 그 폴란드 민족과 나라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 '폴란드 왕조'의 역사적인 중심지에 대해 소개할 것이다. 바로 '바벨 성'. 크라쿠프에 관광을 왔다면 절대로 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관광지들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20250322_091847.jpg
20250322_090524.jpg
둘째 날 아침. 호스텔에서의 조식



3월 22일. 전날 밤에 클럽에서 화려한 일정을 소화한 것치고는 무사히 아침 먹을 시간에 맞춰 일어났다. ESN 공지를 하는 대표 멤버들 중 한 명이 수지인데, 단체채팅을 보니 그날도 어김없이 일어나서 밥 먹으라는 수지의 알림이 있었다.



20250322_100329.jpg



아침을 다 먹은 우리는, 바벨 성에 가기 전 인원수 체크를 위해 위 사진의 동상 근처로 모여야 했다. 사진에는 없지만 ESN은 두 임원이 서로를 향해 팔을 뻗으면 나머지 학생들이 그 아래를 통과하는 것으로 인원수를 확인한다. 숫자가 맞는 걸 확인한 다음, 우리는 바벨 성으로 향했다.



20250322_102318.jpg
20250322_102252.jpg



바벨 성은 구시가지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있었는데, 공원 하나만 통과하면 되는 정도라 찾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투리도 그동안 몇몇 동기들과 스몰토크를 조금씩 주고받았는데, 그중 한 명이 네덜란드인 브램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국적과 사는 도시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여행에 관한 대화도 겸했던 걸로 기억한다. 참고로 이 얘기를 한 사람이 브램이었는지, 스웨덴인 발렌틴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한국에 여행 올 때 렌터카를 하면서 도시를 돌아다녔던 적이 있었는데 서울보다 부산이 더 재미있었단다. 아무래도 부산은 근처에 바다가 있고, 분위기도 화려하다 보니 외국인 입장에서 그럴 만은 하다.



20250322_103958.jpg
20250322_103852.jpg



어쨌든 맑은 날씨 속에 드디어 성 안쪽으로 도착! 일행이 모두 왼쪽 위 공간으로 모이니, 가이드 한 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관광지는 ESN 위원회가 가이드 단체예약으로 방문신청을 한 걸로 보였다. 가이드의 사용 언어는 당연히 영어! 인원이 많은 관계로 우리는 모두 가이드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이어폰과 무전기를 건네받았다.



20250322_105355.jpg Adam Kazanowski,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귀족 초상화



성에 들어가기 전에, '바벨 성'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먼저 하자! 바벨 성(Wawel Castle)은 크라쿠프의 비스툴라(Vistula) 강변 바벨 언덕(Wawel Hill) 위에 위치해 있는 성으로, 왕궁과 대성당이 모두 있는 일종의 복합지이다. 11세기부터 왕의 거처로 활용된 만큼 여러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있는 이곳은, 현재 왕관 보물이나 무기고, 예술 작품들 등을 모아두어 전시실로 활용하고 있다. 이외에도 이 성이 자리 잡은 바벨 언덕에는 아래쪽에는 용의 동굴, 남쪽에 산도미에시카 탑(Sandomierska Tower)이 있다.



이 성이 폴란드에 가지는 의미는 상당한데, 우선 볼레스와프 1세(Bolesław I)가 1025년 첫 폴란드 왕으로서 대관식을 거행한 곳이 여기이다. 그 뒤로 수백 년 동안 대부분의 왕들이 이 성에서 즉위식과 장례식을 거행할 정도로 이곳은 왕권의 상징이 되어왔다. 실질적인 국정 운영이 이 성에서 일어났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20250322_105534.jpg



우리들이 가이드를 따라 방문한 곳은 주로 왕실 공식 접견실(State Room)이었다. 접견실은 폴란드 국왕이 외교나 사절, 귀족이나 고위 공직자들을 맞이한 방으로, 투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체적으로 16세기와 17세기 시기의 양식을 재현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천장을 보면 알겠지만, 위쪽이 모두 금빛 꽃 모양이 박힌 장식들로 채워져 있다. 패턴 역시 꽃 장식을 둘러싼 팔각형과 사각형 구조가 반복하고 있다. 이런 양식으로 천장을 꾸민 건 왕실의 권위와 위엄을 표현하고 싶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20250322_105649.jpg
20250322_110523.jpg



앞에서 말하긴 했지만, 해당 방 안에는 여러 역사적인 전시품들이 배치되어 있다. 가이드는 친절하게 저 위의 양식들과 작품 속 중요 인물들을 하나씩 짚고 넘어가셨는데, 슬프게도 지금은 그분 말씀이 잘 기억이 안 난다. 영어 울렁증 때문은 아니고, 시간이 꽤 지나 버린 데다 그 뒤 방문한 관광지들이 너무 많아서 기억이 묻힌 거다. 그래도 아주 살짝의 메모는 해두어서, 그걸로 기억을 최대한 더듬어보겠다. 그럼에도 확신이 없는 부분은 다른 정보를 통해 보충해 보겠다.



20250322_105859.jpg 성모 마리아 회화 작품과 그 아래에 있는 가구



위 사진의 작품들도 같은 방에 있었던 것들이다. 저 마리아의 작품 같은 경우는 '자비의 마리아(Madonna of Mercy)' 도상의 유형으로, 마리아 숭배에 있어서 중요한 형태라고 한다. 자세히 보면 성모 마리아가 양팔을 벌리고 다양한 인물들을 감싼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196개 얼굴, 각도 다름.jpg



이 방은 바벨 성의 다른 방이다. 위 천장에 대해서 가이드가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이 하나 있었는데, 사진을 보면 일부 정사각형 구조의 내부에 얼굴 모양의 조각들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분 말씀에 따르면 원래 얼굴은 총 196개 있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위의 사진 쪽의 나머지 타일들에도 원래는 얼굴 조각들이 있었다는 얘기. 당시 이 방을 만들 때, 조각가들은 그 196개의 얼굴이 모두 다른 형태에 다른 각도가 나오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얼굴을 모두 다르게 설계한다면 그만큼의 노력과 정교함이 훨씬 더 들어갔다는 얘기인데, 그렇게 해서라도 이 방을 쓰는 왕실의 능력을 더더욱 강조하고 싶었나 보다. 원래 작품의 완성도는 저런 세밀함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나.



20250322_110535.jpg
20250322_111220.jpg



위 사진들도 같은 방에 있던 전시품들. 왼쪽 위 초상화의 주인공은 이 성에 있었던 왕들 중 한 명인 지그문트 1세(Zygmunt I Stary)로 보인다. 예술의 애호가로 알려진 지그문트는 이탈리아의 화가들을 크라쿠프로 데려와 르네상스의 폴란드 변화 발달의 진흥에 힘썼다고 한다. 어쩌면 이 성 안에 르네상스 양식이 보이는 것도 이 왕의 영향력 덕분이 아니었을까.



오른쪽 사진의 전시품은 그렇지 않아 보이겠지만 벽난로란다. 투리 기억에 의하면 손님들이 오면 미리 저 벽난로를 가동해서 저 방을 따뜻하게 했다고 가이드가 설명했었다. 보면 저 벽난로도 여간 꾸민 물건이 아니긴 하다. 일종의 예술적 취향과 외교적 상징이 담긴 대표적인 유물로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가운데 누가 훔침.jpg



어느 정도 구경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와중에 통로 위 양옆에 장식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이드 말로는 원래는 가운데 것도 있었는데, 누군가가 훔쳐서 저렇게 가운데가 텅 비었다고 한다. 나치의 소행인지, 누구의 소행인지 모르겠으나, 앞으로 이 성에 더 이상 물건이 사라지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꼭 10명씩 준비, 먹어야. 다른 10명에게 그 다음 왕에게.jpg 열심히 설명하시는 가이드님



위 사진의 방은 Planet Room. 아까 초상화로 보았던 지그문트 1세 시기에 꾸며진 2층 방들 중 하나이다. 방 이름은 말 그대로 우리가 아는 행성들(ex) 수성, 금성 등)이 천장에 그려져서 붙여지게 된 이름이다.



이때 가이드가 말씀하셨던 내용은 해당 성에 있던 왕과 주변인들의 식사 준비에 대한 것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왕과 같은 고위 인물의 독살 이슈는 항상 예민한 문제인데, 당시에는 음식이 완료되면 먼저 10명이 시식을 하고, 그다음 다른 10명이 식사를 한 다음에서야 왕에게 음식이 주어졌다고 한다. 먹는 것에 대해 접견실의 사람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관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지금 세계를 보면 대통령이나 국가 지도자의 셰프가 따로 있는 것도 같은 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20250322_112444.jpg



다음으로 방문한 방은 좀 더 중후한 배경의 장소. 벽면 장식은 이전보다 어두운 색상의 벽지들로 바뀌었고, 벽들 여기저기에 높으신 분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여기는 다른 방들보다는 규모가 조금 더 작은 방이었는데, 방의 이름은 천장에 철제 새들이 여기저기 장식되어 있어서 Bird Room이라고 한다. 원래 성 안의 상당수는 르네상스 양식을 띠고 있지만, 이 방 안에는 바로크 양식도 섞인 걸로 알고 있다.



아까 그 애 어른(왕)과 두 번째 부인.jpg
20250322_112744.jpg



위 사진은 지그문트 3세 바사와 그의 가족들 사진. 가이드 말에 의하면, 당시에는 의료 기술이 출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왕족이라도 어린 나이에 죽는 사례가 흔했다고 한다. 그래서 투리의 기억이 맞다면 오른쪽 사진에 있는 초상화 중 여자 아이 쪽이 아기 시절에 죽었을 것이다. 한편 왼쪽 사진에 있는 왕비는 지그문트 3세 바사의 두 번째 부인이다. 그의 첫 번째 부인은 출산 도중 아이와 함께 사망하고 말았다.



자식 13중 9명 죽고 남은 사진.jpg



같은 왕 지그문트 3세 바사(Zygmunt I Vasa)와 그의 가족사진 초상화이다. 가이드가 설명한 바에 따르면 왕은 두 부인 모두 합해서 13명의 자식을 낳았지만, 무려 부인 한 명과 아이 9명을 잃었다고 한다. 해당 그림은 남은 4명과 두 번째 부인의 생존(?)을 기리기 위해 그려진 그림이라고 한다.



초대 선거 선출 왕의 아들, 4년 재위 독살 or 과식사.jpg



여기서 눈여겨볼 또 하나의 초상화! 사진 위의 인물은 미하우 코리부트 비스니오비에츠키(Michał Korybut Wiśniowiecki, 재위 1669–1673)라는 왕이다. 왕이라고는 하지만 폴란드에서 최초의 선거 제도를 통해 선출된 왕이라는 점에서 조금 특이하다. 물론 선거라고 당시 시대상 평민들이 참여할 권한이 있을 리 없고, 투표에 참여한 대상은 오직 귀족 남자들뿐이었다. 아쉽게도 이 왕은 나름 민주주의적인 방식으로 당선된 왕치고는 능력은 영 아니었는데, 귀족들과 내치도 제대로 못하고 외교 능력도 엄청 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가이드 말에 따르면 해당 왕이 선출된 과정은 폴란드인들에게 상당한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왕은 나라를 말아먹는데 일조를 한 공신이라 지금도 미움을 받는다고 한다. 이 왕은 결국 재위한 지 4년 만에 급사하게 된다. 사망 원인은 평소 과식을 많이 한 탓에 생겨난 위궤양 파멸이라고는 하지만, 독살 가능성에 무게를 둔 학자들도 일부 있다고 한다.



20250322_113051.jpg
20250322_113642.jpg
같은 층에 있는 다른 작품들과 전시품들



세계2차전쟁 생존 이야기.jpg



그렇게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여기저기 이동하다가, 어느덧 마지막 작품을 볼 차례. 마지막이라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해당 작품에 대해서는 가이드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것 같다. 딱 겉으로만 보았을 때는 그냥 기독교적인 내용을 담은 작품으로 보였지만, 저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서 관련 인물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투리의 앞내용을 본 독자들은 알겠지만, 한때 이 성은 세계 2차 대전 시절 고위 나치들이 이용했던 곳이었다. 나치는 당연히 자신의 문화와 양식을 이 도시와 건축물에 강요하고 싶었을 것이니, 폴란드의 고유 물품들을 순순히 보존시킬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를 알았던 당시의 사람들이 거의 첩보 작전을 펼치듯 치밀한 계획을 통해 위의 작품을 포함한 여러 물건들을 다른 곳으로 빼돌렸다고 한다. 본인도 정확히 모든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가이드의 말들 중 저 작품들을 지키기 위해 강까지 건너야 했다는 사실은 확실히 머릿속에 남아있다. 이 모든 이야기가 언젠가는 영화로 나와야 한다는 말까지 덤으로 남기시면서 말이다.

(그러고 보니 한국도 수많은 문화재를 지킨 간송 전형필 선생에 관한 영화가 있었나)



20250322_113036.jpg



이상이 우리 ESN 일행이 가이드와 함께 바벨 성을 돌아다닌 내용이었다! 우리가 주로 둘러본 곳은 왕과 귀족들이 썼던 방에 그쳤지만, 그럼에도 바벨 성에 관한 많은 것들을 배워갈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으로부터 벌써 5달이나 지났는데도, 내용을 조사할 때마다 가이드가 했던 말들이 조금씩 조금씩 기억이 나서 신기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이번 글은 독자 분들을 위해 열심히 기억을 더듬어가면서 여러 정보들을 정리해 적어보았다. 솔직히 글 하나하나 쓰는 것이 굉장히 많은 정성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본인의 플랫폼에 추억으로 남겨질 생각을 하면 뿌듯하기도 하다. 게다가 이 글을 통해 누군가는 유럽에 대해 더 알아갈 것이고, 누군가는 간접 여행을 느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자, 이제 여러분은 흑투리가 소개한 '바벨 성'에 대한 글을 끝까지 읽었으니, 이거 하나는 분명히 알아간 것이다. 러시아인 취급을 받기 싫어하는 폴란드인의 정신적 심장은 '바벨 성'이라는 것을.

keyword
이전 13화[크라쿠프 기행] 유럽에서 인생 첫 클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