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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J Feb 08. 2023

죽음의 욕구는

우울의 일지 6

과거의 심리학자인 매슬로 씨의 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욕구에는 위계가 있어 가장 낮은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어야 다음 단계의 욕구가 나타난다 하였다. 


그렇다면 나의 죽고 싶은 죽음의 욕구는 어디쯤 있을까?



죽고 싶다가도 나는, 배가 고프다. 몇 끼 먹지 않고 지나가도 결국에는 배가 고파 몸을 일으키고 먹을 것을 찾아 어슬렁거린다. 죽고 싶다가도 나는, 안전해지고 싶다. 내가 느끼는 불안과 두려워하는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 안정하고 평온한 그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어 진다. 죽고 싶다가도 나는, 사랑받고 싶다. 나를 찾아주고 내가 사랑받을 만큼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누군가의 위로를 바란다.


죽고 싶다가도 나는, 

빛나는 사람이고 싶다. 



내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고 좋아하는 것을 향해 달려가며 순간순간에 열정을 담아 그 누가 봐도 빛나는 사람이고 싶다. 내가 그리는 이상향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그 과정의 나를 사랑하고, 내가 항상 그런 사람이기를 바란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않아서 힘들다. 그 누가 봐도 볼품없고 형편없어서 그저 작아진다. 어디로 도망치려고 노력해도 이미 불안의 연막 안에서 길을 잃었다. 눈물이 펑펑 흘러도 화장실에 가고 싶어지는 스스로가 참 웃기기도 해 죽어버리고 싶다. 



죽음에 대한 욕구는 대체 어디쯤 있는지, 그 경계를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과 감정만큼 경계가 불분명한 게 어디 있는가. 욕구와 바람, 미련과 후회 그 모든 감정들은 사실 하나의 덩어리인데 그 안에서 순서와 위계를 나눈다는 건 헛된 일이 아닐까.




학기가 끝나고 두 달이 가까워지는 시간 동안 나는 정말 노력해 왔다. 운동을 시작한 게 큰 도움이 됐다. 끔찍하고 다양한 시나리오로 새벽에 수십 번 나를 깨우는 악몽의 여파도 아침 운동을 다녀오면 사라지곤 해 깨끗이 씻고 나온 그 순간부터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것 같아서 좋았다. 체형이나 몸무게 숫자에 변화가 없어도 매일 노력하고 달라지려는 나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기뻤다. 매일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고, 술을 줄이고, 생산적인 취미활동과 나를 힘들게 하는 인간관계들을 정리하기까지, 순조로운 방학이었다. 

그럼에도 오늘 나는 무너지고 말았다. 죽고 싶다고 말하지만, 내 인생이 끝나버리길 바란다고 말하지만 나는 역설적이게도 누구보다도 살아보고 싶어서 발버둥 친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나의 모습이 되기 위해서. 그게 너무 마음이 아프다. 나는 이미 최선을 다하는 것 같은데 더 이상 내가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감정들이 나를 너무너무 힘들게 한다. 죽고 싶지 않아서 불안하고 무서운 나는 오늘도 불안하고 무서워서 죽어버리고 싶다. 그리고 동시에 정말 모든 것에 벗어나 온전히 숨쉬고 싶다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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