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사랑

픽션 4

by 푸른 노을

#4 붉은 노을


몽골의 여름은 저녁 9시가 넘어서야 해가 진다. 서쪽인지 동쪽인지 헷갈리는 순간 하늘엔 붉은 노을이 짙어온다. 화성에서는 푸른 노을이 진다더니, 선명한 노을은 한국에서보다 더 붉게 느껴진다. 여기가 지구 안이다. 니나는 지구 안 다른 나라에서 지는 노을을 감상하며 사랑에 빠진다. 사랑은 국가를 초월하는 그 무엇이다. 화성에서의 노을처럼 색깔만 달라지지 원래 색깔은 변하지 않는다. 사랑은 우주에서 더 짙어지는 것만 같다.

니나는 노을을 좋아한다. 노을 앞에서 청혼을 한다면 니나는 단박에 오케이 할 것이다. 테리도 그것을 알고 있다. 테리는 태우인 그의 이름을 대신해 니나가 그를 향해 부르는 애칭이다.

니나는 테리를 처음 만났던 그때를 떠올린다. 니나는 그 당시에 우울증에 시달렸다.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은 우울에 빠진다고 하지만 니나는 마음이 여린 편이라 늘 우울에 시달렸다. 그를 만난 후로는 신기하게도 우울이 삭 날아가버렸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늘 허전해하고 외로워했다. 일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는 불이익들에 대해 니나는 무척 힘들어했다. 차라리 수녀가 될까, 절에라도 들어가 스님이나 될까 등 몇 번이나 고민했다. 매일밤 죽음을 그리워했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정말로 이 세상보다는 평온한 것인지 궁금해했다. 누구도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으니 니나는 그것을 알 수 없어 매번 죽음을 망설였다. 죽지 못하는 날들을 살아가며 현생의 삶에 의미를 찾지 못했다. 니나는 웃음을 잃은 지 오래되었다. 소리 내어 웃어본지가 얼마나 되는지 니나 자신도 의아해했다. 그런 날들 속에 니나는 그날 자신을 내던졌다. 노을이 끝나고 어둠이 짙어진 그날밤 차로 뛰어든 것이다. 정말로 죽으려고 차로 뛰어든 것인지, 일시적인 감정에 휩싸였는지 알 수 없지만 니나는 샐 행에 옮겼다. 니나는 모임을 하다 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끼리 정보를 주고받는 모임, 모임이라기보다 회의라는 성격이 어울리는 그런 모임에서 회의가 고조될 즈음 니나는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갔다. 니나는 알고 있었다. 정보를 주고받는 자리라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이익을 논하는 자리이며 서로를 견제하는 자리라는 것을. 니나는 가식적인 사람들의 위선에 분노를 느꼈다. 니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더 이상은 살아갈 힘이 없었다. 니나는 자리를 빠져나와 도로를 향해 뛰어들었다. '더 이상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아...'


"끼익~"

급하게 차가 멈춘다. 가로등이 희미하다. 갑자기 나타난 니나의 모습에 흰색 소나타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는다.

"아주머니! 죽고 싶어?"

남자는 놀라 창문을 열었고 니나는 자가용 앞에 넘어져 일어서지 못한다.

"죄송합니다. 저..."

"괜찮아요? 다친데 없어요? "

"네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냥 가시면 됩니다."

남자가 밖으로 나와 넘어진 니나를 일으켜 세운다. 자신이 아무리 죽으려 해도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없다는 듯 연신 미안해한다. 니나는 주저앉은 다리에 힘을 주며 일어선다. 니나가 일어서서 가려고 하자 남자가 황급히 명암을 건넨다.

"내일이라도 아프면 전화하세요. 꼭 병원 가시고요." 남자는 니나의 전화번호를 자신의 휴대폰에 저 정한다. 얼떨결에 전화번호를 주고 니나는 황급히 도로를 가로질러 건물로 사라진다.


다음날 니나의 휴대폰에 전화벨이 울린다.

"저 어제 차사고 낸 사람인데요. 몸은 괜찮으세요? 가시고 나서 지갑을 주웠습니다. 오늘 전해 드리려고요..."

"아, 예. 지갑?"

"전해 드릴게요? 어디로 가면 되죠?"

니나는 지갑 잃어 비린 것도 잊고 있었던 듯 짐짓 놀라며 고맙다며 저녁을 대접하겠다고 한다.

"저녁 7시, 안지랑 사거리 000 카페 아시죠?"

"네 , 알아요, 그럼 거기서 봬요"

그렇게 니나와 테리는 카페에서 만났다. 니나는 약간의 타박상이 있었으나 아무렇지도 않았다. 차라리 몸이라도 아파 병원에서 며칠이라도 쉬었으면 했는데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니나는 바쁜 하루를 보냈다. 지갑만 받으면 될 것을 왜 굳이 밥을 사려고 했는지 모르겠다는 듯 창밖을 본다. 늦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려는 9월의 날씨는 아직도 여름옷을 벗지 못하게 했다. 앞산 순환도로에서는 뮌헨의 거리처럼 가로등불이 빛을 발하고 있었고 서쪽에는 노을이 깔리고 있었다. 니나는 노을이 진 앞산을 가로질러 그를 만나러 갔다. 운명의 수레바퀴가 펌프질을 하려고 준비하는 노을빛인 줄 모른 체 그의 약속 장소에서 차를 멈췄다.



니나는 노을을 바라보며 테리와 함께 노을을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가 머무르는 게르를 쳐다보며 분위기를 살핀다. 그는 동료들과 캔 맥주를 마시고 있다. 간간히 웃음소리와 말소리만 들릴뿐 무슨 대화내용인지는 알 수 없다. 나지막한 그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지만 몽골의 저녁 바람은 그의 목소리를 흩는다. 그때 옆 게르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일행들과 함께 오세요. 맥주나 한잔 합시다."

니나의 마음은 또다시 일렁인다. 테리 앞에서 아무런 내색하지 않고 맥주를 마실 수 있을까?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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