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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J Oct 18. 2022

반점,

그 미완결성과 연속성에 대한,

" , "



나는 유달리 반점을 좋아하는데, 악필로 유명한 나의 글씨체도 반점을 그릴 때는 열과 성을 다해 조그맣고 동그란 원을 그리고, 그 밑으로 긴 꼬리를 내린다. 사선으로 내리 긋는 그 짧은 순간이 나는 온점으로 하나의 문장을 끝내어 보내지 못하고 붙잡는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떠한 문장이 끝이 나지 않았을 때 추가적인 내용의 여백을 마련하기 위해 반점을 그리고는 한다. 반점은 끝이 나지 않았다는 그러한 미완결적인 면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 안에 들 수 있었다. 나의 성격 또한 반점스러운데, 나는 나의 의견을 누군가에게 확실히 피력하는 것이 실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떠한 주장을 할 때는 온점으로 마무리하지 않고 상대의 의견을 들을 생각이 있다는 걸 어필하기 위해 반점과 그 뒤의 여백을 준비한다. 그것은 습관이 되어, 연락을 주고 받을 때도 확실하지 않은 생각과 결정은 반점으로 마무리를 흘리고는 한다.

온전하고 완결하지 못한 반점에서 나는 완전하지 못한 나를 비추어 보고 동질감을 느낀다. '부족한 나'에서 온점을 찍지 않고 뒷이야기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게, 반점을 찍어 놓고 나는 다음을 고민할 수 있는 틈을 마련해준 그것의 존재에 안도한다.


또한 그것은 나와 나의 생각을 흐를 수 있게 해 준다. 반점 없이는 나는 글을 쓸 수 없다. 가슴 속에 퍼지는 감정, 머리에 스치는 생각은 연속적인 것이라서, 어느 순간을 붙잡아 글로 써내어도 실제로 나의 의식이 더듬고 있는 주제는 또 다른 것이라서, 우리는 절대로 머릿속을 온전히 글자로 잡을 수가 없다. 생각은 거센 파도 위의 작은 나뭇잎처럼 끊임없이 흘러가고, 감정은 폭풍우처럼 몰아쳐서 하나의 단어로 묶을 수 없기에, 나의 감정을 서술하기 위해 나는 끝없이 많은 단어들을 나열해야 한다. 숨을 조여오는 끈덕하고, 불쾌하고, 밀도있고, 너무 어두워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알 수 없는 불안을 받아 적었을 즈음엔, 이미 그 다음 조용하고 어두운 방 안에서 심장 박동 소리를 귓바퀴 가득 울리게 하는, 미칠듯한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머리를 지배하고, 또 그에 대해 무작정 키보드를 두드려 글자로 간신히 따라잡았을 즈음에는, 아무리 두 팔로 몸뚱이를 끌어모아도 벗어날 수 없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가슴 을 시리게 하는 것이다. 몰아치는 감정의 흐름에 휩쓸려 가기 싫어 익명의 누군가에게라도 내면을 털어놓기 위해 나는 헐떡이며 수 많은 말들을 이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반점'이라는 이름이 '쉼표'라는 이름보다 더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반점들은 숨 쉬기 위한 문장 부호가 아니라, 쉼 없이 흘러가고 이어지기 위한 부호이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우울의 바다에서 부유하며, 그 바닥의 끝이 어디일까 가늠하다 이내 고개를 젓고 숨 쉬어보려고 노력했으며, 추워지는 날씨와 속을 파먹는 자책, 내가 싫어하는 많은 것들을 지나왔고, 숨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집 안에서 이상한 감정으로 배회하고, 다가오는 시험을 위해 공부하고 혹은 공부를 해야지 생각하고 혹은 생각하는 시간조차 아깝다고 생각했으며, 왜 자고 싶을 때는 잠이 오지 않지만 깨야할 때는 졸릴까 고민하고, 모든 일련의 연속적인 생각과 행동을 따라가며 기록하려고 애쓰고, 지금도 나의 시간과 의식은 흘러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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