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나는 어쩔 수 없었다. 신내림이 필요했다. 나를 강압적으로 세게 이끌어 줄 내림굿 혹은 신어머니 같은 존재 말이다. 그것 없이 나의 불안을 감당해 내는 것이 무척 어려웠으니까 말이다. 나는 매 순간 그리고 각종 상황에서 떨고 긴장했다. 나에게 주름 없는 공간은 전혀 없었다. 장소를 불문하고 누구와도 나는 대등한 편안함 보다는 부등호 그려 넣기에 바빴다. 한참 어린 친구들 틈에서도 뾰족한 쪽은 내게로 향해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와 돌아보면 내가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지지대 두께나 높이가 기준보다 한참 부족했고 왜소한 상태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열등감과 불안함의 압박 붕대로 내 머리부터 발 끝까지 휘감아 놓고 있는 것과 흡사했다. 그 더분에 나는 내 삶에서 아웃사이더로밖에 존재할 수 없었다. 사소한 대답 혹은 손가락 움직임마저도 망설였고 그마저도 타인에게 이끌려 선택했다. 나는 그 절대적 열등감의 이유를 알지 못한다. 태초부터 그랬었던 것 같다. 내가 하는 노력은 늘 헛된 것만 같았고 쓸모없는 머리끈 같았다. 묶을만한 머리카락이 없고 조각 난 상태에 있는 머리끈 말이다. 머리끈 주인인 나조차도 신경 쓰지 않았던 삶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채로 살았다. 사람들 발에 밟히고 차이며 나는 삶의 과정과 기능을 상실한 기분만을 느꼈다. 만족감과 성취감이 전무한 상태. 기본적인 상상력마저 나에게 정착하지 못한 상태. 나는 누군가가 주워서 버려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내 삶은 과정과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었다. 권태로운 삶이 신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본능적으로 살아 있고 싶었을 테니까 말이다. 심지어 나를 위한 엄청난 역사와 계획이 준비돼 있다는 소식은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처럼 거대한 운명의 서사시 같았다. 오랜 시간 나는 나에 대한 연민의 감정에 빠져 있었는데 때마침 신은 맞춤 계획을 발표한 셈이었다. 변할 수 없는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완벽한 계시가 나를 위로했다. 신도 나만큼 나의 인생이 안타깝고 미안했던 것이 분명하다 믿었다. 그리고 나는 신의 선택을 받은 만큼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며 기적과 같은 일을 만들어낼 것만 같았다. 지금껏 기적은 맛본 경험이 전혀 없으니 최소한 내가 믿어왔던 신은 자격이 없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를 받아 줄 세계가 사라져 버린 것에서 나는 예수를 직접 만나지 못해 낫지 못했을 것만 같은 다수의 병자들을 떠올린다. 그들은 신을 절대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친한 벗과 같은 존재일 수도 있다. 서로를 긍휼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누군가 혹은 그 무엇이 신일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