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탕자-
집을 나오면서 나는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집이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지원책은 전혀 없어 보였다. 언제나 삭막했고 부담스러운 집 안 공기는 불편하고 불안했다. 저녁마다 그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심란했다. 마치 어려운 수학 문제 앞에 서는 일처럼 느껴졌다. 내가 절대 풀 수 없을 것 같아서 절망했다. 나는 집에 거짓말로 돈과 시간 사용처를 증명했다. 물론 나의 거짓말은 어설펐고 멍청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청소년기 이후 내가 집에 속마음을 진실하게 말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주로 침묵과 침울과 분노의 소리들이 내 마음을 공격했다. 나는 막아낼 수가 없어 점령된 채 삶을 이어왔다. 매일 겪어야 하는 불안함과 쓸쓸함이 나를 왜소증이 걸린 사람처럼 살게 했다. 그런 집을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았고 최대한 천천히 귀가했다. 나에게 집은 더 이상 집이 아니었다. 나는 신과 함께 할 수 있는 교회에서 살고 싶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나의 가족이라 믿었다. 피로 얽힌 육신의 집은 내가 제일 먼저 버리고 떨쳐내 버려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신이 베드로에게 명한대로 말이다. 제자가 되기 위한 요건 중 하나인 셈이다. 나는 흔쾌히 용납할 수 있는 당연한 조건이라 생각했다. 나의 가출은 신이 원하고 바라는 일이라 확신했으니까. 분명 신은 기뻐하실 일이라 여겼다. 신 또한 나에게 그렇게 응답한 것 같았다. 벌써 제자가 된 것처럼 굴었으니까 착각과 현실을 구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현실은 역시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나는 망상과 착각으로 나 자신을 즐겁게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드디어 신의 품에 안겼다. 신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식인 내가 세상에서 모든 것을 털린 후 아버지 집으로 들어온 것이다. 아버지는 돌아온 탕자를 위해 잔치를 베풀어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좋은 옷을 입히고 음식을 먹이고 편안한 안식과 생활들로 채워준다. 아마 나는 그것들을 신에게 기대했을 것이다. 신은 내 결행을 칭찬하고 기뻐하실 테니 나는 탕자처럼 유명해지고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을 매일 입고 먹으면서 여유로운 삶을 꿈꿔왔다. 신은 나에게 약속을 해 준 것과 다름없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탕자가 됐지만 설레고 기분 좋았다. 주인공이 된 나는 신의 집에서 큰소리치면서 교만하게 생활했다. 능력과 권세가 집중된 것처럼 버릇없이 말하고 예의 없이 행동했다. 문제 될 것 없다고 생각했다. 점점 나는 타락했다. 신에 대한 사랑과 믿음은 변질됐고 감사와 기쁨은 바닥났다. 신은 나를 방치했고 버려두었다. 신은 나에게 어떤 대화도 시도하지 않았다. 내 곁에 머무르지 않았다. 신은 멀리 가버린 것 같았다.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 품에는 칼이 숨겨져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