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토리아 Mar 18. 2024

사하라, 야영의 밤, 투아레그  


사막에서의 야영은 꿈꾸어 왔던 낭만이었다. 그러나 낭만이란 늘 힘든 것이다. 


하루가 끝나고 1인용 텐트에 들어가 누우니 열기가 사라져 식은 모래밭에서 올라오는 찬 기운이 

뼈마디 속으로 스며들었다.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낮과 밤의 일교차가 심해 밤에는 영하로 떨어지기도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뜨거운 사막에서 

설마 하고 방심한 대가를 치른 것이다. 

텐트 밖으로 나오니 별들이 가까이 내려와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숨이 멎을 만큼 놀라운 광경이었다. 

짙은 어둠 속에 빛나는 별. 내 존재는 얼마나 낯설고 기이하고 비현실적인 것이었는지!


캠프에서는 해가 옅어지고 공기가 차가워지기 시작하면 모닥불을 피웠다.

사람들이 불가 주위로 모여들었다. 첫날은 앰프까지 갖춘 4인조 밴드의 연주가 있었다. 

작은북 ‘데브르카(debrka)’는 베르베르인들의 악기였지만 두 대의 전자 기타는 

여러 국경을 넘어온 국제적 리듬을 섞어 주었다. 


열심히 손바닥을 쳐보았지만 그렇게 따라가는 리듬이 아니었다. 투아레그족 안내인을 보았다. 

두 손바닥을 붙인 채 캐스터네츠처럼 벌렸다 닫았다 하는 것이 보였다. 

소리가 나지 않았지만 눈으로 보니 박자가 딱 맞았다. 그들이 추는 춤도 그랬다. 느긋하게 흐느적거렸다. 

 

빠르고 강렬한 정서는 진정시키고 진득하고 묵직해야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단조로운 리듬이 한동안 계속되다가 약간 빨라지며 끝났다. 클라이맥스가 그처럼 헐겁다니!


투아레그 전통 음악, 박하차 세리머니 그리고 나무를 태우고 남은 재를 덮어 구운 빵 ‘타글라(tagla)’, 

사막 생활을 보여주는 3종 세트였다. 이미 많이 거쳐 갔을 유럽인들을 위해서 개발된 관광 상품들 같았다. 

  




불가에서 무슈 타하르를 만났다.

불기가 남아 있는 숯을 따로 모아 주전자를 올려 박하 잎을 끓이고 있었다. 

흰색 터번 ‘타겔무스트(taguelmoust)’를 두르고 하늘색 ‘간두라’를 입고 있었다. 

찻물을 높게 올려 아래로 떨어지게 하면 생기는 거품을 작은 유리잔에 나누어 담고, 

거품이 어느 정도 차면 박하물을 부어 나누어 주었다. 미지근한 찻물은 아주 떫고 아주 달았다. 

차 주전자에 흰 설탕을 거꾸로 들어붓는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단맛이었다. 


키가 아주 크고 피부가 아주 진한 흑인인 그는 자신이 백 퍼센트 투아레그족이라고 소개했다. 

그렇게 몇 번이나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투아레그족의 인종적 특징은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피부색이 밝아 거의 백인에 가까운 투아레그족도 있었으니. 

어쨌든 부족의 정체성에서 피부색은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자기가 투아레그라고 하면 그런 것이지 피부색을 들먹일 일이 아니지 않은가? 

북쪽 지중해 연안부터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사람들의 피부 색깔이 점점 진해진다. 

흰색에서 점점 검게 연속체를 이룬다. 물론 여러 피부색이 공존하지만 만나는 사람들의 

전체적인 톤이 그렇게 바뀐다는 것이다. 


무슈 타하르는 박하차 유리잔을 박스에 넣어가지고 다녔다. 

저녁이 되면 박스를 펼치고 박하차 세리머니를 준비했다. 

자동차 길을 안내하고 바위그림이 있는 곳으로 관광객을 데려가는 일도 그의 임무였다. 

틈이 나면 사막이나 투아레그족에 대해서 물었다.

프랑스어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유창하고 지명을 적어주는 가지런한 글씨로 보아 

상당히 높은 수준까지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사막을 걷는 낙타와 비슷했다. 낙타가 걷듯이 느리고 진중하게 움직였다.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없이 헐겁고 느긋했으며, 배려는 조용하고 사려 깊었다. 

밤새 바람이 텐트를 흔들어 잠을 자기 힘들었던 다음 날에는 깨끗하고 두꺼운 담요를 

말없이 텐트에 넣어주기도 했고, 부실한 다리를 보고 차에 태워 높은 모래 언덕으로 

데려가 해가 지는 광경을 보게 해 주었다. 감동적이었다.







프랑스인 젊은 관광객이 그의 가족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을 들었다. 

자식이 넷에 몇 년 전 아내와 사별한 홀아비였다. 재혼을 하려면 하객에 식사를 대접할 수 있는 돈이 

필요해서 마련하는 중이라고 했다. 최소한 낙타 한 마리 값은 모아야 하는데,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아, 낙타 한 마리를 선물하고 싶어라!  


“그러니까” 소리가 들렸다. 무슈 타하르가 뜻도 모르고 하는 한국말이었다. 

귀에 또렷이 들릴 정도로 정확한 말소리에 잠시 홀려서 언제 들었냐고 묻지도 못했다. 

아마 다른 사람들과 하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우리 옆을 지나가면서 씩 웃으며 던진 한 마디였다. 

‘그러니까’는 내 머릿속에서 석양을 바라보는 그의 사진에 넣고 싶은 카피가 되었다. 

“그러니까 사하라”, 사하라를 향해 떠나는 사람들이나 사하라 여행을 마친 사람들이 이야기를 쓰고 

‘그러니까 사하라’를 카피로 붙이면 매력적인 사하라 관광 상품 포스터가 되지 않을까? 


사막을 떠나기 전 투아레그족 안내인 중 한 사람의 집에 초대받았다. 

그들의 집은 밖에서 보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포장 안 되어 먼지가 뿌옇게 일어나는 길을

다니다 보면 늘어선 집들이 모두 그 비슷하게 먼지에 덮여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흙벽으로 둘러싸인 집의 내부로 들어가면 놀랍도록 깔끔하고 넉넉하고 청결하다. 

마당에는 깨끗하고 고운 모래가 깔려 있고 낮은 탁자들 둘레에 카펫을 깔아 놓아 

사람들이 비스듬히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이야기도 하고 먹기도 할 수 있다. 

방들도 부엌도 조촐한 가구에 정갈하다.

 

알지 못하면서 막연하게 갖고 있던 생각들은 전혀 다른 현실을 자주 만난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을 갖게 한다.  

작가의 이전글 알제리 사하라 ‘그랑 쉬드’를 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