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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J Sep 17. 2023

Changes - Lauv

그날 들으며 잠들었던 곡




수요일, 어설픈 자살 시도를 했다.

그래서 목요일, 눈을 뜨고 말았다.




사실 목요일은 기억이 별로 없다. 과량으로 먹은 약 때문에 눈을 떠도 사물을 구분할 수가 없었다. 그날 반드시 해야 할 것들이 있었기에 카톡을 치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물론 전날 만취 상태였기 때문에 할 일 같은 건 고려하지 않았다. 맘대로 걷는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몸을 일으켜 걸으려 하면 세 발자국 후 어딘가에 부딪혀 쓰러져 있었다. 마약을 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쾌락이 없다는 점만 빼면 비슷할지도 모른다.

생각이라는 것이 가능해진 금요일에는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뭘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학교를 가고, 실험실을 가고, 친구들과 웃었다면. 별 일 아닌 것처럼 넘겼다면. 그러나 뇌가 그냥 멈춰버린 것 같았다. 스스로 한 선택이 분명한데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너무나 많은 게 무서웠다. 무서워서 울었고, 숨이 막혀서 울었다. 어떻게 그 하루를 보냈는지 더듬어보아도 정확하지가 않다.


내가 진짜 자살 시도를 했던 건지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정말 나는 죽고 싶은 게 맞았을까? 주변 사람들의 얼굴이 한 번씩 스쳐 지나간다.

솔직히 무섭다. 내가 그런 의도를 행동으로 실행했다는 게 무섭다. 그 행위 자체가 무섭다. 진짜 언젠가 내가 자살할 수 있다는 게 무섭다. 내가 죽어도 아무도 왜인지 모를 것이라는 것이 무섭다. 나의 죽음을 아무도 이해하고 존중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무섭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나는 더 고장 나서 일상을 살아가지 못할 것 같아 무섭다.


설명할 수 없지만 내가 스스로 선택한 이 행동은 스스로에게 너무 상처가 되었다. 왜 그랬어,라고 나는 묻는다. 그러나 그것은 죽고 싶어 하던 나의 마음과 너무 모순적이라 너도 알면서,라고 답한다.



그럼에도 그날 밤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반드시 다음 날 눈뜨지 않도록 더 많은 약과 술을, 그것도 안된다면 그냥 창문으로 뛰어내릴 것이다. 여러 번이나 자살 기도를 한다는 건 끔찍하다. 그래서 다음 날 깊게 후회했다. 할 거였으면 남은 것까지 다 먹어버렸어야지, 힘을 내서 끝까지 그었어야지. 왜 애매하게 굴어서, 토할 것 같은 다음날과, 어제의 감정과 잔상을 계속 떠올려야 할 앞으로의 나날을 만들었느냐고.





나에겐 구체적인 죽음의 방향과 방식이 있었다. 소설 <수브다니의 여름휴가>에서 주인공이 선택한 죽음의 방식과 매우 닮아있는데, 연인에 의해 억지로 인간화가 된 안드로이드 주인공은 결국 연인과 끔찍하게 헤어진다. 그는 뜬금없이 다시 금속 피부를 이식해 달라고 부탁한다. 여러 어려움을 거쳐 결국 시술에 성공한 그가 한 것은, 찰랑이는 바닷가에 몸을 살짝 담그고 조금씩, 조금씩 녹슬어가는 것. 죽음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죽음의 방식이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온전한 나의 선택으로 생각, 감정, 나의 숨, 나의 생, 영혼이 빠져나가는 그 순간을 느끼며 마지막을 맞이하는 게 나의 죽음이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은밀히 죽음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루에도 수십 번을 생각하고 준비했다. 왜 수요일에 '오늘이다'라는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이성적인 선택이 아니었지만 너무 많은 시뮬레이션 덕분에 나는 만취한 상태에서도 그 과정을 수행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니 이 사건의 끔찍한 점은 내가 준비하고 기다렸던 것에 비해, 실제는 너무 하찮았고, 자살 시도라고 보기도 어려운 보잘것없는 하룻밤의 사고로 인해 나는 '자살 실패자'라고 불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실패한 자살 기도자'보다 한심하고, 형편없는 지위가 있을까? 세상 힘든 척, 절망스러운 척하면서 죽지는 못했다. 아직 자살 기도를 하지 않은 사람은 계획 단계의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실패자는 그냥 실패자가 된다. 그 후에 정말 더 죽고 싶다는 간절함에 눈물을 흘려야 하고, 한편으로는 내 노력과 의지가 부족했던 게 아닐까 자책해야 하고, 심지어는 내가 사실 살고 싶었나 하는 내적인 갈등까지 가져야 한다. 수십 번이고 그날을, 그 순간을 떠올리고 곱씹을 것이며 그때마다 고통스러운, 그러나 모두 이름 다른 감정들을 마주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나의 미래다.

어느 날에 결국 나는 또 죽음을 준비할 텐데, 그때마저 실패하면 나는 뭘로 보일까. 거의 자살 시도 중독자, 관심종자가 아닐까. 나의 자살이 더 의미 있고 신중했으면 했는데 수요일의 사건은 나 스스로에게 너무 실망스럽고, 후회스럽다.




나는 모든 사건들에 있어 느낀 감정과 생각을 분석하고, 기록하려고 한다. 그 일, 또는 어떠한 관계에서 내 생각이 무엇인지 말과 글로 적어내면 그때에서야 나는 앞으로 어떻게 행동하고 대처할지 알 수 있다. 

이번 일 또한 나는 며칠을 계속해서 왜 그날이었는지, 왜 죽지 못했는지 되묻고, 그 이후에 드는 수많은 감정에 이름을 붙이려고 숨이 가쁘게 적어냈다. 가만히 존재하는 것도 버거워 빛줄기 하나 없는 방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이 눈물이 왜 멈추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내게서 빠져나가는 것은 눈물뿐이 아니라 생명의 에너지인 것 같았다. 그 누구의 연락도 받을 수 없었고 아무것도 먹을 수도 없었다.


대략 4일이 지나고 나는 영영, 앞으로도 그 수요일을 정리하지 못할 것이며, 떠올릴 때마다 상처에 사포를 문지르듯 쓰라릴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낫지 못할 상처가 되어 내가 가져가야 할 일부가 됐다. 

벌써부터 나는 숨이 막히는 고통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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