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익명의 J Sep 23. 2023

조증의 일지 1

이 때는 모든 게 다 잘 풀릴 것 같았는데

09/19 


앞선 글 Changes-Lauv 에서 <낫지 않는 상처가 되어 평생 가져가야 할 나의 일부>라는 말에 대해서 며칠간 생각을 해보았다. 

어떤 상처든 기간이 오래 걸리거나, 흉터가 생기더라도 언젠가 낫는다. 그리고 또 우리는 그 흉터를 가지고 어떻게든 살아간다. 


글을 써야만 했던 이유 라고 브런치에 처음 나의 정신병에 관해 쓴 글이 있다. 여기서 자해를 하는 이유로 삶의 의지를 다지고 싶어서라고 했는데, 사실 그것은 매우 부수적인 이유고 내가 자해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흉터가 남기 때문이다. 첫째로는 내가 괴로웠던 감정을 어떻게든 기록하고 싶었다. 이만큼 아프고 힘들었는데 없던 일처럼 잊고 싶지 않아서. 두 번째는 스스로 너무 혐오스러웠던 순간을 흉터로 남기면, 볼 때마다 내가 나를 아끼고 존중하면 안 되는 이유들을 되새기고, 우울함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죽길 바라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자해는 흉터로 몸에 남고, 나는 그것이 내 인생 기록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나의 작은 자살 기도 또한 일생에 있어 큰 상처가 되었지만, 이것 또한 언젠가 아물어 흉터로 남을 것이다. 이 흉터를 보면서는 무슨 생각이 들까?






그날 밤의 나는 죽고 싶었다. 그건 확실하다. 

그러나 결국 죽지 못하고 큰 상처를 가지게 된 나는 조금은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나를 변화시킬 수 있을지 궁금하다. 


우선 나는 생각보다 혼자가 아니며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불안이라는 부정적 감정에 항상 휩싸여 있다. 우울의 일지 1, 우울의 일지 3 에서도 밝힌 적 있지만 나의 불안은 나 혼자 버려지고, 남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싫어할까 봐, 그래서 세상의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남겨질까 봐. 그래서 나는 남들처럼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더 분주해야 했고, 더 불안해야 했다. 그렇게 노력하는 나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이해해주지 않는 것이 외로웠지만,

나를 걱정하고 찾아주는 사람들이 분명 있었다. 내가 주변 사람들을 아끼고, 챙긴 만큼 그들도 나를 생각해 주었다. 스스로 자책할 만큼 나의 인간관계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리는 타인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고, 그러지 못하는 게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다. 


그걸 깨달은 것은 남자친구의 사랑 덕분이다. 약 때문에 깨지 못한 채 울고 자고를 반복하는 동안 조용히 집에 남은 술을 버려주고, 피 묻은 이불을 빨아주던 사람. 밤새 울면서 그 어디에도 하지 않았던, 일기장 깊숙한 곳에만 적었던 말들을 흐느끼며 말했다. 말했다보다 흘려내었다는 말이 적당하다. 말도 아닌 눈물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내 말의 그 무엇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알겠다고 들어주었다. 우는 나를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었다. 우리는 때로는 서로의 사랑을 알아주지 못했지만 그날 나와 함께 해준 건 그 사람의 사랑이었고 나를 이해해주지 않아도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항상 남보다 조금 더 특별하게 여겨지는 사람이기를 바랐다. 모든 사람들에게 특별한 것은 불가능한데도 나는 그러기를 바랐다. 그래서 오히려 더 멀어지고, 잘못된 관계들도 많았다. 

그 근원에는 채워질 수 없는 태생적인 외로움이 있었고, 그 외로움은 정말 비틀릴 정도로 고통스럽고 슬펐다.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 =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서 라는 생각이 기반에 있기 때문에 외로움 다음으로는 자책과 후회가 따랐는데, 그 모든 감정들은 너무, 너무 마음이 아팠다. 

어떻게든 외로움을 없애려고 잘못된 인간관계를 만들고, 자책하고 과음을 하고, 실수를 하는 것이 반복이 되며 나 자신을 더 망치게 되었다. 최근 나를 힘들게 했던 것도 마음도 정도 많이 주었던 한 관계였다. 나는 그 관계가 나에게 소중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것을 유지하는데 목매고 매달렸지만, 사실 그 관계에서 나는 가장 상처받았고, 비참했다. 


그날 밤 손목을 수없이 그으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분명 그날의 선택과 행동은 앞으로도 평생의 흉터로 남겠지만, 동시에 나는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을 일부 그어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그 관계에 대한 미련을 깔끔히 그어낸 지금, 조금 나아간 기분이 든다. 


정말 말 그대로 일상의 작은 것조차 무너져있던 나는 조금씩 돌아가려고 노력했다. 누군가 들으면 우습겠지만, 방을 청소 직후의 상태를 유지해 집에 돌아왔을 때 깨끗한 방에 들어가는 것이 행복하다. 바로바로 화장대와 책상을 정리하고 옷을 개는 그런 당연한 것들을 미루지 않는데서 작고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7~8월, 망가질 대로 망가졌던 나는 기본적인 방청소나 취미 같은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왜냐고 물으면 정답은 모르겠다. 그저 어떤 마음으로 죽으려 했는지, 그리고 죽지 못해 어떤 마음인지, 나만이 알기에. 죽지 못해 눈 뜬 그날부터 처음으로 내가 안쓰러웠다. 안타까웠다. 



일기장을 열어보면 <나는 망가지고 미쳐버려서 나는 나를 포기했다. 병원을 가는 것은 약을 먹고 낫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잠깐의 시간이라도 내 고통을 토로하고 싶어서이다. 나는 스스로가 안타깝지 않다. 그러면 사실 나는 나를 위한 어떤 노력을 해주고 싶다는 뜻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정의대로라면, 이젠 안타까운 나를 위해서 나는 어떤 노력을 하고 싶어진 것이다. 


그렇게 제일 먼저 일어나서 방을 정리했고, 청소를 하고 샤워를 했다. 그리고 나를 오히려 괴롭게 하던 병원을 끊고 원래 다니던 병월을 다녀왔다. 


다음날 오랜만에 학교에 갔을 때, 친구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고, 내가 뭔가 숨기며 어색하게 굴 것 같고 그래서 마냥 웃으며 농담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반가웠고, 날 기다려준 친구들과 대화하는 것이 정말 고맙고 즐거웠다. 나는 사실 밝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은 후부터 나의 밝음이 조증의 일부가 아닐까, 방금 대화가 너무 과하게 즐거운 척한 것 아닐까 걱정할 때가 있었다. 한창 재밌게 웃고 떠들다가도 아 내가 너무 과하게 웃기려 했나, 혹은 아 내가 분위기에 휩쓸려 너무 많은 속얘기를 해버렸다 등 후회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우울증의 시기가 오면 밝았던 내 모습과 대비되어 더 침체되고 가라앉는다. 보통의 조울증 환자가 힘든 이유라 했다. 지금도 우울증이 다 치료된 마냥 모든 걸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나는 조증의 시기에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어쨌든 밝고, 장난을 좋아하며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어울리는 그런 시간들을 즐기는 나 또한 나의 많은 모습 중 하나이다. 그런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또 우울하고, 불안해하며 고통스러워하는 나의 모습도 있다. 그런데 그런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어쩌면 나의 일부는 달라지고 싶은지도 모른다. 힘들게 하는 관계들을 정리하고, 소중한 사람들을 아끼면서, 나도 나아가야 한다고 그런 생각이 든 것일지도 모른다. 자살 실패자들이 자살을 후회하고 극적으로 행복해지는 그런 클래식한 이야기를 좋아하진 않지만 나도 그 길의 일부로 들어선 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Changes - Lauv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