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룬 기행] 그냥 그냥 아는 전설 이야기

<시가지>, 전쟁통에도 살아남은 코페르니쿠스의 중세 전통 도시

by 흑투리


폴란드의 대표적인 소도시, 토룬.



그 왜, 그리 규모가 크지 않은데도 관광 도시로 유명한 곳들은 꼭 존재하는 법이다. 이를테면 한국의 경주 같은 소도시들처럼. 토룬도 결은 다르지만 폴란드에서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그런 도시다. 여러분은 관광 도시에 있어 중요한 요소들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뛰어난 관광지, 유명한 관련 인물들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투리가 보는 것은 '스토리'다. 아무리 도시의 잠재력이 풍부하더라도 해당 도시와 얽힌 고유한 서사가 없다면, 그 도시는 매력 발산에 실패한 관광지나 다름없다. 유럽 도시들을 베껴 만든 중국의 짝퉁 도시들이 그다지 호응을 못 얻는 것도 바로 그런 점에서 기인한 것 아닐까.



그런 점에서 토룬은 자신만의 '스토리' 전략을 거의 노골적일 만큼 충실하게 활용하고 있다. 구시가지 주변을 둘러보면, 토룬과 얽힌 전설들과 관련한 동상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특히나 사람들 눈에 띄는 곳들에서 말이다. 재미있는 점은, 그 소위 말하는 '전설'들이 신화처럼 웅장한 내용이 아니라 인간성 넘치고 다정한 이야기들이라는 것이다.





대놓고 말하지 않는 척하면서, 누가 봐도 관광에 홍보하려는 전략이 뻔히 보이는 아기자기한 이야기 천국, 토룬. 마치 산이의 곡 '아는 사람 얘기'처럼 아닌 척하면서 대놓고 본인 홍보를 하는 느낌이다. 대체 토룬에는 어떤 전설들, 어떤 스토리가 담겨 있는 걸까. 이번 글에서는 그 이야기들과 함께 흑투리의 '시가지 탐방'을 마저 진행하겠다. 그렇게 하는 게 평범한 도시 탐방보다는 더 인간미 있을 테니까 말이다.



자 그럼,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20분가량의 휴식 시간을 마치고 재개된 시가지 투어.



토룬의 사탑 정면 사진.



다음으로 방문한 건물은 토룬의 사탑(Krzywa Wieża). 엥, 피사의 사탑 아니냐고? 그럴 리가. 여기는 폴란드지, 이탈리아가 아니다. 이 탑은 14세기 중세 시대 성벽의 일부였던 방어탑인데, 높이 15m에 수직에서 약 1.5m 정도로 기울어져 있다. 위 사진의 오른쪽 아래쪽을 보면 벽에 붙어서 팔을 뻗은 채 몸을 지탱하려는 동기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보기에는 저래도 안 넘어지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만큼 벽이 충분히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넘어지기 직전의 독일 동기.



이렇게 측면에서 봐도 얼핏 봐서는 벽이 그렇게 기울어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ESN 위원회의 제안에 따라 여러 동기들이 버티기 시도를 해봤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이 실패했다. 이에 승부욕 가득한 투리가 질세라. 본인도 버텨보려고 팔을 뻗으며 억지로 벽에 기대어 보았다. 자세가 까치발이라 애매하긴 했지만, 어떻게든 합격.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왜 그렇게까지 안 넘어지려고 집착했을까.



이 탑에 관해서는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옛적, 탑 안에 튜튼 기사단 소속 기사 12명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여성과 만나는 것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그중 한 명이 부유한 상인의 딸과 사랑에 빠져, 그녀를 만나면서 규율을 어기고 만다. 결국 이 사실이 주민들에게 발각되자 여자는 태형 25대를 선고받고, 기사는 탑을 건축하라는 형벌을 받는다. 단, 기사가 짓는 탑은 그가 규칙을 어긴 것과 같이 의도적으로 기울어진 형태로 지어야 했다.



해당 전설에 따르면, 죄를 지은 사람은 위의 탑 아래에서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투리는 지은 죄가 적어서 저 탑에서 비교적 잘 버텼던 거구나!.....라는 말은 농담이고, 전설은 어디까지나 전설이니 가볍게 받아들여 주시길.



도시 여기저기에 진열되어 있는 기념품들.



진저브레드 쿠키 때문에 그런가 싶은데, 토룬은 다른 도시들에 비해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강했다. 도시 자체가 크지 않은 것도 있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진저브레드 굿즈들도 상점에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한마디로 어린이 친화적인 공간이랄까. 거기에 이 도시 속의 전설 내용들까지 듣다 보면, 이 도시가 아예 동화 같은 도시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번에는 위 사진의 당나귀(Osiołek) 동상 얘기를 해볼까. 이 동상에는 재미있으면서도 조금 섬뜩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주 오래전, 이 도시에는 도시 수비대가 기르는 당나귀 한 마리가 있었다. 이 당나귀고집이 세고 장난기가 많았던 동물로, 시장에 나가 사과를 훔쳐 먹거나 경비병들의 군복을 갉아먹는 등의 행위를 일삼았다.



처음에는 도시 사람들이 이 당나귀를 귀엽게 여겼지만, 당나귀가 계속 선을 넘자 주민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그들은 그 당나귀에게 그렇게 주목받기를 원한다면 아예 평생 한 자리에 있게 해 주겠다면서, 시청 근처에 금속 당나귀 조형물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진짜 당나귀를 그 조형물 옆에 계속 세우게 했다. 마침내 사람들은 당나귀를 보며 마음껏 웃을 수 있었다.



이후 당나귀가 심심하지 않도록, 경비병들은 근무 중 실수를 한다면 그 당나귀 위에 앉히는 형벌을 만들었다. 이 형벌은 군중 앞에서 조롱과 모욕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등받이가 엉덩이를 파고드는 고통도 견뎌야 하는 치욕적인 벌이었다. 이 이야기는 토룬의 형벌 역사와 민담이 섞인 관광용 전설과도 같은 내용인데, 그 상징이 위의 당나귀 동상인 것이다.



(왼쪽) 튜튼 기사단 코스튬으로 추정되는 물건들 / (오른쪽) 토룬의 한 장면.



음, 튜튼 기사단 얘기가 나온 김에 다른 전설도 하나 더 얘기해 볼까. 이전 글에서 언급했듯 토룬은, 튜튼 기사단의 영향 아래에서 발전했다. 토룬의 유래들 중 하나에 따르면 1231년, 비스와 강을 건너 북쪽 포메라니아 강안으로 진출한 최초의 튜튼 기사단원들이 있었다. 이들은 거대한 참나무 위에 그들만의 첫 요새를 세웠는데, 이 요새가 훗날 토룬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저 이야기는 전설에 불과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사실 여부와 별개로 당시에는 웅장한 거목들이 방어 거점이자 요새화된 정착지를 확장하는 기반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19세기까지 토룬 시청에는 참나무에서 유래되었다는 도토리가 하나 있었는데, 그 도토리의 나이는 토룬의 나이와 정확히 같았다고 한다. 참 이야기가 많은 도시다.



Convent Gate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계속 성벽을 따라 이동하니, 위와 같이 큰 문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플랑드르 고딕 양식으로 세워진 위의 성문은 그 구조가 꽤나 육중했다. 이 성문이 완공된 시기는 14세기 전반부인데, 당시에는 전쟁 기술의 발전, 특히 화기의 보급으로 인해 성문을 확장할 필요가 강해졌다. 그래서 그들은 증축 공사를 진행해서 1420년에 공사를 마무리했다.



19세기 들어 해당 성문이 더 이상 방어 기능을 하지 않게 되자 그에 따른 개조가 이루어져 내부 공간이 주거용으로 사용되었고, 그 모습이 위의 사진들에 이르게 되었다.



도시 안의 비스와 강 사진.



토룬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코페르니쿠스 동상.



아, 드디어 토룬의 아이콘, 코페르니쿠스 동상 발견이다! 혹시나 이 글을 통해 투리의 기행글에 입문하신 분들이 계실 수도 있으니 다시 한번 설명하자면, 세기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의 고향은 토룬이다. 비록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한 지동설은 토룬 밖에서 탄생했지만, 그의 업적을 생각해 보면 고향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나름의 상징성은 존재한다. 추후 이곳은 자유시간이 끝나기 직전 ESN 동기들이 모이는 집합지로 정해졌다.





위의 사진은 시가지 중심에 서 있는 진저브레드 장인 여성. 그녀는 토룬을 대표하는 진저브레드 카타지나(Catherines)’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들고 서둘러 걸어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위의 작품은 2011년에 만들어졌으며, 조각상은 토룬 출신 예술가 타데우시 포렝프스키(Tadeusz Porębski)이다.



진저브레드 하니까 떠오르는 전설이 또 하나 있다. 토룬의 진저브레드 쿠키들 중에서는 카타르진카(Katarzynka) 모양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형태의 쿠키가 있는데, 이 전설은 그 쿠키에 관한 이야기이다. 옛날 옛적, 아픈 아버지를 위해 진저브레드를 구워 주고 싶었던 한 소녀가 있었다. '카타르진카'라는 이름의 그 소녀는 반죽을 찍어낼 쿠키 틀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컵으로 대신 반죽을 잘라냈다.



그런데 반죽 동그라미들을 베이킹 팬 위에 너무 가까이 붙여 놓는 바람에 쿠키는 굽는 과정에서 서로 붙어 버렸고, 그 결과 구름처럼 보이는 독특한 모양의 쿠키가 탄생했다. 이후 이 형태의 진저브레드 쿠키는 소녀의 이름을 따서 카타르진카(Katarzynka)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토룬 중앙 광장 시장과 그 근처에 있는 '토룬의 용'.



조금 더 가서 중앙 광장 쪽으로 가니, 근처에 조그마한 용이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작고 볼품없어 보여도, 저 용은 무려 수많은 용들에게 둘러싸인 도시로서의 토룬의 기원을 상징한다고 한다. 도시의 시선을 모으는 중심점이나 다름없는 이 동상 아래에는 수많은 동전들이 놓여 있었다. 저 아래에 동전들을 던지는 이유는 용에게 마을을 어지럽히지 말아 달라는 부탁에 대한 상징인 걸까?





그렇게 시가지 거리를 이리저리 둘러보니, 어느새 남은 동상은 위 사진의 바이올린 키는 남자 동상 하나뿐. 위 동상 속 남성은 토룬에서 가장 유명한 전설의 주인공, 플리사크(Flisak)라는 이름의 평범한 뱃사공이다. 그는 비스와 강에서 무역을 하던 평범한 뗏목 사공이었는데, 당시 토룬에는 강 근처에서 올라온 개구리 떼가 밤낮없이 울어대는 바람에 사람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시민들이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개구리들을 쫓아내지 못하자, 가난한 사공 플리사크는 무기 대신 자신의 바이올린을 꺼냈다. 그가 연주를 시작하자 개구리들은 하나둘 음악에 이끌렸고, 곧이어 모든 개구리들이 플리사크의 연주에 주의를 기울였다. 플리사크가 개구리들을 비스와 강 쪽으로 유인해 내니, 개구리들은 모두 도시 밖으로 사라지면서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고 한다.



이런 전설을 반영해서, 사진을 잘 보면 남자 동상 주변 가장자리에 황금 개구리들이 플리사크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전설 속에 나온 개구리들을 상징하며, 동시에 도시의 소음과 무질서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부정적인 요소들을 사공은 바이올린, 즉 조화와 리듬을 통해 평화롭게 해결한다. 현실에 찌든 투리 같았으면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아이들마저 음악에 이끌려 사라지는 배드엔딩을 기대했을 텐데, 이 얼마나 동화 같은 줄거리인가!



토룬 구시청사 사진들.



이렇게 해서 이번 글에서는 토룬에 얽힌 이야기들과 함께 지난 글에서 다루지 못한 구시가지의 나머지 거리들을 산책해 보았다. 지금까지 투리가 언급한 전설들을 들은 소감이 어떤가? 뭔가 우리가 생각하는 전설의 느낌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전설치고는 풍자와 희화화, 때로는 유쾌함까지 깃들어 있으니 말이다. 아니, 애초에 말만 전설이지, 스토리가 많아도 너무 많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그리고 그런 감상과 무관치 않게, 토룬은 그 수많은 비하인드들을 시가지에서 대놓고 홍보하고 있다. 마니아층이 아니면 알기 어렵게 썩혀 두는 것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눈에 띄게 만든 상태로 말이다. 겉만 볼 때는 잘 모르겠지만 알고 보면 거리 여기저기에 얽힌 이야기들. 그 동심 넘치는 전설들을 이 도시가 대놓고 푸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이제 당신에게도 그 서사는 '아는 전설 얘기'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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