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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노을 Oct 13. 2023

어른 독립 선언문

일상 대여 2

 자녀가 직장을 잡아 타지에 갔다. 부부만 생활한 지 몇 달이 지났다. 부부라고는 하지만 함께 늙어가는 처지이다 보니 문명 앞에서는 그나 나나 별반 차이가 없다. 그가 모르는 것은 나도 모르고 내가 모르는 것은 그 도 잘 모른다. 아파트 비번도 생각이 안 나 몇 번이나 헛손질을 하다 보니 휴대폰 와이파이연결은 우리 세대에 오죽 어려운 것일까?


 어제저녁에는 며칠째 작동되지 않는 공유기를 고쳐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침대방에서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은 날이 여러 날 지속되고 있었다. 공유기 문제인지 휴대폰 문제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그냥저냥 버티다가 휴대폰 데이터가 무제한이 아니라는 것이 불현듯 생각났다. 요금 폭탄이 걱정되었다. 운동을 할 때  운전 중일 때 유튜브를 털어놓고 정보를 얻다 보니 주어진 데이터로 한 달을 버티기엔 힘들 것이다. 휴대폰 요금제도 휴대폰 개통 시 아들이 알려준 대로 설정해 놓은 것이라 내가 한 달에 데이터를 얼마나 쓰는지 감도 못 잡고 있었다. 남아 있는 데이터로 아직 20여 일을 더 살아야 한다. 식량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휴대폰 데이터 걱정을 하고 있으니 문명 속의 원시인이나 다름없다.

  

 불편이 머리끝까지 치솟고 아들이 올 때까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오늘에서야 해 볼 마음을 먹었다. 공유기의 전원을 껐다 다시 켜고 인터넷 선도 뺐다가 다시 꽂았다. 그러나 여전히 먹통이다. 휴대폰을 열어 설정과 도움 버튼을 눌러본다. 이해되지 않는 문구들에 짜증이 난다. 다시 유튜브 와이파이 설정 영상을 찾아본다. 여러 번 시청한 후에야 조금 이해가 간다. 대충 엇비슷하게 따라 해 보는데 비번설정에서 또다시 막힌다. 와이파이 비번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단 말인가? 공유기를 이리저리 만져 보아도 비번 같은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급기야 카톡에 글을 남긴다. 밤 12시다.

 "아들, 침대방 공유기 안됨. 와이파이 설정 비번이 뭐야?"

답장이 올 턱이 없다. 아마도 아들은 퇴근 후 이미 잠들었을 것이다. 더 이상 진전이 없는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다 잠을 청한다. 잠이 쉽게 오지 않자 또다시 유튜브를 틀어놓는다. 데이터는? 에라 모르겠다 그냥 될 대로 되라지...


 아침에 휴대폰 카톡을 열어보니 비번이 와있다. 영어로 뭐라고 적혀 있는데 추측할 수 있는 규칙이다 보니 쉽게 외워지지 않는다. 다시 설정하기엔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저녁으로 미룬다. 나 또한 출근 시간이 빠듯하기 때문이다.

 퇴근 후 휴대폰에 비번을 넣어 본다.  "인터넷 없음"이라는 메시지만 자꾸 뜬다. 원인을 잘못 알았나 보다. 비번이 문제가 아닌 듯하다. 아들에게 다시 카톡을 보낸다. 휴대폰 화면을 캡처 뜨서 카톡에 띄운다. 아들도 답답해한다.

...

 아들이 찬찬히 알려 줄 때 배우려고 하지 않고 덤성덤성 들은 것을 후회해 본다.  평생 아들이 옆에 있을 것처럼 새로운 문명을 배우지 않은 탓이다. 자녀독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른 독립이 더 시급하다. 문명사회에 살고 있지만 해마다 바뀌는 트렌드를 따라잡기가 버겁다는 이유로 어설프게 삶을 산 자신을 반성한다. 서점에는 벌써 '2024 트렌드 코리아'가 책으로 버젓이 나와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있다. 이참에 나도 어른 독립 선언문을 외쳐본다.

 "무엇이든 시도해 보라. 썸을 타듯 21세기를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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