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여행에 가장 좋은 시기라는 3월 사하라 사막을 향해 출발했다.
긴 여정이었다. 서울을 출발해 파리를 거쳐 알제에 도착해서 하루 밤을 보내고,
알제리 국내선으로 4시간을 날아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 '쟈네트(Djanet)' 공항에 도착했다.
알제리인 친구가 소개한 투아레그족 안내인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에 두른 터번, 진한 갈색 얼굴, 덥수룩한 수염, 가죽 샌들을 신은 맨발, 바지 위로 무릎 아래까지
길게 내려오는 통 원피스 '간두라'를 입은 우람한 체격, 사진으로 보아왔던 사막 사람들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유일한 동양인을 먼저 알아보고 잘 왔다는 환영 인사를 했다. 그리고 캐리어를 번쩍 들어 공항 밖에 세워둔 픽업트럭에 실었다.
쟈네트에 들러 마른나무 가지 한 묶음과 몇 가지 물건을 싣더니 그대로 사막으로 향했다. ‘그랑 쉬드’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랑 쉬드(Grand Sud, 그랜드 사우스)’, 알제리 사람들이 사하라 사막을 부르는 단어다.
‘광활한 남쪽 땅’이라는 뜻이다. 2백만㎢에 달하는 알제리 사막 영토 전체를 말하기도 하고
사막 영토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아하가르 산맥 일대를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두 번째 뜻으로 사용한다.
그랑 쉬드의 중심 도시 중 하나인 쟈네트는 알제에서 동남으로 2,300㎞ 거리에 있는 작은 도시다. 도시 이름 '쟈네트'는 유목민 투아레그족 언어로 ‘천국’이라는 뜻이다.
사막 한가운데 기적처럼 마르지 않고 계속 솟아오르는 맑은 샘물이 있으니 ‘천국’이 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여기저기 뻗어 있는 수로를 따라 샘물을 흘려보내 감자, 토마토와 같은 야채를 기른다.
조금씩 흘러나오는 물이 얼마나 큰 일을 하는지!
강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넓은 건천을 중심으로 한편에는 대추야자 나무가 3만 여 그루 길게 심어져 있고,
반대편 높은 지대에는 집들을 촘촘하게 붙어 있는 성채-크수르(ksour)와 그 아래로 제법 넓게 퍼져 있는 시장과 건물들이 있다.
쟈네트는 투아레그족의 일파 켈 아제르(Kel Ajjer) 부족의 근거지였다.
이 용감한 부족은 프랑스가 알제리를 침공해 강점한 이후에도 거의 한 세기를 독립 상태로 남아 있었다.
사막을 건너 프랑스 군대가 내려오자 맹렬하게 맞섰지만 1923년 전투에서 패배한 후
프랑스 영토의 일부가 되었다. 알제리가 독립한 이후 타실리 은아제르(Tassili N’Ajjer) 지역이
문화공원이 되었고 쟈네트는 중심 도시가 되었다. 2만 남짓 한 주민들의 주 생계 수단은 사막 관광이다.
너무 더운 한 여름을 제외하고 일 년 내내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오는 직항 노선이
관광객을 몇 백 명씩 실어 나른다.
모래 평원이 시작되고 멀리 검은색이나 붉은색 돌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위부터 아래로 무너져 내린 것 같기도 하고 아래부터 돌을 차곡차곡 쌓은 것 같은 거대한 덩어리들은
멀리 서는 돌무더기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가보면 산들이라고 불러야 할 만큼 규모가 크다.
높이가 2천 미터가 되는 것도 있다. 수평으로 층층이 갈라져 있는 암석은 크기와 모양이 제 각각이다.
50℃까지 벌어지는 낮과 밤의 온도 차이와 심하게 부는 바람이 사암에 그렇게 균열을 만든다.
검은 돌산들이 첩첩이 둘러싸고 있는 한가운데 픽업트럭이 도착했다. 움푹 들어가 바람을 막을 수 있는 곳에 밤을 보낼 캠프가 기다리고 있었다. 모래 바닥에 주저앉으니 적막강산이다.
‘사하라’는 가슴을 뛰게 한다. 무한히 펼쳐진 공간, 작열하는 태양, 타는 듯한 열기,
그 극단성이 상상력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사하라는 인간의 뜨거운 열정에 전혀 관심이 없다.
도도하고 담백하다. 구름 한 점 없이 높고 푸른 하늘, 투명하고 청정한 공기,
한 가지 색깔로 펼쳐진 청결한 모래 평원…
우리의 오감을 공격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눈을 비비게 하지도 않고 재채기를 하게 하지도 않는다.
무공해 공간이다. 아무것도 썩지 않는다. 미생물이 없기 때문이다. 물기만 증발한다.
사막에는 새가 날지 않는다. 사막 사람들은 우연히 새를 보면 알라가 자신들을 위로하고
힘과 용기를 주려고 보냈다고 생각한다. 사방으로 무한한 시야를 어지럽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정신까지 완벽하게 무장 해제된다. 광활한 공간에는 절박함이나 긴장감이 없다.
서두를 필요도 뛸 필요도 없다. 전속력으로 뛰어 보아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모래 평원이고 여전히 멀리 있는 돌산들이다. 유일신교가 사막에서 발상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노상 손에 들고 다니는 핸드폰은 터지지 않고 스마트폰도 조용히 숨죽인다. 시간이 멈춘다.
잠시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황망함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천천히 자유와 여유가 온다.
매일 서편으로 지는 해를 어디나 같지만 지는 해가 얼마나 섬광을 빛내며 붉은 지,
어둠이 얼마나 넓고 느리게 퍼지며 내리는지 보인다. 새롭게 열린 세계 사하라에서의 첫 밤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