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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아 Mar 21. 2024

제국과 도시가
왜 똑같이 로마?

도시 로마를 보면 늘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제국 이름과 도시 이름이 왜 똑같이 ‘로마’인가? 



고대 로마인들에게 도시 로마는 인간이 사는 세상 전체였다. 

정복한 그 광대한 땅은 무엇인가? 사람이 사는 땅이 아니었다. 

로마인들을 먹이고 입히는 논밭이었다. 

논밭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이 있는가?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인들은 전쟁터에서 돌아오면서 

‘로마여, 영원하라’고 열광적으로 외쳤는데, 그대로 되었다. 

도시 로마의 변신술은 정말 탁월했다. 그래서 유럽인들의 말대로 "영원한 도시"가 되었다. 

   

도시 로마는 세계에서 가장 유적이 많은 도시다. 수많은 공격과 약탈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워낙 많다. 시대마다 성격과 양식이 다른 건물들을 차곡차곡 남겨 주었다. 탁월한 변신술 덕분이었다.


로마제국은 신전, 원형경기장, 노천극장, 개선문, 목욕탕, 수도교를 남겨 주었다. 

기독교의 중심지였던 중세기는 수도원, 교회, 예배당, 종탑, 기도실, 감시탑이 달린 캐슬을 남겨 주었고, 

기독교에서 벗어나 다시 태어난 르네상스 시대는 천재적인 미술가들이 남긴 천정화, 벽화, 조각으로 

장식된 성당들 그리고 귀족들이 살던 궁전과 저택들을 남겨 주었다. 

바로크 시대는 조각이 있는 분수와 광장을 남겨 주었고, 19세기 이탈리아 왕국은 정부청사, 법원 등 

근대식 공공건물을, 20세기 파시스트 정부는 현대식 공공건물들을 물려주었다. 

박물관, 갤러리, 도서관, 기록 보관소... 셀 수 없다. 교회만 900 채다. 


유적이 많은 것은 부담이다. 쓸 땅이 없다. 

3천 년의 시간이 들어차 있는 공간은 창조력을 발휘하게 해주지 않는다. 

로마제국 시대에 이미 공간이 부족했다. 너무 아까운 일이지만, 

먼저 지은 건물을 흙으로 덮거나 헐어 버리고 새로 지었다. 


콜로세움은 네로 황제가 조성한 거대한 인공호수에서 물을 빼고 그 자리에 지은 건물이다. 

카라칼라 황제의 목욕탕은 궁전과 주변 건물들의 상층부를 허물고 흙으로 덮은 뒤에 그 위에 지었다. 


지하 어느 곳에서 묻혀 있던 옛 건물이 모습을 드러낼지 모른다. 지뢰밭이다. 

2017년에도 지하철 공사를 하다가 유적이 발굴되어 작업이 끝날 때까지 공사가 중단되었다. 

로마에서 새로 건물을 지으려면 먼저 땅을 파고 유적이 없는지 증명해야 건축 허가가 나온다. 

로마 시민의 고충이다. 수고스럽지만 방법이 없다. 


유적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재활용되기도 했다. 

교황 율리오 2세는 포럼 광장에 천 년 넘게 서 있는 건물들에 주목했다. 

예수님을 알지도 못하고 죽은 이교도들이 사용한 돌을 그대로 두고 보다니! 

가져다 쓰는 것이 더 실용적이지 않은가? 

교황은 명령을 내렸다. 대리석과 석재를 가져다 성당을 짓는 데 쓰라! 

그 결과 지금 잘 보다시피 로마 포럼에는 높은기둥들만 남아 있게 되었다. 


그대로 두고 다른 재활용 방법을 찾을 수는 없었을까? 아쉬운 일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시대 지은 목욕탕 홀은 '로마국립박물관'으로 개조했다. 

냉탕 건물은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성당'으로 개조했다. 

하드리아누스의 영묘는 '산탄젤로 캐슬'이 되어 군사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렇게 재활용했더라면 19~20세기 미적 기준이 모호한 건물들을 짓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현재의 로마 시민은 로마제국 시민처럼 밀가루, 올리브유, 고기를 공짜로 먹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들만큼 질 높은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여름철에 방문하는 로마는 늘 휴일처럼 보인다. 

더위가 한숨 지나간 저녁이 되면 여기저기 있는 ‘피아차’에 모여 앉아 약한 술을 마신다. 

올리브, 생 치즈, 신선한 채소로 담백한 식생활을 즐긴다. 

잘 생긴 젊은 사람들이 과하지 않고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차림을 하고 산다. 

오래된 건물처럼 안정적이고 은근한 멋이 있다. 그들이 ‘돌체 비타’라고 부르는 순한 맛의 삶이다. 

거대한 제국을 버리고 작은 나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보여준다. 


 “모든 형태의 사회적 불행 뒤에는 오직 거대함이라는 한 가지 원인이 있다. 작은 나라에 사는 사람이 

더 행복하고 더 평화롭고 더 창조적이다.”(레오폴트 고어)


조상 로마인들의 특기였던 원칙과 질서 그리고 공공성은 별로 기억에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유감스럽기는 하다. 위생법을 지키지 않는 식당들, 만성적인 교통 체증, 좀도둑들, 거리 상인과 

그 뒤에 있는 부패한 관리들, 암표 파는 사람들은 길게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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