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 3
어느 날 니나는 친구가 운영하는 당구장을 방문했다. 니나의 친구는 오빠와 함께 당구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녀의 오빠는 니나를 좋아했다. 가수 주현미를 닮았다며 자신과 사귀기를 원했다. 니나는 결혼해 아기까지 있는 오빠의 말을 농담으로 받으며 친구를 찾았다. 친구가 카운터에 없었다. 카운터에서 공을 닦고 있을 친구가 보이지 않자 니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뜻밖에도 세 번째 당구대에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아! 그런데...
그녀 옆에는 A가 있었다. A와 A의 친구들이 당구를 치고 있었고 그녀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깔깔 거리며 웃고 있었다. 니나가 가까이 가자 A는 훰짓 놀랐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왔어?"
.......
A의 불안한 태도에 니나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니나의 친구와 A가 서로 만나고 있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녀 역시 얼굴만 붉힐 뿐 아무 말 못 하고 있었다. 니나는 허탈했다. 배신감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나지막이 되뇌었다.
"둘이 사귀고 있었던 거야?" 니나를 깜 쪽같이 속이고 둘이 만나고 있다니 니나는 화가 치밀었다. 화가 나는 것도 잠시 자신이 초라하게 여겨졌다. 초라한 자신의 모습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눈물이 왈칵했다. 뒤를 돌아 흐르는 눈물을 가리고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엘리베이터도 타기 전 눈물이 흘러버렸다. 비가 내렸다. 바람도 불었다. 비 내리는 동성로 거리를 미친 듯 쏘다녔다. 몇 시간이나 걸으며 눈물을 흘렸다. 우산이 없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뜨거운 것을 차디찬 아스팔트 위 도로에 비처럼 흩뿌렸다. 그 후 니나는 일주이나 앓아누웠다. 기운을 차린 니나는 평생 동안 못 찾을 머릿속 깊은 곳에 이 사실을 숨기기로 했다. 친구에게도 A에게도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니나는 영원토록 친구와 A를 잃어버렸다.
그토록 기억하지 않기 위해 머릿속 깊은 곳에 숨겨 두었던 그때의 기억이 지금 되살아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잊고 지냈던 그때의 아픔이 몽골의 흙먼지처럼 뿌옇게 피어올라 니나의 아픈 곳을 건드렸다. 이것을 두고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하는 걸까? 니나는 몸을 비틀거렸다. 머리 위의 투명한 하늘이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미니 고비사막이 모래언덕을 만들고 있다. 사막의 끝은 하늘에 닿아 있고 투명한 하늘은 니나 외 모든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기라도 하려는 듯 푸르게 빛난다. 모래와 하늘은 한쌍의 연인처럼 아름답다. 그가 낙타에 오른다. 그는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꼬리가 긴 낙타 위에 올라섰고 니나의 친구 역시 그 옆에 있는 낙타 위에 올라탔다. 니나는 또다시 한발 늦었다. 그녀가 휘청이는 동안 기회는 깃털처럼 날아가 버렸다. 그의 옆에서 함께 낙타를 타며 걸어보리라는 기대는 몽골의 날씨처럼 어긋났다. 운명이란 이런 때를 두고 한 말일까. 순간순간 포착되는 기회는 지나가 버리면 그만이다.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9명의 낙타 선두가 결정되었고 니나는 그 선두에 들지 못했다. 그와 니나의 친구들을 포함한 9명의 낙타 무리들은 사막을 향할 준비를 마쳤다. 난생처음 타보는 낙타 위에서 그는 니나의 친구들을 향해 연신 카메라셔트를 눌렀고 니나의 친구들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앞에서 갖가지 포즈를 취했다. 그의 손은 바빴으며 능숙했고 그의 미소는 훤했다. 별것 아닌 그의 농담에도 그녀들은 가르르 웃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니나는 또다시 마음 한구석이 무너져 내렸다. 휘청거리는 몸은 이미 모래 속에 빠진 듯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두리번거렸다. 멀리 화장실이 보였다. 또다시 숨어야만 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가 화장실인 듯 니나는 화장실을 향해 냅다 뛰었다. 몽골의 조악한 화장실쯤은 문제도 아니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숨길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가고 싶었다. 니나는 알고 있었다. 아무리 강한 이성의 뇌라도 마음의 감정에게는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고비사막의 모래바람 정도는 택도 없다는 것을.
한 시간이나 그와 친구들은 고비 사막을 거닐었다. 니나는 그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멀어지자 포기를 했다. 떨림 질투 그다음의 감정이 포기인 듯 니나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또다시 그와 헤어져야 하는 것일까? 잔잔한 파도의 옆은 파도처럼 니나는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가 돌아왔을 때 니나는 이미 차 안에 있었다. 그를 보지 않는 것으로 모른 척하는 것으로 그에게서 멀어질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 것이다. 니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