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사랑#8 난생처음 연하남

숨은 사랑 픽션 8 난생처음 연하남

by 푸른 노을

난생처음 연하남


일요일 저녁 6시.

니나는 그를 만났다. 그가 니나의 집 근처로 차를 몰고 데리러 왔다. 니나는 무슨 옷을 입을까 고민하다 가장 편한 옷을 꺼내 입었다. 화려한 옷을 싫어하는 데다 옷이라고 해봐야 교복뿐이었다. 니나는 출근할 때면 정장을 주로 입었는데 정장 옷을 교복이라고 불렀다. 직업의 특성상 정장을 입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출근할 때면 늘 교복을 입었다. 니나는 정장차림의 옷을 무척이나 불편해했는데 사람들의 시선은 옷에서부터 이미지가 결정이 되니 나름 깔끔하게 입어야 한다는 직업정신에 힘입어 늘 교복 차림을 고수했다. 패션 감각이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직업을 선택해 일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냐만 니나는 직장 다니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잘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 중에 잘하는 것을 선택하라는 말을 싫어했다. 잘하는 것도 잘하고 싶은 것도 없는 현실이 가끔은 감옥처럼 느껴져 문득문득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던 참이었던 시절이라 당시의 니나는 웃음을 잃고 살아가고 있었다.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것은 좋아했지만 아이들의 부모님들을 상대하는 일은 늘 벅차다고 생각했다. 엄마들은 자신의 아이들 앞에선 또 다른 엄마의 본성을 아주 이기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남이 손해 보는 것은 당연하지만 내 아이가 손해 보는 것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도덕책이나 규율 같은 것은 이미 현실에서 효용가치를 없어졌다고 생각했다. 사거리에 서 있는 <바르게 살자>라는 돌 비석을 보고 니나는 문구를 바꾸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 남들에게 해를 입히며 살지는 말자>라든가 < 양심으로 살자>라고 도시곳곳에 적혀 있는 새마을 문구 같은 돌 표어들을 진작에 바꾸었서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니나는 가끔 회의나 행사가 없는 날은 대학생처럼 캐주얼복을 입었다. 청바지에 티셔츠 입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날은 걸음도 가볍고 기분도 좋았다. 니나는 오늘도 가장 편한 옷 캐주얼복을 입고 테리를 만났다. 화장을 하기는 하였으나 눈썹 브러시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BB크림에 콤팩트를 바르고 선물 받은 샤넬 23호 립스틱을 발랐다. 정장을 입은 니나보다 캐주얼차림의 자신이 훨씬 어려 보인다고 생각하며 가방을 멨다. 그리고는 그가 열어주는 자동차 안으로 몸을 태웠다.


그는 니나를 데리고 시외로 나갔다.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오리고깃집 식당이었다. 공기도 좋고 사람들도 많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정원이 예뻤다. 그는 맥주를 시켰다. 니나는 그가 따라주는 맥주 한잔을 들이켜며 술이 오늘따라 맛있다고 여기던 참이었다. 평상시 술을 잘 먹지 않는 니나였지만 어색한 분위기를 애써 감추려고 맥주 한잔을 마셨는데 이내 취기가 올랐다.

니나는 술에 약했다. 한잔만 마셔도 술에 취해 목덜미나 얼굴 전체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대학시절 같은 과 남학생들에게 오해를 살 정도로 얼굴이 붉어졌다. 친구들은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 것이라 여기며 술을 못 마신다고 하면 내숭 떠는 것으로 오해를 하곤 했다. 술이 달아오르자 그도 니나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는 아이 두 명을 데리고 혼자 살고 있는 이혼남이라고 했다. 니나는 조금 놀랐으나 그가 솔직하게 털어놓는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오히려 그가 편안하게 느껴지며 친구처럼 지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즈음 니나는 사는것에 의미를 잃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참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니나와 테리는 친구처럼 시작했다. 그는 유머스러웠으며 니나는 그에게 위로를 받았다. 그와 함께 있으면 항상 웃었다. 그것만으로도 니나는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느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