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타-
나에게 진정한 엄마는 없었다. 신이 의도한 효과를 위해서 나에게 붙여 놓은 장치였는지는 알 수 없다. 만약 신이 인간에 대한 부정적 삶의 사례를 노렸다면 성공한 셈이다. 나에게는 외롭고 불안했던 인생이 가중되고 확장된 것만 같으니까. 나에게는 그토록 소홀했던 시스템이 정작 자신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정 과정에 심혈을 기울 작동 시켰다. 희생은 말할 것도 없고 지혜롭고 아름다운 어머니를 붙여 놓았기 때문이다. 불완전하고 불행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필수템이 <엄마>인 것을 알았을 테니까. 나는 그런 엄마가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 예수의 생애를 부활까지 마칠 수 있도록 버팀목이 돼 준 마리아 같은 엄마 말이다. 모진 고문으로 피투성이가 됐지만 자신의 믿음과 사명감은 온전하게 지켜 내 준 흔들림 없었던 엄마 말이다. 나에게도 꼭 필요했었는데 신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나는 무척이나 애를 먹었다. 불안과 두려움은 늘 내 눈앞을 가리고 길을 나서지 못하도록 막아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원하는 혹은 하려는 행동은 반사회적 의도가 있기 때문에 통제받아야 한다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들이 내 인생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정당성을 부여한 셈이 돼 버렸다. 나의 엄마는 기꺼이 동조했다. 불안하기만 한 엄마의 울타리 안에서 나는 살아가야만 했다. 내가 원하는 뜻을 세우고 노력하고 성취해 나아가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시키는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었던 것 같다. 자신감 없는 나에게 엄마는 격려와 전환보다는 고민과 걱정을 제공했다. 점점 거세게 다가오는 삶에 단편적이고 어리석은 생각으로 반응하는 것이 전부가 돼버렸다. 선뜻 행동에 나서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엄마의 터 안에서 수동형 인간으로 살아온 퇴적물이 수십 년째 쌓여 있는 결과물일 것이다. 성처럼 단단하게 쌓인 것을 무너뜨릴 수도 없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도 늪과 같은 끔찍한 공포의 굴레처럼 작동하는 삶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삶이 무한 반복될 테니까 말이다. 나의 엄마는 굴레를 굴리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전혀 나를 고려하지 않은 그녀의 존재가 불쾌하다. 물론 나는 예수는 아니다. 그렇지만 나를 위한 마리아는 준비됐어야 했다. 생각해 보면 신이 내게 짝지어 준 엄마는 형식적인 것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내 의지와 의도는 전혀 상관없이 신이 정해 놓은 순서에 맞춘 것으로 해석하자면 그렇다. 그렇다고 한다면 신은 나에게 절대적으로 무관심한 상태이다. 어떤 형식과 내용을 갖춰 살아간다 해도 신은 관여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나는 지금 예수의 죽음 이후를 맞이한 것과 같다. 마리아가 엄마 자격을 잃은 후처럼 나도 엄마 품에서 내려와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