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 한탄
문제사안에 대한 가장 좋은 해결은 하나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흔한 태도이다. 가장 뛰어난 지성, 모든 지식과 지혜를 관장하는 자라면, 능히 하나의 대답, 해결책의 이데아를 제시하고 말 것이다. 우리의 문제해결이라는 접근은 그 이데아를 쫓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접근으로써 우리는 정치의 사안에서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라는 큰 두 개의 틀을 전제로 해왔다. 하나의 정치 사안에서 해답은 둘 중 하나거나 둘 도 아닐 것이다. 둘도 아닌 것이 해답이라는 건, 애초에 진보와 보수라는 접근틀이 틀렸음을 의미하기에, 그 틀을 받아들인 이들에게는 선택지가 둘로 좁혀진다.
그렇기에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만남은 격한 대립으로 이어지고 상대에 대한 한없는 멸시로 끝맺어지기 마련이다. 내가 옳다면, 넌 틀렸기에. 이지선다 문제에서 답은 냉혹하리만치 투명하다. 다만의 간과된 전제를 놓고 보자면, 우리는 이데아에 가닿지 못한다는 것.
애초에 내가 옳다는 확신은 어떻게 나타날 수가 있는가? 나는 분명 옳을 수도 있지만,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내 선택지는 틀릴 가능성이 더 높다. 정답은 하나고, 오답 선지는 수없이 많은데, 내가 선택한 것이 답이라는 확신이 확률의 분모만큼 불어남은 무엇에 근거할까.
이데아는 그 유일자로서의 지위를 명확히 한다. 우리는 눈멀고 다리절며 코끼리를 이해하려는 이들이기에, 내가 아무리 노력한들, 나는 한 부위의 코끼리만을 보았을 뿐이다. 나와 다른 위치에서 코끼리를 만진 이들의 의견 없이는 도저히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가, 나와 정 반대되는 것을 답으로 택한 것에는 분명 그 대조의 수준만큼의 중대한 이유가 존재한다.
코만 만지고서는 답이라 우기지 말고, 서로의 탐구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감정의 개입 없는 탐구의 수행이 지켜진다면, 결론은 하나로 좁혀질 것이다. 그렇게 절충이 있었다면, 또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찾아가, 새로운 시각을 배우려고, 다음 절충안을 만드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님 말고. 그게 그래야 하느냐하는 말과 그것이 그런지 하는 사실은 거리를 두기도 흔해, 나는 아님 말고. 감정 없는 절충의 수행이라 - 그만큼 어려운 일이 어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