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예수가 살던 시절에도 부자들은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캐릭터였던 것 같다. 신이 그들을 자주 꾸짖고 천국 입성에 어려움을 언급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없는 사람들은 선하고 따듯하고 다정한 이미지로 포장해서 보여준다. 주로 그들은 예수에게 순종하고 자신의 것들을 아낌없이 바치기 때문이다. 예수는 그들을 칭찬하고 치유한다. 부자들은 모든 재산을 내놓지 않는 이상 예수 눈길을 끌 수 없었다. 그리고 예수는 제자들에게 빈털터리를 요구했다. 몸도 마음도 텅 빈 상태로 따르라고 명령했다. 물질과 예수의 관계에 대해 설명해 주는 셈이다. 공존할 수 없다는 당위적 의미일 것이다. 그런 뜻에서 없다는 것은 곧 선함과 통할 수 있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신은 악할 수 없고 물질은 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은 축복을 자주 언급한다. 그 속뜻은 우리의 물질 바구니를 채워 주겠다는 신의 의지가 담겨있다. 그래서 나도 큰 기대에 부풀었었다. 나에게 요구한 조건을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신에 반하는 모든 것들과 절연했고 차단했다. 남루하고 누추한 삶이 반전될 것이라 굳게 믿었다. 세상을 이겨먹었다는 신의 슬로건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후퇴했고 뒤쳐졌다. 갈수록 신은 더 많은 부분을 요구하고 나섰다. 뻔뻔스럽게도 나의 빈 곳간에 내려앉은 먼지까지도 빼앗아갔다. 마치 고리대금업자처럼 매번 꼬박꼬박 챙겨가는 것만 같았다. 그에 비해 내게 떨어지는 것은 겨자씨 한 알 같았다. 그것을 믿음이 되도록 연단하면 산을 옮기는 요술을 부리게 될 것이라 위로했다. 그마저도 나에게 강요하고 압박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신은 내 능력 밖에 있는 성공을 원했고 비자발적이고 순리에 어긋나는 이별을 당연시하였다. 그것으로 인해 내게 닥쳐올 고문 같은 고통과 공포는 신에 대한 충성이 될 거라고 웃어넘겼다. 감사와 기쁨의 순간이 되지 않는다면 순전히 내 탓이었다. 나에게 있는 욕심과 교만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나에 대한 경계성 눈초리와 목소리들이 커졌고 나는 겁이 잔뜩 났었다. 억울했지만 해명할 수도 없었다. 발언 기회조차 얻지 못했으니까. 그 시절에 나는 신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벌도 받아야 했다. 나의 젊음과 맛과 멋과 행복을 전부 잃었다. 물론 나의 몰염치함과 무지함 때문에 새겨진 주홍글씨라 생각한다. 그러나 신은 나에게 무례했고 비겁했다. 무소불위의 입김으로 내 삶을 날려 버렸다. 나는 죄인 취급을 당했고 삶의 터전을 잃었다. 그 덕에 내 눈은 밝아졌다. 신과 가이사는 같다. 그리고 신은 지금부터 내 삶에서 손을 씻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