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도대체 어디 갔다 왔어?

미안하고 또 미안한 달리기

by 기리달

잠들기 전 내일 새벽 달리기를 위한 사전 작업을 시작한다. 알람은 출발 20분 전인 새벽 5시 20분으로 맞추고, 내일의 날씨와 미세먼지를 확인한다. ‘미세먼지 보통, 온도 12도’ 이제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머릿속으로 옷장 안을 훑어본다. 옷장 속은 이미 검은 운동복들로 점령당했지만, 하늘 하래 같은 검은색은 없으므로 어떤 검은색을 입을지 짧게 고민한다.


위로는 ‘남색이 섞인 검은 반팔 상의’에 ‘살이 비치는 얇은 연두색 바람막이’를 걸치고, 아래로는 ‘검은 바지’를 입기로 한다. 어제도, 엊그저께도, 일주일 전에도 달릴 때 입었던 애착 운동복이다.(하원할 때도, 병원 갈 때도, 아무 때나 즐겨 입는다.) 이제 새벽 달리기에 가장 중요한 마지막 요인이 남았다.


'아이들을 깨우지 않고 탈출하는 것'


아이들이 잠에서 깨면 엄마의 새벽 달리기도 깨진다. 어느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고요하게 밖으로 스르륵 빠져나가야 한다. 새벽 달리기가 무산되는 날은 ‘그럼 언제 달리지?’라는 생각에 종일 머릿속이 시끄럽다. 달리기로 마음먹은 날은 달려야 직성이 풀리는데 그러지 못한 날은 땀범벅에 씻지 못한 몰골로 중요한 사람을 만나는 기분이랄까. 그만큼 찝찝하다.


다행히 개운하게 산책로를 달리고 온 어느 아침, 현관문을 지나 중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제일 먼저 보이는 큰아이 방에 불이 켜져 있다. ‘아뿔싸. 아이가 일어나던 뭔 일이 일어나던 일어났구나.’ 현관에서 거실로 향하는 찰나의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몇 시에 일어났지? 한참 전에 일어났을까? 놀고 있을까, 아님 자고 있을까? 엄마가 사라져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거 아냐? 얘는 어디 있지?’


그 순간, 안방 침대 속 아빠 옆에 붙어 애착이불을 꼭 끌어안고 있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 도대체 어디 갔다 왔어?”

“엄마? 달리기 하고 왔지.”


‘일찍 깼는데 엄마가 없어 무섭거나 혹은 심심하진 않았을지, 뭘 못 먹어 배고프진 않았을지.’ 달리는 동안 잊고 있었던 ‘엄마’의 신분으로 급히 돌아와 안쓰러운 마음으로 아이를 살폈다. 이렇게 아이가 깨어 있는 날이면 엄마가 하고 싶은 거 한다고 아이의 아침을 불안하게 만들었을까 봐 미안한 마음이다.


황급히 손만 씻고 아이가 좋아하는 사과를 깎아 내어 주었다. 엄마를 언제부터 기다렸을지 모를 아이를 떠올리며 더는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아 땀으로 축축한 몸을 허겁지겁 씻어냈다. 고상하게 씻는 여유는 바라지 않는다. 운동이라도 여유롭게 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백 가지 이유 중 하나 때문에 잠꾸러기인 둘째 아들까지 일찍 깨는 날이 종종 있다. 산책로 대신 아파트 단지에 있는 헬스장으로 향한 날이었다. 운동화 끈을 고쳐 맨 후 러닝머신의 속도를 5로 두고 4분을 걸었다. 뛸 시간이 부족하니 몸 풀 시간도 아껴야 한다. ‘이제 좀 뛰어볼까’ 하며 속도를 8로 가속하는 순간 고요한 정적을 깨우는 전화벨이 소란스레 울렸다.


남편이다. 불길하다. 혹시 남편의 연락을 못 들을까 봐 휴대전화를 진동 대신 벨소리로 바꿔놓았던 참이었다.


여보. 무슨 일 있어?”


“둘째가 깨서 엄마를 계속 찾아. 다시 재우려 해도 계속 우네. 어쩌지.”


아내의 유일한 취미를 방해한 것만 같은 미안함과 잠에서 덜 깬 피곤함이 섞여있는 남편의 목소리에 서둘러 신발을 갈아 신고 헬스장을 뛰쳐나왔다.


러닝머신 대신 지하주차장을 질주했다. 왠지 모르게 뛰는 두 손이 허전했다. 헬스장운동화를 두고 온 것이다. 아무리 봐도 오늘 운동은 걷기 4분으로 끝날 예감인데, 신발 때문에 이따 다시 가는 건 비효율적이었다.(헬스장에 있는 사물함 신청을 하지 않아 운동화를 매일 갖고 다녀야 한다.) 당장 헬스장으로 달려가 신발을 챙겨 들고 집으로 뛰어왔다.


‘걷기 4분에 주차장 질주 2분. 총 6분. 운동 끝.’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며 보이는 광경에 먼저 웃음이 터졌다. 둘째 아이는 엄마가 온다는 소식에 울음을 그쳤는지 방긋 웃으며 아빠 등에 업혀 있고, 첫째 아이까지 잠에서 깨 아빠 배에 매달려있었다. 아빠 몸에 앞뒤로 매달린 아기원숭이와 아기캥거루를 보는 느낌이랄까. 웃고는 있지만 무척 힘겨워 보이는 남편의 표정이 눈에 들어오자 또 미안했다.


아이들을 둔 엄마가 주인공인 ‘새벽 달리기 드라마’에 막장 요소는 없다. 다만 종종 이렇게 웃픈 엔딩으로 끝날뿐이다.


이제 첫째 아이는 이른 아침에 엄마가 없으면 '달리다가 오겠거니’하며 거실에서 조용히 놀거나 안방으로 들어와 아빠 곁에서 잠이 든다. 몇 달 사이, 운동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를 보며 퉁퉁 부은 눈으로 빙긋 웃으며 맞이해 줄 만큼 커버렸다. ‘내가 이만치 뛰는 만큼 저만치 성장할 아이는 어떤 모습일까’하며 기대되는 동시에 ‘엄마를 찾는 이 시절이 영원했으면’하는 아쉬움으로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둘째도 형만큼 크면 새벽에 달리는 엄마를 울지 않고 맞이해 주려나. 상상만으로도 흐뭇하다.


그리고 남편. 아내는 행복한데 남편은 피곤한 이 껄끄러운 상황에서 남편은 앞으로 얼마나 더 아내의 달리기를 응원해 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믿는다. 내가 달리며 나를 사랑하는 모습을 우리 집 남자 셋도 사랑해 줄 것이라는 것을. 달리며 몸과 마음이 성장하는 엄마 그리고 아내를 보며 가족들도 같이 성장해 나갈 것이라는 것을.


오늘도 ‘아이들과 남편까지 손에 손잡고 같이 뛰는 우리 가족’을 상상하며 기분 좋게 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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