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와 만나-
사실 나는 어떤 식이 됐든 짧은 삶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나 자신에게는 꼭 필요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범위 안에서는 그렇다. 가까운 이유를 들자면 생계를 위한답시고 불행하기만 한 직업을 전전하는 것이 괴롭다. 그런 데다가 마음먹은 대로 될 리 없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고민하고 걱정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부딪힐 삶의 턱을 넘어 설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신을 찾았던 가장 큰 이유가 되기도 한다. 게다가 나는 무능한 데다 불성실하고 도전과 모험에 매우 취약한 성향을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불평과 불만이 자연스레 나를 점령한 상태이다. 점입가경. 나는 적군과 싸워 볼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적이 흔드는 나뭇잎 소리에 놀라서 겁을 잔뜩 집어 먹고 후다닥 후퇴하고 있는 느낌으로 매일을 견디고 있다. 그나마 내게 희망이 있다면 신이 보여줬던 기적 같은 해결 능력이다. 바짝 뒤쫓아 오는 적군들 보란 듯이 바닷길을 열어 주었고 사막에서 매일 떨어뜨려 준 만나는 그야말로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내 불안과 꼭 닮았으니까. 고단했던 삶을 보상받고 싶었으니까. 그것은 내가 선택한 것들은 모두 나에게 맞춰져 있어야 함을 의미했다. 나는 전혀 변화할 생각이 없으면서 신마저도 내게 맞는 시스템을 갖추라 명하고 있는 셈이다. 철저한 권위주의적 입장에 맞춰진 진부한 사고방식일 뿐이다. 또한 성장과 발전의 기회를 차단하고 오로지 명령과 복종으로 채워진 부끄러운 삶이다. 나는 신에게 삶에 대한 학대를 희망하고 있는 것과 같다. 나는 여전히 손발이 묶여 있는 상태이고 신 뜻대로 끌고 다닐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그것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적으로 인식해서 행동하게 만들고 생계마저 위협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신이 그토록 주장하는 능동적이고 독립적인 삶과는 상반된 모순이다. 어쩌면 현재 나는 신에게 세게 얻어터진 후 트라우마를 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중 내 삶을 민주주의에 적응시키지 못하고 있는 후유증이 가장 크다. 여전히 독재의 힘이 나를 선택해 주길 바라고 있고 그 능력 안에서 혜택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싶어 하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 삶이 아닐뿐더러 옳은 삶이 될 수 없다. 모름지기 삶이라 명명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뜻을 위해 노력하고 애써 온 여정은 있어야 할 것이다. 기적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은 삶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매일 홍해를 건너고 만나로 배를 채울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