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 언덕>과 <비스와 강>, 우리 같이 크라쿠프를 산책해봐요
교환학생을 빙자한 상습적인 여행을 하면서 작가인 투리가 항상 느끼는 것이 있다. 본인은 '완벽주의'이다. 도시 중심을 하루 슥 보고 끝냈다면 그건 그 도시를 관광한 걸로 취급하지 않는다. 도시의 시가지는 물론이고, 추천 관광지와 관련 문화가 담긴 박물관까지 싹 다 방문해야 비로소 도시 하나를 제대로 방문한 느낌이 든다. 그것은 폴란드의 대표 도시, 크라쿠프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이번 글은 크라쿠프 구시가지에서 못다한 부분 위주로 편하게 이야기를 전개하려고 한다. 크라쿠프 기행글을 전개하면서 아직 못 보여준 도시의 풍경들도 있고, 동기들과의 에피소드를 따로 쓰기에 분량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는 카지미에슈 광장에 대한 기행글을 올릴 예정이라 여기서는 바벨 성과 카지미에슈 광장 사이에 했던 활동들을 약간의 썰 형식(?)으로 서술하겠다.
크라쿠프 2일차, 바벨 성 관광 종료! 기념품 구경과 구매까지 끝낸 우리는 성 밖으로 나왔다. 이제는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 당시의 투리는 배가 조금 불렀지만, 컨디션이 최상은 아니라서 어딘가를 들러야 하긴 했다.
그러는 와중에 도로 여기저기에서 마라톤 달리기를 하는 시민들. 그들의 경주를 방해하지 않도록, 우리는 눈치를 보면서 적당히 사람이 없을 때 길을 건넜다. 도로 얘기를 하니까 투리 본인이 이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는데, 바르샤바나 크라쿠프 같은 구시가지에는 차가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모든 도로가 차가 없는 건 아닌데, 대놓고 '여기는 관광지구나' 싶은 쪽에는 지나가는 차량이 특히 없는 것 같다. 이유가 이거다 하고 콕 찝어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대략 대도시의 인구 밀도가 한국보다 적어서 그런 것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폴란드는 한국만큼 도시집중화가 높은 편이 아닌 데다가, 영토에 비해 인구 수도 훨씬 널널한 편이니까.
그래서 그런지 폴란드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많은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이 부분은 실제로 살아본 경험은 없고 여행만 갔다온 한 인간의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말이다. 폴란드 대도시의 또 하나의 특징은 그 나라와 도시의 특색이 잘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위 사진을 보면 저렇게 전통 복장을 한 점원이 기념품을 파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사진일 수도 있지만, 저런 감성이 우리와 같은 관광객에게는 분위기가 있는 장면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점심을 포함해 다음 일정까지는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서, 일행은 각자 흩어지다가 크라쿠프 중앙 광장으로 다시 모이기로 했다. 사실 공식적으로 자유롭게 행동할 수는 있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이번에는 투리가 아는 동기들 상당수가 꽤 큰 무리를 짓고 이동했다. 분위기에 편승해서 그들을 따라가다가 멈춘 곳은 어느 한 카페.
왜 친구들이 이 카페를 왔나 했는데, 알고 보니 학생 할인이 적용되는 곳이었다. 바벨 성에서 나오고 조금 쉴 겸, 우리는 여기서 마실 걸 주문하면서 조금 쉬다가 다시 광장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카페 안의 분위기는 중세 느낌에 여러 미술 작품들까지 걸려 있어 어딘가 중후한 분위기였다. 아까 마라토너들이 지나간 탓인지, 동기들은 초반에는 계속 마라톤 얘기만 했다. 투리의 방에서 인상적으로 리듬을 타던 그 친구도 마라톤 내용에 관심을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정작 바르샤바에 가서 마라톤에 참여할 의지가 있는 동기는 없었던 것 같다.
이 와중에 아루잔도 옆에 있었는데, 전날 클럽에서 한창 놀았던 탓(?)인지 목이 많이 부어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커피를 마실 때 투리가 괜찮냐고 물어보니, 돌아오는 대답은 이 목소리도 나름 쿨해서 좋다고. 긍정적인 자세인 건지, 걸크러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모로 재미있는 친구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주제가 바뀌어서, 갑자기 서로 각자의 나라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는 분위기가 되었다. 아무래도 같이 다니면서 영어로 소통하고는 있지만, 다들 원래 있던 나라가 다르다 보니 호기심이 생길 만도 했다. 예를 들면 아루잔은 카자흐스탄, 리눅스는 오스트리아, 마리아-카밀라-키키 삼인방은 불가리아, 이렇게 다들 제각각이니 말이다. 그렇게 몇몇 친구들이 각자 나라 언어를 살짝살짝 알려주었는데, 여기서 투리의 국가 얘기가 빠지기는 힘든 법.
본인은 얘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는데, 어느 순간 누군가가 본인한테 이런 질문을 했다.
"어이, 투리 너는 한국에서 왔다고 했지? 한국어로 '너 몇 살이야'를 뭐라고 하지?"
여기서 잠깐! 혹시 기억할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투리의 생일은 3월 20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대화를 나누었던 당일은 22일! 외국에서는 생일이 지나면 공식적으로 한 살을 먹는 거라서, 깨알 생일 어필도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한국어로 대답을 해주면서 동시에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난 어제부터 2X살이 되었어!"
"잠깐만, 너 나이를 물어본 질문이 아니었어 ㅋㅋㅋ"
"야, 생일 축하한다!"
"생일 축하해!"
당연히 본인의 말뜻을 이해한 동기들은 다같이 생일 축하의 말을 전해주었다. 사실 본인 입장에서는 생일선물을 달라는 얘기도 아니라, 그만큼 이번 여행이 나름 의미가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정확히는 생일 다음 날부터가 여행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 기간에 ESN 동기들과 첫 유럽 여행은 꽤나 귀한 경험 아닌가?
그렇게 투리의 생일에 대한 얘기는 잠깐의 해프닝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나중에 저녁때쯤 방으로 돌아왔을 때, 갑자기 그때의 짧은 머리 친구가 본인한테 이렇게 말을 걸었다.
"어이, 투리. 너 어제가 생일이었다고?"
"아, 어. 정확히는 전전날이어서, 내가 날짜를 실수하긴 했지만."
"아니, 그랬으면 우리한테 얘기를 하지. 왜 여태껏 아무 말도 안 했어?"
"???"
.....아, 생일이라는 게 그렇게까지 자랑해도 되는 얘기인가? 솔직히 투리는 생일을 어떻게 생각하냐면, 최대한 본인이 태어난 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여기려 한다. 분명히 태어났다는 소식 자체는 축하받아 마땅하지만, 그게 곧 선물을 받는게 당연한 날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생일날 선물을 하나도 받지 못해 실망의 감정을 가진다면, 그거야말로 생일에 대한 의미를 너무 과하게 부여하고 있다는 얘기 아닌가.
"....어, 딱히....얘기할 특별한 이유가 없었어서? 애초에 생일이 지난 것도 있고."
"그렇구나, 오케이."
내가 그냥 별뜻 없었다는 듯이 대답하자, 그 친구는 일단은 납득했다는 듯 넘어갔다. 어디선가 다른 나라에서는 생일을 그렇게 중요시하지 않는다는 찌라시를 들었던 것 같은데, 어지간한 타국도 생일을 축하하는 건 마찬가지구나. 그 친구의 반응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었다.
잠깐의 휴식 시간을 마치고, 우리는 천천히 광장으로 나왔다. 모든 ESN 동기들이 모이니, 위원회 담당 스태프인 수지 뒤에 처음 보는 남자 한 명이 있었다. 이번에는 이 남자가 다음 일정의 가이드였다.
토요일에 정확히 점심 때라서 그런지, 광장 주변에는 마차들과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사람들이 다 모인 것을 확인한 후, 우리는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이동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이동한 곳은 직물회관. 투리의 크라쿠프 첫 기행글을 읽은 독자 분들은 익숙하게 느껴지지 않나? 맞다. 그때도 소개를 잠깐 했다. 크라쿠프의 번영과 발전을 상징하는 랜드마크 건물!
직물회관에 모이니, 마침 재미있게도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오와 열을 맞추며 행진을 하고 있었다. 상당히 큰 음악 소리를 내면서 이동했었는데, 무슨 날이길래 저렇게 사람들이 이동하는 거였을까.
아무튼, 이번 투어의 첫 시작이 직물회관인 만큼, 이 건물에 대한 소개를 조금 더 해보고자 한다. 수키엔니체(Sukiennice)라고도 불리는 이 건물은, 광장 중앙에 위치해 있으며 여러 물물 교환과 무역 논의가 이루어지던 곳이었다. 15세기 크라쿠프 황금기 시절에는 동양의 여러 향료, 실크, 가죽 같은 이국적인 물품들이 여기를 통해서 오갔다고 한다. 훨씬 나중 글에 언급하겠지만 근처 도시인 비엘리츠카에는 질 좋은 소금을 많이 생산하는데, 그 소금도 이 곳에서 주 수출품으로 판매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이 회관이 폴란드의 여러 기념품들을 파는 곳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0층에 들어가면 여러 가지 수공예품, 앰버 보석, 여러 기념품들, 직물 공예품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1층은 국립 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어 다양한 폴란드 회화들을 감상할 수도 있다. 슬프게도 우리는 일정상 이 회관을 겉으로만 훑어보았지, 안을 세세하게 들여다보지는 못했다.
0층을 보지 못한 이유는 기념품들이 비싸서. 폴란드 현지인 친구들한테 얘기를 들었는데, 저런 유명한 장소 안에 있는 기념품들은 일반 기념품 상점보다 가격이 부풀려져 있다고 한다. 실제로 다른 나라랑 도시에서도 특별한 곳 안에만 들어가면 별 차이가 없는데도 기념품의 가격이 확연히 다르다. 그래서 위원회가 크게 시간을 들이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1층을 보지 못한 이유는 가이드랑 이미 잡혀 있는 일정이 있어서였고.
감사하게도 다음 투어의 위치상 회관을 통과할 필요는 있어서 위 사진이라도 남겨올 수는 있었다. 보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같은 한국인이나 아시아 사람들한테나 익숙하지 않은 거지, 여기도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곳이라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이상 인구밀도가 늘어나면 도시가 더 혼란스러지니, 크라쿠프는 이 정도 규모의 사람들이 딱 적절할 수도 있다. 그 사거리 횡단보도가 사람들로 빽빽 찬 도쿄 시부야랑 비교해보면 말이다...
어쩔 수 없이 겉만 훑어본 것만으로 만족할 수밖에. 수키엔니체 다음으로 가이드와 함께 멈춘 지점은 라투슈초바 탑이었다. 이 탑이 무슨 탑이냐고? 첫 크라쿠프 기행글에서 투리가 언급했던 직물회관 옆 시계탑! 그곳이 바로 여기다. 이 때 가이드가 무슨 설명을 많이 했던 걸로 아는데, 그다지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아는 거라고는 그나마 14세기 시절 시청의 일부로 지어진 탑이었다는 것 정도?
탑을 어느 정도 돌아다니다가,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야기에우워 대학교(Jagiellonian University). 오른쪽 사진이 대학교의 입구 쪽인데, 이 곳은 그 중 콜레기움 마이우스(Collegium Maius)라는 곳이다. 야기게우워 대학교도 마찬가지로 구시가지 기행글에서 아주 간략히 언급했었다.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면서 유럽에서도 수준이 높은 대학교라고 말이다.
그 안을 들어간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다. 사진에서도 건물 벽을 보면 느낄 수 있겠지만, 상당히 고풍스러운 모습을 한 장식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해당 방향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안뜰에는 우물도 마련이 되어 있다고 한다. 이제 여기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당시 교육에 쓰였던 기자재나 과학 관련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직접 안 들어가봤냐고? 사실 가이드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확인해 봤는데, 문이 굳게 잠겨 들어갈 수가 없었다. 예약을 했는데 착오가 있던 건지, 아니면 원래 즉흥적으로 들어갈 계획이었는지 모르겠으나 투리가 보았을 때 가이드의 반응이 조금 난감했었던 것 같다. 혹시나 해당 대학 건물을 들어가려는 계획을 가지신 독자 분들이 있다면 미리 예약해두는 것을 권장한다는 점 알아주셨으면 한다. 아무튼 우리는 여기도 겉만 보는 걸로 하고 걸음을 옮겼다.
어쩔 수 없이 긴 시간을 이동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가이드가 있는 것치고 우리는 꽤 긴 거리를 설명 없이 들으면서 지나갔는데, 그 동안 우리는 서로 얘기하면서 도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네덜란드인 브램 말에 따르면 크라쿠프는 도시 주변이 전체적으로 빨간색이랑 밝은 노란색으로 도배된 것 같다는 느낌이란다. 사실 여행이라는 거 자체가 많이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다 거기서 거기 같기는 하다. 그래서 투리가 겉보기로 여행을 마치고 싶지 않은 것도 있는 거고.
그러다 우리는 비스와 강변 쪽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왼쪽을 바라보면 바벨 성이 보이는 산책로에서 가이드가 간만에 입을 열었는데, 여기에는 한 전설이 있다고 한다. 이 전설은 크라쿠프의 탄생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인데, 도시가 설립되었을 당시 아주 무서운 용(Smok Wawelski)이 살았었다. 이 용이 매일마다 도시를 파괴하고 가축을 잡아먹으니, 크라쿠스 왕은 어쩔 수 없이 용의 마음에 든 처녀들을 재물로 바쳐 피해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
왕은 한편 용을 잡는 사람에게 자신의 딸인 반다 공주와 혼인을 시켜주겠다는 선언을 하는데, 어느 용사도 용을 물리치지 못한다. 그러다 어느 날, 스쿠바(Skuba)라는 신발 제작공이 왕을 찾아와 양가죽과 유황을 부탁한다. 왕에게 물건을 받은 그는 유황을 양가죽에 넣고 용의 동굴 앞에 두었다. 멍청한 용은 그것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먹었고, 곧이어 엄청난 갈증과 고통이 엄습한 용은 강물을 허겁지겁 마신다. 그러다 물을 너무 마신 나머지 용은 배가 터져 죽고, 왕은 약속대로 스쿠바에게 공주와의 결혼을 허락한다.
사진을 보면 비스와 강이 정말로 평화로워 보이지 않는가? 가이드 말로는 저 강이 용이 급히 달려갔던 강이란다. 그렇다면 우리가 있는 이 곳이 용이 살았던 동굴 근처라는 얘기인데, 그런 무시무시한 비하인드가 크라쿠프에 있다는 사실~
한편 이 '크라쿠프'라는 단어는 스쿠바가 도시를 세울 때 크라쿠스 왕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말이라고 전해진다. 그것이 이 도시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지만, 다른 이야기도 존재한다. 그 이야기는 투리가 '크라쿠스 언덕'에 관한 글에서 앞서 설명한 적이 있어서, 궁금하신 분들은 확인하면서 비교해보면 좋을 것 같다.
(2권 11화 '크고 아름다운 왕의 무덤' 참조)
위 사진을 보면 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동상이 하나 있는데,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저 동상이 바로 용의 동상이란다. 1972년 설립된 저 동상은 통상적으로 15분에 한 번씩 입에서 불을 내뿜는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는 이동하느라 저 동상에서 불이 나오는 것을 기다릴 인내력은 없었지만, 저 동상의 입에서 불이 나오는 모습은 수많은 아이들의 관심을 사로잡는다고 한다.
그러는 한편 가이드는 저 동상의 개에 대해서도 사연이 있다고 언급을 했다. 당시 가이드는 저 기억이 충견이기는 했지만,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난다며 얼버무리고 얘기를 마쳤다. 대신 조사한 투리가 보충 설명을 하자면, 저 비석은 조크(Dżok)라는 개를 기르는 기념비이다. 1990년 그의 주인이 심장마비로 죽었을 때, 저 개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주인이 쓰러진 곳에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 일은 폴란드 시민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고, 1년 후 새 할머니가 그 개의 주인으로 그를 정성스럽게 돌본다. 그러나 그 할머니도 1998년에 끝내 돌아가셨고, 조크는 할머니의 집에서 뛰쳐나와 길을 잃다가 기차 선로 아래에서 죽어버렸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폴란드 시민은 자체적으로 기금을 모아 위 사진의 동상을 만들었고, 이후 조크는 한국인들에게 '폴란드판 하치코'로 알려졌다고 한다.
*하치코: 도쿄 시부야에서 죽은 주인을 9년 동안 매일매일 나와서 끝까지 기다렸다고 알려진 충견.
그렇게 카지미에슈 광장에 도착하기까지, 우리는 가이드와 함께 바벨 성 아래와 일부 도시 주변을 여기저기 둘러볼 수 있었다. 사실 크라쿠프의 구시가지에 대한 기행글을 썼을 때 뭔가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꼈었는데, 이 글을 통해 크라쿠프에 대해 남은 부분을 완벽히 보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투리와 함께하는 크라쿠프 산책, 어땠는가? 여기도 유럽에서 꽤 볼만한 도시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원래 그 도시에 얽힌 이야기를 알면 알수록 관심이 많아지는 법이다.
그러니 형제 분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여친을 데리고 언젠가 여기 크라쿠프의 비스와 강으로 온다면, 넌지시 이렇게 말해라. 이 도시에는 용과 얽힌 전설이 있다고. 그 무시무시한 용이 이곳에서 잡힌 이야기를 자신 있게 들려준다면, 당신의 반다 공주는 순간 그대를 멋지고 똑똑한 용사처럼 인식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