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 국립 미술관>, 명실상부 폴란드 최대 규모의 미술관
안녕하신가, 여러분. 드디어 '바르샤바 국립 미술관'의 마지막 미술관을 보여줄 시간이 다가왔다! 이번에 보여줄 전시관만 소개하면 상설전시관은 모두 소개하는 셈인데, 이 글에서 다룰 전시관은 '명화 및 장식미술 갤러리(Gallery of Old Masters)'로 전시관들 중에서 최상층에 위치해 있다.
직전의 글에서 다룬 곳이 폴란드 작품들에 관한 글이라면, 해당 전시관은 유럽의 전체적인 회화와 조각을 전시하는 곳이다. 전시하는 작품들은 주로 15~18세기의 유럽 회화와 조각들로, 이탈리아,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등 유럽 대표 화가들의 작품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그래서 이번 전시관의 의의는 무엇이냐? 그냥 폴란드에서 서유럽의 여러 명작들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 정도랄까?
여행객의 입장에서는 퍽 입맛을 다실 만한 매력은 아니지만, 폴란드에 단기 정착 중인 투리에게는 이보다 더 가성비 경험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글을 통해 투리는 '바르샤바 국립 미술관' 시리즈의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하겠다. 그럼 지금부터 바로 미술관 최상층 전시관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바르샤바에는 투리가 두 번 이상 방문한 관광지들이 좀 있는데, 그중 한 군데가 바로 이곳이다. 이유야 당연하다. 처음 갔을 때는 최상층을 방문하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보다 가성비 있는 교환학생 생활(?)을 위해, 투리는 구태여 관람비가 무료가 되는 화요일을 두 번씩이나 노려서 6월 3일, 이곳을 다시 들렀다.
그런 연유로 방문하게 된 최상층의 명화 및 장식미술 전시관. 아마 미술관의 모든 상설전시관을 보여주는 건 투리가 거의 유일하다시피 할 텐데, 합쳐보면 사진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건 확실하다. 그럼에도 이 미술관의 스케일을 생각하면 투리가 보여준 작품들은 일부에 불과하다. 여하튼 전시관에 들어왔으니, 탐색을 시작해 보자.
장식미술이 활용된 대상은 회화, 조각, 가구, 태피스트리, 직물, 카펫, 금세공품, 은세공품, 유리 공예, 마욜리카, 파이앙스, 도자기 등 다양하다. 이들의 용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궁정 문화, 두 번째는 종교와 개인의 신앙 보존용,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도시 상류 계층용이다. 여기서 전시관은 첫 번째 섹션부터 시작되었다!
오우, 시작부터 수위(?)가 상당한 작품이 등장했다.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아담과 이브는 성경 속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간이다. 하지만 아까 말했듯 지금 여러분이 보시는 작품들은 개인의 신앙을 위한 용도가 아닌 사치의 과시이자 화려함을 표현하기 위한 장식미술에 속한다. 이들은 도덕적 교훈이나 정치적 선전의 수단으로 쓰이기도 했으며, 때로는 단순한 감각적 즐거움을 위해 만든 작품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해당 작품들에는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황제나 왕, 제후들이 소유한 공간, 이를테면 도시 궁전이나 시골 별장, 혹은 영지 등을 장식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큰 틀에서 궁정 문화로 구별되는 것 아니겠는가? 좀 더 하나씩 하나씩 구경해 보도록 하자.
(좌) The Head of Proserpine. Glan Lorenzo Bernini, 1622 / (우) An Old Cook with a Roasting Spit. Giovanni Francesco Briglia
뭐 이런 느낌이다. 전의 회화 미술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비교적 중세풍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가? 알고 나서 초상화 속 인물들의 복장을 살펴보면 확실히 그렇다는 게 느껴지지만, 처음에 봤을 때 투리는 다 거기서 거기였던 것 같다. 일단은 계속 둘러보자.
오, 이 작품은 작가가 그단스크 출신 화가 다니엘 블록(Daniel Block, 1580–1660)이라고 하는 걸 보니 폴란드 작품인 것 같다. 이 그림은 귀스트로프 성에 위치한 공작의 거처를 위해 주문 제작한 작품인데, 배경에 보이는 건물이 바로 그 귀스트로프 성에 속한다. 위의 작품과 같은 기마 초상화는 제국적 이미지 전통 계승을 상징하는 작품인데, 해당 초상화가 나온 17세기 북독일 회화에서는 보기 드문 사례이다.
기념비적인 기둥 건축과 드리워진 휘장을 배경으로 하는 곳에 가슴에 성령 기사단 훈장을 단 추기경은 프랑스의 위엄과 교회의 권력을 구현한다. 그 관습이 네덜란드 초상화가 피터 나손(Pieter Nason)이 1666년에 그린 위의 작품에 드러나 있는데, 이 그림은 오라녜 공가의 방계 출신 정치가를 묘사한다. 그는 네덜란드 연합 공화국의 군사 지도자였으며, 브라질과 서아프리카에 있던 네덜란드 식민지의 전 총독이기도 했다. 성 요한 기사단으로 묘사된 이 인물은 여러 표장들로 덕지덕지 장식되어 있다.
이 작품은 바르샤바 왕실 궁정에서 활동하던 그단스크 출신 화가 다니엘 슐츠(Daniel Schultz)에 의해 제작된 작품이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폴란드의 국왕 얀 카지미에시 2세인데, 어디선가 전에도 본 느낌이 난다. 브로츠와프 미술관에서였나...? 사실 왕의 초상화라면 투리도 다른 미술관들에서 자주 마주쳤을 테니, 그리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
위에서 오른쪽 사진의 캐비닛은 파리 또는 앤트워프에서 제작된 값비싸고 정교하게 제작된 가구에 속한다. 외부의 검은색과 내부의 다채로운 색채는 대비를 이루며, 장식은 귓바퀴 모양(auricular ornament)과 물결무늬 몰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때 흑단의 사용은 가구 양식에 영향을 주었고, 이후 한 세기 동안 급속히 발전한 프랑스의 에베니스트리(ébénisterie) 예술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한다.
Jean-Antoine Watteau의 해당 작품은 루이 14세 왕자를 표현하고 있다. 그림 속에서 그는 왕세자와 부르고뉴 공작에게 코르동 블뢰 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참고로 그가 수여한 훈장은 당시 부르봉 왕가의 최고 귀족만 받을 수 있는 영예와도 같은 것이었다.
17세기 후반과 18세기 유럽 궁정에서는 세련되고 우아한 태도가 하나의 규범에 속했다. 이는 벽면에 걸린 프랑스와 독일 초상화들에서도 확인된다. 어떤 작품들은 위신과 권력을 상징하는 전통적 이미지를 드러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궁정에서 유행한 로코코적 이상, 이를테면 공식 의례를 벗어난 여가와 친밀한 생활양식을 표현한 작품들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라르질리에르가 그린 위의 작품은 후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자, 여기서 투리가 찍은 사진들만 해도 다 보여주다간 끝이 없으니 이쯤 해서 두 번째 섹션으로 넘어가자. 아까도 말했지만, 두 번째 류의 장식미술들은 종교적인 색채가 다분한 작품들에 속한다.
이 장식미술들이 사용된 곳은 당연히 성당과 그와 관련된 공간들이겠지? 해당 미술양식이 쓰인 대상들 역시 회화, 조각, 가구, 태피스트리와 직물, 금세공품, 유리 공예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이들은 가정이나 예배실에서 각 개인의 개인적 신앙, 기도, 묵상을 돕는 역할도 했다.
전시된 종교 장식미술 작품들에는 중세 말기, 르네상스 시대, 트리렌트 공의회 이후, 종교개혁 이후 등 다양한 시대상의 작품들이 있다. 물론 다 보여주기에는 무리고, 몇몇 작품들만 맛보기로 여기에 공개할까 한다.
이 작품은 네덜란드 화가와 그의 아내가 기증한 작품으로, 종교 개혁 시기의 성상 파괴 운동 속에서 근처에 살던 와인 상인 덕분에 파괴를 면한 회화이다. 중앙의 장면에는 본디오 빌라도가 매질당한 그리스도를 군중 앞에 세우며 "에케 호모(Ecce Homo, 이 사람을 보라)"라고 말하고 있다. 그림 속에는 역동적인 포즈와 미켈란젤로를 닮은 근육질 체형 등 이탈리아풍 요소가 드러나 있다. 실제로 화가는 이탈리아 유학을 통해 미켈란젤로와 매너리즘 양식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한다.
위 작품의 제목 '수태고지'라는 뜻에는 주님의 탄생 예고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데, 해당 작품은 16세기 초 이탈리아 중부 화가가 그린 작품이다. 교회 내부가 반원형 회랑을 통해 넓은 산악 풍경으로 이어지는 구성을 보여주는데, 이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대한 르네상스 시대의 찬미를 나타낸다.
1535년 벨루노의 산 루카노 교회를 위해 제작된 Paris Bordone의 위 작품은 '성스러운 대화'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성모 자자와 성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작품 속의 장면은 르네상스 예술의 특징적인 주제들 중 하나이다. 여기서 성모는 교회의 영적 공동체를 상징하며 보좌에 앉아 있다. 여기에서 아기 예수가 앞으로 몸을 기울여 성 루카노의 머리 위에 있는 미트라(주교관이 머리 위에 쓴 것)를 고쳐 써주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교회의 권위가 신으로부터 부여받았음을 표현하는 상징적 행위라고 한다.
유물들 중에는 십자가 처형 묘사와 관련한 유물들도 여러 개 있다. 이를테면 위 사진 속의 십자가 처형화처럼 말이다. 토스카나 화가가 그린 위의 그림에서는 고대 조각의 위엄을 담은 절제된 인물들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정서적 공감을 유도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십자가 처형을 담은 작품이다. 다만 위의 작품 속에는 십자가 꼭대기에 펠리컨이 있는데, 중세 유럽에서는 펠리컨은 자신의 피로 새끼를 먹인다는 전설이 널리 퍼졌다. 이러한 펠리컨의 행위는 작품 속에서 성체성사와 그리스도의 희생의 상징으로 묘사되었다. 실제로 펠리컨은 자기 피로 새끼를 먹이지는 않다고 한다. 무슨 드라큘라도 안 할 짓을 한다고 하는 건지.
위의 작품은 고통받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알아보기 쉽게 그린 작품이다. 직관적으로 나타난 이 작품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수난과 구속을 묵상하도록 독려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그리고 위의 유물들은 유럽의 다양한 곳들에서 가져온 교회의 성유물이다. 보면 위에는 성배들도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나타낸 장식물들도 존재한다. 확실히 저런 물건들을 집에서 눈이 자주 닿는 곳에 둔다면 나도 모르게 경건심이 자주 쏟아나올 것 같다. 다만 성경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작품들에 한해서.
자, 이제는 나머지 세션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그 뒤의 전시관들에는 도시 상류 계층들이 향유하던 작품들을 포함해 시민들의 삶과 제도를 나타낸 유물, 수집가의 진열장 속 회화, 도자기 캐비닛 등 다양한 장식미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작품들의 수가 어마어마하기에 부득이하게 몇몇 작품들만 보여주고자 한다.
위 작품이 바로 도시 부유층이 과시용으로 집에 걸은 대표적인 작품들 중 하나올시다! 당시 유럽 주요 도시의 가정들은 각자가 벽에 걸은 초상화들을 통해 생활수준 유추가 가능했다. 당시 네덜란드와 같은 유럽에서는 벽에 걸린 그림을 통해 집주인의 경제력과 교양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는데, 위의 신화적인 요소가 들어간 작품도 네덜란드 화가가 그린 작품이다. 그리고 이런 류의 작품들이 집주인의 화려함에 화룡점정을 찍어 주었다고.
(中) Portrait of Johanna de Geer-Trip with Daughter Cecilia. Ferdinand Bol. 1661
(우) Self-Portrait. Bartholomeus van der Helst, 1667
위 사진에서 왼쪽 그림은 오렌지 공 밑에 있었던 화가 피터 나손(Pieter Nason)이 그린 작품으로, 해당 작품의 배경에 네덜란드 풍경을 넣음으로써 조국에 대한 사랑(애국심)을 암시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창틀에 손을 얹고 있는 듯한 젊은이의 자세는 이탈리아 매너리즘과 바로크 양식의 영향을 받았다.
위 사진의 오른쪽 그림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볼까? 해당 그림의 작가 바르톨로메우스 판 데르 헬스트(Bartholomeus van der Helst)는 1640년대부터 사망할 때까지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초상화가였다. 그림에서 그가 그린 인물은 메리 헨리에타 스튜어트(영국 공주이자 오라녜 공의 미망인)로 보이며, 이는 당시의 정치적 배경을 시사하고 있다.
(中) Portrait of a Man in a Dark Costume. Govaert Flinck, 1636~1640 추정
(우) Portrait of Maerten Soolmans. Rembrandt Harmensz. van Rijn, 1634
왼쪽 작품의 노부인의 초상화는 귀족 가문 출신으로서의 모델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작품 속 그녀의 엄격하고 꿰뚫는 듯한 시선은 충실한 의무 이행에 대한 신념을 드러내는 모습 같기도 하다. 한편 가운데의 그림은 렘브란트의 제자 호바르트 플링크(Govaert Flinck)가 지은 작품으로, 지팡이를 들고 방랑자처럼 묘사되어 네덜란드 풍경을 가로지르는 남자의 모습을 통해 활동적인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 작품은 의심의 여지없이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의 작품이다. 작품 속의 인물은 마르텐 솔만스(Maerten Soolmans)라는 이름의 부유한 상인으로, 처음에 렘브란트에게 자신과 아내의 기념비적인 전신 초상화 두 점을 의뢰했다고 한다. 지금 여러분이 보시는 작품은 그 작품은 아니고, 파리에서 축소된 복제본에 해당한다. 여담이지만 솔만스의 초상화는 렘브란트 작업실에서 제작된 이 복제본들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작품이라고 한다.
목초지로 둘러싸인 모습을 바탕으로 한 해당 작품은 로마 출신의 거장 조반니 파올로 판니니(Giovanni Paolo Pannini)의 회화이다. 그림을 보면 오른쪽에 작품의 주제인 로마의 티투스 개선문이 보이고, 목동들의 장르 장면을 위한 배경이 되는 고대 유적의 모습도 보인다. 이 작품은 그나마 소형 작품에 해당하는데, 판니니는 영원의 도시를 장엄하게 묘사한 작품들로 명성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위의 작품 역시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인데, 당시에는 이탈리아의 풍경에 매료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뒤에도 이탈리아적 모티프가 담긴 그림을 제작한 작가들이 많았다. 이러한 구도는 이탈리아에 거주하던 네덜란드 화가들을 시작으로 발전되어 왔다고 한다. 가스파르 판 비텔(Gaspar van Wittel)이 그린 위의 작품 역시 그 흐름의 산물이다. 이 작품은 1780년대의 준비 드로잉을 바탕으로 하다가 수십 년 뒤에 활용된 회화로, 영원의 도시 로마의 모습을 아주 충실히 묘사하고 있다.
위의 작품은 유럽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정물화 회화들 중 하나이다. 이 회화에는 상징적 의미가 있는데, 꽃의 아름다움과 구조는 세계의 아름다움과 완전함을 반영하면서도 동시에 그 덧없음을 표현한다고 한다. 이 작품 역시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작품 속에는 작은 동물들과 곤충, 그리고 시들어가는 꽃들이 있다. 이들은 생명과 죽음의 순환을 상징한다. 해당 그림의 작가 역시 아름다움 속에 숨겨진 시간의 흐름과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나타내고 싶었던 것이다.
이외에도 해당 전시관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장식미술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물론 이번 전시관은 상대적으로 다른 유럽 국가들의 작품들이 많기는 했지만, 이렇게 가치 있는 수많은 회화들과 장식미술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아마 지금껏 보여준 사진들을 함께 감상한 여러분도 투리 본인이 하는 말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폴란드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바르샤바의 '바르샤바 국립 미술관'에 대해 투리는 무려 4개의 글에 걸쳐 소개해 보았다. 물론 어떤 분들은 계속 한 미술관만 보여주는 만큼 피로감을 느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각 전시관들의 테마가 확실히 달랐기에 작품들을 보는 것이 매번 단조롭지만은 않았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어찌 됐건 투리의 기나긴 시간 투자 끝에, 이번 관광지에 관한 글도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지금까지 끝까지 본인의 글을 따라온 독자들이 있다면 정말로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역시 투리는 개인적으로 가장 자주 눈호강했다고 느낀 순간이 미술관 관람이었나 보다. 그런 의미에서 투리의 모험은 아직 계속되니, 여러분도 이 시리즈에 끝까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린다. 오늘도 다들 뜻깊은 하루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