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게 폭삭 속았수다>

-십일조와 십계명-

by avivaya

신을 믿게 되면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이 생겼다. 신에게 그것이 굳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최우선 과제였다. 가끔 과제를 해내지 못했을 때는 마치 중죄를 저지른 수도사처럼 굴었다. 신에게 버림받을까 두려워 떨었다. 눈물 속 회개는 물론이고 아주 오래전에 했던 죄에 대해서는 금식이나 공개 비판 등의 응답받은 방법으로 스스로에게 벌도 주었다. 신의 통제와 억압이 일상화되었다. 그리고 신은 모든 것을 주관하고 관할하고 있기 때문에 내 생각과 행동은 부자연스러웠다. 멀쩡한 소지품들을 버리거나 갑자기 생각난 듯이 의류 혹은 신발 등을 가져다가 모양을 변형시키기도 했다. 어떤 주술적 의미가 있는 것처럼 의식을 치르듯이 나는 진지하고 심각하게 작업했다. 지금 와 돌아보면 나는 현실적 감각은 물론이고 내 만족감이라는 기본적 욕구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일상과 관계 속에서 마땅히 느끼고 반응하고 예의가 필요한 언행에 무감각했고 무지했다. 오히려 웃어른들을 향해 날 선 비판을 서슴지 않고 지껄였다. 그리고 마치 신에 빙의된 듯이 그들의 모든 죄를 알고 있고 선택적으로 용서하겠다고도 했다. 선무당이 하는 짓에 교인들은 일희일비했었다. 앞으로 나는 신의 율법을 주관하고 사람들을 지도해야 하는 위치에 오를 예정이기 때문에 당연하다 여겼다. 그리고 신에게 허락받은 정당한 권위였기 때문에 나는 거리낌이 없었다. 신이라는 절대 권력자와 나의 특별환 관계를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신은 그런 내 모습을 칭찬해야 마땅했다. 당연히 보상 시스템이 작동할 것이라 예상했다. 나는 신의 율법을 가꾸기 위해 물을 주었고 가지를 쳐냈고 영양분을 주며 보기 좋게 키워냈기 때문이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철저히 수직적 관계에서 비롯된 그릇된 사고방식이었다. 계급화된 시선을 유감없이 발현했다. 그것은 통제와 지시에 길들여져 있고 그로 인해 소외된 감정이 합리적 명분을 찾아낸 것이다. 그 덕에 나는 기댈 상대를 물색했고 복종을 했고 복종을 요구했다. 신의 통치 체계와 정확히 일치한 셈이다. 나는 기꺼이 신과 함께 했다. 그런데 나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나아가지 못했다. 오히려 두려움과 공포는 더 자주 더 거세게 들이닥쳤다. 죄책감의 속도는 늘 과속 상태였고 신은 해명하지 않았다. 나 또한 신과 맺은 협약을 외면했고 지키지 않았다. 지킬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삶은 똑같았다. 더 이상 신의 법칙은 나에게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다. 마치 부활하지 못하고 있는 죽어 있는 예수처럼 말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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