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 미안해 여보
남편과 아이들까지 남자 셋이 곤히 잠든 새벽 다섯 시 반. 누구라도 깰까 봐 울리는 휴대전화 알람을 서둘러 꺼버린다. 아무도 깨우지 않고 나 홀로 새벽 달리기를 나가기 위한 작전이 시작된다. 작전명은 ‘모두가 잠든 새벽 달리기’. 행동은 군더더기 없이 신속해야 한다.
일단 이를 닦고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른다. 진작에 얼굴을 점령해 버린 주근깨는 요리할 때 쓰면 딱 좋으련만 기어코 눈 밑에 붙어 떨어질 생각이 없다. 운동복은 변함없이 검은색으로 통일한다. 큰 아이와 마주쳤다면 ‘도둑’ 같다며 놀렸을 것이다. 만화영화 속의 도둑들이 검은 옷을 입은 통에 밖에서 ‘검은 사람’만 보면 도둑이라고 해서 민망했는데, 내가 영락없이 그 모양새다. 흰 양말 한 켤레를 집어 들고는 양말이라도 하얘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벌써 15분이 지났다. 발소리를 줄이며 현관문을 나선다. 나름의 엄숙한 과정을 거쳐 오늘도 새벽에 달린다.
미안하게도 잠귀가 밝은 남편은 새벽 운동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이다. 나는 잠보다 운동인데, 그는 운동보다 잠이다. 나는 충분한 운동시간이 확보돼야 하루가 행복하다면, 그는 충분한 숙면 시간이 확보돼야 하루를 살아간다. 내가 새벽에 달리면 그는 두통에 시달린다. 1시간 달리기가 남편을 24시간 힘들게 하는 꼴이다.
그의 아침잠을 지켜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일단 남편이 뒤척거리는 순간들을 확인하고 대안을 떠올려 보았다.
첫째. 시끄러운 알람 소리. 알람이 울린 지 정확히 2초 만에 껐지만 이미 그는 꿈틀댄다. 알람 없이도 다섯 시 반 이전에 일어나야 하는데 아무리 아침형 인간이라도 그 시간은 무리다. 다른 방에서 자야 하나? 방이 총 세 개인데, 각 방에서는 남자 1, 2, 3이 자고 있다. 아이들의 수면을 방해하는 것보다는 이미 성장판이 닫힌 남편과 자는 게 우리 가족의 평균 신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낫다.
둘째. 사부작거리며 옷 갈아입는 소리. 미리 내일 입을 운동복을 꺼내 거실에서 갈아입으면 간단히 해결된다. 하지만 게으른 아내는 전날 운동복을 미리 챙겨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게으름만 이겨내면 해결될 문제다.
셋째. 화장실의 환한 불빛. 화장실의 조명 중 어두운 쪽을 켜봤지만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이를 안 닦고 달릴 수는 없다. 달리던 중 근처에 누가 있다고 잠깐이라도 숨을 참다가는 호흡곤란이 올 것이다. 휴대전화 불빛에만 의지하여 이를 닦다가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그 불빛에 남편이 ‘눈뽕’을 당해 완전히 깨버린 적도 있다. 안방 대신 거실 화장실에서 닦는 것이 대안이다. 청소할 때면 ‘화장실이 쓸데없이 왜 두 개일까?’ 하다가도 이럴 때는 두 개인 것이 반갑다.
별거 없는 대책 때문인지, 둘 중 한 명은 꼭 깨서 엄마를 맞이해 주는 감격의 모자상봉 때문인지 새벽에 달리는 날이면 남편은 평소보다 피곤해한다. 팔뚝으로 두 눈을 가린 채 잠들어 있는 그를 안쓰럽게 바라본다.
미안한 눈길을 거둔 채 씻기 위해 화장실로 향한다. 시끄러운 물줄기 소리와 소란스러운 헤어드라이어 소리까지 뚫고 나면 남편이 퉁퉁 부은 얼굴로 일어난다. ‘남편도 달리기 마사지 한번 받으면 좋을 텐데’ 새벽 달리기 때문에 피곤한 남편에게 새벽에 달려보라고 권유할 만큼 염치없는 아내는 아니므로 저 말은 속으로 꿀꺽 삼킨다.
염치 있다는 이 아내는 '염치 불고하고' 내일도, 며칠 후에도 새벽에 나가서 달릴 것이다. 겸연쩍은 마음에 남편에게 진심을 담아 한 마디 건넬 뿐이다. “여보~ 피곤하지.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