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 기행] 중세와 현대, 그러나 모두 폴란드 것

<바르샤바 국립 미술관>, 명실상부 폴란드 최대 규모의 미술관

by 흑투리


직전의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바르샤바 국립 미술관'은 폴란드에서 가장 큰 규모의 미술관이다. 이번 글에서 소개할 전시관은 두 개, '중세 미술 전시관'과 '폴란드 디자인 전시관'이다. 여기서 폴란드 디자인은 1956년 이후의 현대 미술관을 뜻한다. 즉, 두 전시관은 시대가 완전히 대비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두 전시관은 동시에 치명적인 공통점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바로 대부분의 작품들이 폴란드산이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명색이 폴란드 미술관이면서, 지난 글에서는 이집트나 아프리카의 유물들만 다수 나왔지, 폴란드 작품은 등장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번 글부터는 다르다. 앞으로 여러분이 보게 될 전시관들은 명확히 이 미술관의 주인쟝 나라 작품들이 메인이다. 어쩌면 이번 글에서 중세와 현대 폴란드 디자인을 비교해 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일지도 모른다.



설명은 여기까지고 하고, 이제 지상층의 '중세 미술 전시관'과 1층의 '폴란드 디자인 전시관'을 구경하러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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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미술 전시관'은 거의 종교적인 작품들이 주를 차지한다. 아주 초반에 브로츠와프에 대한 글을 썼을 때도 중세 미술관을 보면 다 교회적 성격을 지닌 작품이었을 것이다. 이번 미술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에 있는 작품들에는 예식 용품들이나 작은 성물(聖物)들, 성인의 모습이 담긴 회화 작품 등이 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전시관의 규모가 더 크다는 것뿐. 그러면서도 매주 화요일에는 이곳을 무료로 방문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20250422_155834.jpg Triptych of Virgin and Child with Saints. 브로츠와프 추정(1370년)



해당 전시의 컬렉션은 그 유래가 주로 북유럽으로, 14~16세기에 제작되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이 교회적 성격을 지닌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각각 3장(Triptych)과 5장(Pentaptych) 제단화는 제단화로 사용되었고, 작은 신앙화들은 개인적인 기도를 위해 사용되었다. 이렇게 이 전시관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신앙적 요소가 깃들어 있지만, 다시 지역과 연도에 따라 구체적으로 분류되어 있기도 하다.



20250422_155852.jpg King David, 14세기 초의 스페인 추정



이렇게 얘기하면 하나같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어서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 전시관은 회화나 목재, 석재, 알라바스터 조각, 그리고 다양한 수공예를 아우르는 중세 예술 실천의 전체 스펙트럼을 관람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럽의 교회는 당시 여러 예술 분야의 작품들이 내부에 함께 모였던 공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250422_155921.jpg Three Maries, part of a Crucifixion. 파리(1430년)



그런 점에서 해당 전시관은 중세의 시각 문화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시다시피 방금 전에 봤던 작품들 중 일부는 서유럽 미술에 속한다. 그런 것처럼 동시대의 유럽 안에서도 중세 미술 전체적으로 어떤 보편적인 현상이 공통적으로 존재했다.



20250422_160033.jpg Virgin and Child. 브로츠와프(1375~1380년 추정)



그렇지만 그 안에서도 전시관은 각 작품들을 지역적 특수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지역과 연도에 따라 작품들을 다시 구별해 놓았다. 물론 투리는 그 정도로 중세 미술에 박식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은 없다. 본인이 다만 이 글에서 설명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작품에 대한 정보를 후천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250422_160305.jpg Polyptych from Grudziądz. Pomerania(1390)



오, 이번에는 5개 패널의 제단화 등장이다. 이런 형식의 제단화들은 보시다시피 대형인 축에 속하는데, 교회나 대성당에서 쓰이기에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제단화를 여러 판의 그림으로 나누면 나름의 장점이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장점은 접어서 운반하는 것이 가능해 이동 중 손상 위험이 적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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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코너들이 있는지 몇 개만 살펴볼까? 첫 번째로 살펴볼 구역은 1420~1520년 사이의 그단스크 작품들이다.



20250422_160555.jpg Saint Jacob the Elder, Virgin and Child, Saint Anne with Virgin Child. 1510~1515년 사이 추정



위의 성상(聖像)들은 부드럽고 매끄러운 피나무(Limewood)의 목재를 이용해 그려낸 작품들에 속한다. 성상들이 마리아가 아닌 것으로 보아 성상들이 안은 아이가 무조건 아기 예수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아마 작가들이 의도했던 것은 성인의 책임감과 자애로움을 담은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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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Jerusalem Triptych. 1497~1500년 추정 / (우) Holy Trinity. 1435년



위의 작품들은 모두 현 그단스크의 성모 마리아 성당에서 가져온 그림들이다. 두 그림 모두 참나무 판에 그려졌으며, 왼쪽은 예루살렘, 오른쪽은 삼위일체를 묘사한 모습이다. 그림의 분위기를 보면 확실히 같은 성당에서 나와도 그리 이상하지는 않아 보인다.



20250422_160811.jpg St Catherine of Siena Tormented by Demons, panel from wing of triptych. 1500년 이후 추정



위 그림은 가톨릭에서 순교자 성인으로 알려진 캐서린(카타리나라고도 불림)의 그림이다. 그림 속에서 그녀는 여러 악마들에게 둘러싸여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캐서린은 부와 권력이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14세에 종교적 비전을 품고 기독교인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슬프게도 당시의 로마는 황제 막센티우스가 기독교를 잔인하게 박해하는 시대였으며, 이에 따라 황제는 캐서린을 위축시키고자 당대 50명의 뛰어난 철학자들을 불러 그녀와 토론을 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철학자들은 그녀의 확신 있는 연설에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고, 격분한 황제는 그녀를 감옥에 넣고 온갖 고문을 가하고 처형한다. 그렇게 보면 어쩌면 위의 악마들은 그녀의 신앙을 꺾게 하는 유혹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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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볼 작품들은 1440년~1460년 사이에 형성된 실레지아 지방의 작품들이다. 몇 점만 살펴보도록 할까.



20250422_161147.jpg Assumption, Epitaph of Lukas Eisenreich. 1506년



처음에 볼 때는 몰랐는데, 놀랍게도 이 작품은 묘비문이라고 한다. 이 작품이 기념하기 위한 사망자는 루카스 아이젠라이히(Lucas Eisenreich)라는 인물로, 브로츠와프의 시의원이자 정치인으로 활동했었다고 한다. 그림을 보면 마리아가 하늘로 들어올려지고 있는 신비로운 모습이 나타나 있다. 투리의 눈에는 그 모습이 하늘과 구원, 그리고 영원한 삶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20250422_161210.jpg Allegory of the Glory of the Virgin - Prayer Painting. 1500년 추정



위의 작품은 약 1500년경 브로츠와프의 베르나르딘 수도원을 위해 제작된 대형 회화 태블릿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림의 하단 중앙에는 위엄 있는 성모 마리아의 상(像)이 배치되어 있는데, 신자들은 기도를 바라볼 때마다 이 성모상을 향했다고 한다. 그 위쪽에는 메달리온 형식의 장면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각각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 안에서 마리아가 맡은 역할 같은 주제들을 담고 있다. 위의 장면들을 그린 이유는 기도와 묵상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20250422_161259.jpg Christ in Distress. 1502년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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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조금 더 시간이 흐른 시간대의 실레지아 작품들도 있었다. 이번에는 대형 제단화에 관련된 작품들인 것 같은데, 여기도 몇 점만 구경해보자. 지금 보니까 실레지아 작품들의 시간대가 실제 개별적인 작품 설명란의 시간대와 차이가 좀 있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 시기에 형성된 작품의 범주에 따른 특징별로 묶어놓다 보니 그런 게 아닌가 싶다.



20250422_161424.jpg Nativity Polyptych of the Prockendorf Family. 1480~1484년 추정



위 작품은 프로켄도르프(Prockendorf) 가문이 후원한 ‘성탄(Nativity)’ 주제의 제단화로 보인다. 이 작품은 교회용 제단화이면서 동시에 가문 헌정용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작품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분위기를 보이는 듯 한다. 길고 유연한 인체 비례와 금빛 배경 혹은 금박 요소를 보면, 이 작품 역시 전형적인 중부유럽 후기의 양식을 드러내는 것 같다.



20250422_161637.jpg Presentation of Jesus at the Temple. 1462년 추정



이 작품은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을 하는 모습을 나타낸 그림으로 보이나, 해당 작품은 그중 날개 부분만을 떼서 전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작품 속에 있는 두 인물은 각각 예수의 어머니와 아버지 되시는 마리아와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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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미술 전시관에 대한 작품 소개는 이 정도까지 하고, 폴란드 디자인 전시관도 한 번 살펴볼까? 자, 이번에는 시간을 엄청 뛰어넘어서(?), 현대 시대로 워프해보자!



해당 전시관은 20세기 전반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예술가들이 사람들의 물질적 환경을 어떻게 형성해 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에 있다고 한다. 미술관은 관람객들이 폴란드의 작품들을 연대별로 살펴보면서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기를 바라는 것으로 보인다. 뭐, 일단은 한 번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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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시작은 1890~1918년까지의 작품들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당시 폴란드인들은 외세로 인해 나라가 분할된 상태에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공동체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민족적 양식'을 찾는 탐구에 몰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추구는 '자코파네 양식'이라는 폴란드 특유의 독특한 형태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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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자코파네 양식이란 폴란드 남쪽에 있는 타트라 산맥 지역의 전통 민속 양식을 기반으로 만든 민족주의 디자인 양식이다. 스타니스와프 비트키에비치(Stanisław Witkiewicz)라는 화가가 해당 양식을 디자인 언어로 체계화시킨 끝에 만들어진 양식이며, 그 결과 수공예 감성, 뾰족하고 급한 경사를 가진 독특한 디자인이 탄생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유행은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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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1925년에 이르러, 폴란드는 파리의 근대 산업 박람회에서 크라쿠프 공방 소속 예술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면서 다시 디자인 역사를 기록한다. 이들의 소개한 작품들은 기하학적 가구나 벽 장식, 살롱이나 식당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작품들 안에 담긴 결정체 같은 형태와 리듬감, 그리고 모티프의 종합은 폴란드 특유의 새로운 양식을 형성했다고 평가받았다. 폴란드에게 있어 파리의 박람회는 폴란드만의 새로운 예술 공식을 전세계에 선언한 일종의 전환점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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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폴란드가 주권을 되찾으면서, 예술 기관 역시 새롭게 정비할 필요성이 생기게 된다. 당시 설립자들이 중요하게 여긴 과제들 중 하나는 사회 전반에 스며드는 폭넓은 시각예술 문화를 육성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와드 양식(Ład style)'이라는 새로운 양식이 등장한다. 이 양식은 현대성과 전통의 결합, 그리고 기능적 단순함 속에 토착적 요소를 가미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투리는 저 작품들에 와드 양식이라고 볼 만한 요소가 있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근처에 이에 관한 설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저 직물들도 와드 양식과 어느 정도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뭐니 해도 현대 시대의 폴란드 디자인이 담긴 대표작들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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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폴란드는 나치에 의해 다시 국가가 해체되는 수순까지 가다가, 1945년 이후 다시 국가 재건에 들어간다. 이때는 수공예와 소규모 생산이 전성기를 맞이하는 시기로, 쉽게 구할 수 있는 지역 자원을 활용해 저렴하게 생산된 일상용 실용품들이 대거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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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기부터 1955년에 이르기까지, 폴란드의 디자인은 세계 대전 시기의 양식적 경향과 공산 정권이 강요한 사회주의 리얼리즘 형태가 공존한 시기로 특정지어진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주로 격식 있는 가구와 실내 기자인에서 가장 강하게 드러났는데, 웅장하고 기념비적으로 꾸미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다만 지금 보고 있는 작품들은 투리 눈에는 사회주의보다는 실용주의 색채가 더 강하게 드러난 것들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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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폴란드는 1956년부터 1969년까지에 걸쳐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는데, 이 시기는 폴란드 디자인 역사에서 특히 폭발적으로 높았던 시기로 회고된다. 이중 수많은 뛰어난 프로젝트들도 덩달아 탄생했으며, 그 프로젝트들 중 상당수는 대량 생산에 들어가 보편적으로 이용 가능하게 만들어졌다.



이러한 창의적 폭발이 일어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폴란드 국내가 정치적 해빙기에 돌입했다는 점에 있었으며, 이는 긍정적인 변화에 대한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외부 세계에 대한 개방성을 확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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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 눈길을 사로잡았던 스타일은 추상회화와 오픈 폼(Open-form) 조각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모습이었으며, 지금 보시는 작품들이 아마 그런 디자인의 형태가 아닐까 싶다. 확실히 지금 보는 작품들의 알록달록하고 특이한 디자인은 상대적으로 투리의 눈에도 보기에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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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러한 폴란드의 왕성한 성장도 1970년대 전세계적으로 찾아온 경제 위기의 도래에 따라 막혀버린다. 중동발 오일 쇼크로부터 시작된 경제적 파장은 사회 전반의 경제 수준을 크게 낮추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디자인 발전에 결코 유리한 환경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란드에서는 일부 혁신적인 디자인 프로젝트들이 등장한다. 그 주인공들 중 한 명이 트랜드를 잘 반영하기로 유명했던 패션 디자이너 바르바라 호프(Barbara Hoff)였다. 이 디자이너는 대량생산 의류로 그의 명성을 널리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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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의류 디자인은 이 전시관에서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호프 디자이너 이외에도 다른 디자이너들도 나름대로 소규모 가족 기업을 설립해 장난감을 제작하는 등 각자의 자리에서 경쟁력 있는 제품들을 만들어냈다. 그들 중 일부는 수출 중심으로 가는 전략을 통해 살아남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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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드디어 마지막 시대를 설명하면서 이 전시관 소개를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1989년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폴란드 정치와 경제 체제의 전환은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냈다. 글로벌 시장이 크게 개방되면서 그 경쟁자들과 맞서 성공한 생산자들은, 좋은 디자인이 곧 성공의 공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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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시기에 디자이너들은 세계적 기준에 부합하는 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열과 성을 다했다. 또한 디자인 스튜디오와 제작 스튜디오, 한정 생산 제품을 만드는 니치(niche) 제조사들도 등장했다고 한다. 위의 작품들이 전시관의 끝에 있었던 만큼, 해당 디자인 역시 현대 디자이너들의 오랜 고민 끝에 만들어낸 창의적인 디자인이 아닐까 싶다.



또한 지금의 시대에 새롭게 추가된 디자인의 개념은 '책임 있는 디자인'이라고 한다. 이는 환경과 재활용을 고려하면서, 동시에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생산을 지향하는 디자인을 말한다. 시대가 흘러도 디자이너들이 세상의 흐름에 맞는 창의적인 디자인을 만드는 데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점은 변치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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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이런저런 장황한 설명을 끝으로, 해당 미술관의 두 전시관에 관한 소개는 이것으로 모두 마쳤다! 이번에는 폴란드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는데, 어떤가? 보는 재미가 조금이라도 있었는가? 타국의 과거와 현재의 예술을 담은 이 글이, 여러분의 관점에 신선한 자극이 되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특히나 이번 글에서는 양측의 전시관이 상당 부분 대비되었던 만큼, 오히려 그 점이 폴란드에 대한 내적 친밀도가 조금은 오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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