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을 빈다-
‘ 이 사건을 단순한 산업재해로만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이 죽음은 우연이 아니라 구조의 결과다. 더 정확히 말하면, 생명보다 효율과 이윤을 우선시하는 구조, 그리고 현실을 오랫동안 용인해 온 사회가 만들어낸 죽음이다. (중략) 우리는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러나 그 애도는 말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컨베이어 벨트는 멈췄어야 했다. 그리고 이제는, 이 죽음을 가능하게 만든 구조가 멈춰야 한다.’ (한겨레 2026-3/24, 25p, 김주찬-컨베이어 벨트는 멈췄어야 했다-)
베트남 이주 노동자 ‘응웬 반 뚜안’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고통 속에 숨이 멎었을 죽음은 어쩌면 범죄일 수 있다. 죽음에 이르도록 직접적인 위협을 가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 가능성은 충분하다. 필요한 증거들도 많을 것이다. 평소에도 위험천만한 일거리들은 늘 그를 압박했을 것이다. 적절한 설명이나 안내는 그의 일자리와 맞바꿔야 할 중대 결격 사유와 같다. 그는 군말 없이 시키는 대로 줄을 타며 아슬아슬하게 살아왔던 것이다. 이번 사건이 아니었더라도 속된 말로 그는 오늘내일하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어린아이만큼이나 약한 그의 죽음 앞에 무릎 꿇어야 한다. 이주 노동자들은 우리의 손길 없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시스템이라는 장막 뒤에 숨어 함부로 칼을 휘두르고 있다. 그 칼을 피하지 못한 ‘어린아이 같은 그‘ 는 깊이 찔렸고 목숨이 끊어졌다. 우리는 그의 죽음에 무거운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사과와 반성은 같은 범죄를 다시 하겠다는 의미와 같다. 우리는 이미 전과 전력이 여러 번 있다. 그만큼 범죄 유혹은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눈길조차 주지 못 하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그래서 사회적 윤리와 도덕이 자연스럽게 통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덕분에 우리 사회가 반드시 이번 일과 같은 범죄에서 손을 씻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우리도 언제든지 ‘뚜안‘이 될 수 있다는 겻을 명심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