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사랑

픽션 5

by 푸른 노을

#5 카페에서


니나가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앉은키가 커서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운동복 차림이었다.

"저는 라테를 미리 시켰습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네, 저는 아메리카노~"


"근데 말입니다. 그날 엄청 놀란 것 아시죠? 왜 갑자기 그러셨는지...?"

"아 예, 죄송합니다. 제가 좀 과했죠? 사실은...?"

"지갑, 여기 있습니다. 얼마나 정신이 없으시기에 지갑도 두고 그렇게 가십니까?"

"네. 제가 그날은 좀 정신이 없었습니다. 거듭 죄송합니다. 제가 저녁이라도 대접해 드려야겠네요."

"당연하죠! 밥 정도로 되겠어요? 오늘은 좀 그렇고 다음에 꼭 사세요. 킵해 두겠습니다. 그래도 다치지 않으셨다니 천만다행입니다. "


니나와 그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니나는 익숙한 사람을 만난 것처럼 큰 소리로 웃었다. 잘 보이고 싶은 가식이나 체면 같은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을 비워낸 것처럼 소리 내어 웃었다. 니나는 오히려 편안했다. 두 번 다시 볼일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니나는 모처럼 마음을 활짝 열었다. 그 역시 편안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갔고 니나 역시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낯설게 여겨졌으나 상관없다는 듯 대화에 집중했다. 테리도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거리에서 차로 뛰어든 여자라고는 믿기지 않는 듯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이어 나갔고 니나 역시 재미에 빠져 들었다. 니나와 그는 그렇게 마음이 통했다.


니나와 친구들은 옆 게르를 방문했다. 그녀들은 낮에 가이드가 일러 준 마트에서 산 맥주와 감자칩을 하나씩 손에 들었다. 빈손으로 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며 술이라도 가져가자고 누군가가 말했다. 날씨는 잠깐 흐렸다가 다시 희한하게 맑은 날씨로 변했다. 꼭 니나의 변덕스러운 마음 같았다. 밤이 되면 별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니나는 빨리 밤이 되어 별을 볼 수 있었으면 했다. 속으로는 그와 함께 별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니나가 몽골을 여행지로 택한 것도 밤하늘의 별을 보기 위함이다. 쏟아지는 별을 보며 별 헤는 밤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싶었다. 물론 테리와 함께 일거라고 상상했다. 아무리 내색하지 않는 숨은 사랑을 한다 할지라도 그 정도의 시간은 하락될 줄 알았다. 여행은 누구에게나 뜻밖의 사건들이 전개되니까 당연히 그 정도의 사랑은 허락될 줄 알았다. '오늘밤 별을 함께 보리라'는 기대를 안고 니나와 여자들은 옆집 게르를 찾았다.


그와 일행들이 머물고 있는 게르에서는 이미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빈 맥주 캔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투명한 보드카는 반이나 비워져 있었다. 남자들은 이미 몽골의 독주로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일행 중에 한 명은 '여행은 여행 그대로 즐기는 것'이라며 우리가 폐쇄적이라고 했다. 혀 꼬부라진 소리로 반복해서 뱉는 그의 말의 요지는 마음을 열어 일행들과 소통하며 여행을 즐기라는 것이었지만 우리는 각자의 생각대로 받아들였다. 니나는 '내숭을 뜨는 거야 여자들 특유의 내숭이지.'라고 생각하며 낮의 여자들의 행동을 떠올렸다.

'여자든 남자든 짝이 맞지 않으면 질투와 시기가 난무하는 법. 여자들의 본성이 그런 걸. 좀 더 기가 세거나 언변이 좋거나 미모가 뛰어나거나 젊어 보이는 쪽이 남자들 사이에서 우위를 점령하지. 여자들은 배려하는 척 서로를 견제하고 있어. 질투하는 것이지. 네 명의 남자들을 고르고 있는 거야. 그가 제일 젊어 보이고 성격 좋고 체격도 좋아 보인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야. 다들 그렇게 생각할걸?'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입이 바싹 말랐다. 니나는 술을 연거푸 두 잔이나 마셨다. 니나는 술에 약하다. 맥주 두 잔에도 취하거나 얼굴이 달아오른다. 그런데 웬일인지 술기운이 오르지 않자 니나는 보드카를 향해 맛을 보겠다며 따르라는 시늉을 한다. 그를 향해 잔을 내밀었으나 그가 머뭇거리는 순간 지구를 지키는 일을 한다는 B가 니나를 향해 술을 따른다. 하얀 보드카를 따르고는 잔을 부 닫힌다. 쓴 보드카가 혀 끝에 닿자 니나는 쓴 약을 먹는 기분이 들었다."술이라도 취한 척 그에게 애정 표현이라도 해볼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가 보드카 병을 쥐고 니나의 친구들에게 술을 따른다. 니나는 그 모습을 보자 오기가 생겼다. 그를 애써 무시한 체 다른 남자에게 잔을 권하며 말을 건다. "그래, 끝내자."...

B를 향해 "어디서 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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