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기분은 늙지 않았다

프롤로그: 달리기 전 몸 풀 듯 글쓰기 전 나를 풀어내기

by 기리달

"따르르르" 전화가 울린다. "감사합니다. OO부서 OO팀 OOO입니다." 휴직하기 전, 직장을 다녔을 때 사용했던 평범하고 진부한 내 전화 인사말이다. "저 말을 마지막으로 뱉은 게 언제더라." 아이 둘을 세 살 터울로 기르며 육아휴직의 연장을 거듭하다 보니 휴직 기간은 4년을 꽉 채웠다. 일을 했던 과거가 전래동화 속 옛날이야기처럼 까마득하다. 그런데 둘째 아이의 어린이집 입학이 예정되면서 휴직을 연장할 명분이 사라졌다. 동시에 더는 미룰 수도 없이 복직은 정해졌다.


복직 D-365일. 1년이면 뭘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행여 뭘 못하더라도 뭐든 시작하고 싶었다. 상상만으로도 속이 시끄러운 워킹맘의 세계는 뒤로 하고 나에게 집중했다. 아주 오랜만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후 간절했던 건 ‘시간’이었다. 노동은 고되나 성취감은 딱히 느끼기 어려운 ‘끝이 없는 육아’에서 잠시 벗어나 오로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들이 어려 하루에도 수백 번 엄마를 찾는 통에 뭔가를 하는 게 어려웠다. 종종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자유 시간을 가졌지만 그건 그때뿐이었다.


아이들과 항상 붙어서 맛있게 지지고 볶던 시기를 지나, 둘째 아이의 수면 패턴이 잡히고 나자 모두가 잠든 새벽이나 밤에 약간의 여유가 생긴 터였다. ‘애타게 바라던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나를 위해 ‘끝이 있는 달리기’를 시작하자.


학창 시절의 유일한 취미는 운동이었고, 그중에 특히 달리는 걸 좋아했다. 식단표에 있는 ‘돈가스’에 노란 형광펜으로 밑줄을 치고, 수업 시간표에는 ‘체육’ 수업에 빨간 동그라미를 쳤더랬다. 일 년 중 손꼽아 기다린 날은 운동회와 체력장이었다. 종일 달려도 힘들지 않았고 더 달리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앞만 보고 내달리는 짧은 그 순간에 다가오는 모든 것이 반가웠다. 움직이는 몸에 ‘집중’하고, 잡념 하나 비집고 들어올 틈 없이 ‘몰입’하며, 선을 밟고 완주하는 ‘성취감’까지.


사춘기 때도 여전히 달렸다. 뜬금없이 눈물이 나고 기분이 오락가락했던 시절, 원인도 없이 쌓인 짜증을 풀기 위해 밤마다 종종 뛰쳐나갔다. 그때 내 곁을 함께 해준 건 엄마였다. 엄마는 그런 딸이 안쓰러웠는지 밤마다 산책로에서 같이 달리거나 축구, 농구, 줄넘기 등 이런저런 운동을 함께 해주셨다. 요즘 왜 힘든지, 고민은 무엇인지 등 별다른 질문은 없으셨다. 아마 사춘기 딸에게 속 시원한 답을 듣기 어려울 거라고 짐작하지 않으셨을까. 행여 물어봤을지라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홀로 견디기에 괜히 고달팠던 시기를 ‘엄마’ 그리고 ‘운동’ 덕분에 별 탈 없이 흘려보냈다.


성인이 된 이후로 달리는 행위는 멈춰버렸다. 교실 안 학생이 교실 밖으로 나오니, 달리기 말고도 세상과 마주하는 모든 게 흥미로워서였을까. 대외적으로는 취미가 달리기라고 하면서도 도통 뛰지를 않았다. 학생 때 야금야금 붙은 살을 빼느라 운동은 꾸준히 했지만, 왠지 달리려고 하면 부담스러웠다.


내내 멈춰 있던 달리기가 30대 중반이 되어 급작스럽게 시작되었다. 너무 오래되어 ‘다시’ 보다는 ‘처음’이 어울릴만한 첫 달리기는 처참했다. 예전의 나를 떠올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달렸는데 ‘예전’이 거의 20년 전이라는 게 문제였다. 숨은 정수리까지 차오르고 심장은 요동치다 못해 뛰는 내내 아팠다. 덜컥 겁이 났다. 지난 건강검진 결과지의 ‘부정맥’이란 세 글자가 거슬렸다. 5분 남짓 뛰어놓고 머리로는 이미 대학병원 흉부외과를 찾아가 의사에게서 ‘앞으로 평생 달리기는 하지 마세요.’라는 듣기 싫은 말까지 들어버렸다. 맥이 빠지고 풀이 죽어 첫날은 30분도 못 채우고 걷다가 끝이 났다.


혹시 모른다는 심정으로 다음 날도 달렸다. 10대 때 내달렸던 기억이 30대의 곤히 잠든 달리기 세포를 깨워주길 바라면서. 날씨가 궂으면 실내 헬스장에서, 맑으면 야외에서 뛰었다. 달리는 횟수가 누적될수록 달리며 감당할 수 있는 시간도, 거리도 늘어갔다.


30대 애엄마의 현실은 ‘체력 부족, 시간 부족, 자금 부족’이다. 지금이 원시 사회도 아닌데 ‘부족’ 투성이다.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지만 어떻게든 뛸 자투리 시간을 만들고, 때로는 잠을 줄여가며, 단벌 신사로 나름대로 뛰고 있다. 뛰다 보니 거창하게 달리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다. 주어진 현실에서 즐기며 달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하다.


달리는 몸은 변했을지라도 달리는 기분은 늙지 않나 보다. 학창 시절이나 엄마가 된 지금이나 오로지 내게 집중하는 그 시간이 행복하다. 한발 한발 내디디며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하루를 힘차게 보낼 힘을 채워나간다. 방전된 나를 충전하고, 그 배터리로 가족들을 돌보고 자신을 살핀다.


‘내일은 또 어디를 뛰어볼까’ 생각하며 잠이 드는 요즘의 내가 꽤 마음에 든다. 딸을 위해 밤마다 달려준 엄마처럼 나도 나와 아이들을 위해 계속 달릴 것이다. ‘자, 날씨도 좋은데 오늘도 달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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