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없는 감옥이 지붕 없는 묘지가 되었다.”
팔레스타인 난민 지역 ‘가자(Gaza)’의 이야기다.
지중해 해안가를 따라 좁게 뻗어 있는 면적 360㎢의 땅이 거대한 감옥이 된 것은 1991년부터였다.
이스라엘은 3년에 걸쳐 육지에는 철조망과 콘크리트로 벽을 치고 바다 쪽으로는 감시선을 배치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막았다. 팔레스타인 사람 223만 명이 그 안에 갇혀 살았다.
5개 출입구를 통해 학생, 사업가, 근로자 등 소수만이 허가를 받아 드나들 수 있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전기, 식수, 식품 공급을 받았다.
하루 소비하는 칼로리 양도 정해져 있었고, 아이들 장난감도 반입하지 못했다.
그곳에 작년 10월부터 100일 간 폭탄 1만 2천 톤이 투하되어 난민 3만 1천 명이 사망했다.
절반 가까이가 어린이였는데, 인구의 절반이 18세 미만이므로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팔레스타인 측의 이스라엘 공격이었다.
10월 7일 가자 지역의 정치군사 조직 ‘하마스’가 장벽 아래 터널을 파고 빠져나와 이스라엘을 급습했다.
민간인 800명을 포함해 1,200명이 사망하고 200명이 인질로 잡혀갔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최대 희생이었다.
서유럽과 미국은 이스라엘의 보복을 지지했다.
국제사법재판소도 6개 조건을 달고 자국 국민을 죽인 적에 대한 반격은 정당하다고 인정했다.
유럽국가들과 일본도 팔레스타인 난민 기구에 대한 지원을 속속 중단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서유럽과 미국은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보복이 지나치게 가혹하고 비대칭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처럼 엄청난 집단학살을
눈 뜨고 그대로 보고 있느냐며 분개하는 언설들이 유럽 언론에서 터져 나왔고,
일부 지식인들은 일방적으로 비무장 민간인을 집단학살하는 이스라엘 수상은 전범이며
계속 자금과 무기를 대고 있는 유럽과 미국은 공범이라고 비난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도 중단을 촉구했고 최근 UN도 즉각 정전을 결의했다.
이스라엘의 논리는 이렇다. 다시는 공격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하마스 조직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야 하는데, 군인과 민간인을 분리하기 어렵고 더구나 민간인들을 방패로 삼고 있기 때문에
전 지역을 초토화시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군인과 민간인을 구별할 수 없을 때는 쏘지 않으며,
반격의 규모는 받은 피해에 비례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국제 협약을 노골적으로 위반하는 행위다.
그러나 협약 위반과 같은 무력한 항변을 운운할 수 있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무장단체 1~2천 명 정도를 소탕하기 위해 그 스무 배도 넘는 인명을 살상했다.
최고의 정확도를 자랑하는 무기들을 보유한 이스라엘 군대가 내놓는 명분으로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
일부 상황은 충격적이다. 국제기구의 구호 식량을 배급을 받으러 모인 사람들을 공격해 100명 이상을
죽게 한 사건이 UN 보고서로만 14회다. 400명이 피신해 있는 교회를 폭격해 건물과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사건도 있었다. 인구의 85%가 살던 집을 떠나 남쪽 이집트 국경으로 피난을 떠났다.
그들은 돌아갈 곳이 없다. 거주지 70%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2020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몇몇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정상화하게 했다.
이스라엘과 평화, 인정, 협상 불가 원칙을 결의했던 ‘아랍연맹’ 국가들은
미국이 제시하는 다양한 특혜를 조건으로 이스라엘을 인정하는 협상에 응했다.
바레인과 아랍에미리트는 세계은행의 대출과 무기 지원을 받기로 했고,
모로코는 서사하라에 대한 영토권 인정과 첨단 기술 이전을 받기로 했으며,
수단은 외국 투자를 받기 위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해 주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유대인 사위가 주도했던 ‘아브라함협정’이었다.
그런데 2023년 아랍세계의 주도 국가 중 하나인 사우디가 그 명단에 들어갈 수 있다는 추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첨단 무기와 민간 핵 프로그램을 살 수 있게 해 주고 군사 보호를 약속하는 등의
조건으로 이스라엘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팔레스타인? 미국은 협상안을 제시했다.
이스라엘이 원하는 땅을 모두 내어주고 남는 몇 군데 땅으로 만족하고, 군대는 보유하지 않으며,
영공권을 포기하는 등의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대단히 불리한 협상안이지만 아랍 형제국가들이
돌아서면 팔레스타인도 별 수 없이 받아들일 것이라는 것이 미국의 계산이었다.
팔레스타인은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공격으로 대응했다.
하마스 공격의 책임이 일부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있다는 주장은 그 때문이다.
아랍 국가들을 제외하고 유럽을 포함해서 세계는 이스라엘에 관대하다.
2천 년 전 살던 땅에서 쫓겨나 유랑을 떠난 이후 겪었던 많은 고통
그리고 2차 대전 동안 나치가 겪게 했던 참혹한 학살의 고통을 알고 있는 세계인들은
그들이 고향 땅으로 돌아가 편안하게 살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럽인은 대부분 유대인에게 죄의식을 갖고 있다. 독일은 1952년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고
참회의 세월을 살고 있고, 나머지 이웃 국가들도 자신들이 협력하지 않았으면
유대인이 그렇게 많이 죽지 않았을 수 있다며 미안해한다. 거의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이유다.
물론 그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2차 대전이 끝났을 때 영국은 팔레스타인 전체 인구의 10%에 불과한
유대인에게 국가를 세울 권리를 주었다. 이미 그 땅에 살고 있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힘든 일이
되겠지만 별 수 없지 않은가? 사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들의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러나 이제 유럽인들은 자문한다. 언제까지 이스라엘에 면책의 권리를 주어야 하는가?
그들은 한계를 모르지 않는가?
하마스는 사실상 이스라엘이 키운 단체였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뭉치지 못하게 하려면
여러 조직으로 분열시켜야 했고, 가장 대표성이 약한 하마스를 내세우면 협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이스라엘 안보국의 판단이었다. 하마스를 가자 지구 의회선거에 참여하게 했다.
미국과 카타르가 도와주었고 유럽연합이 선거 비용을 댔다. 그리고 하마스가 망하지 않도록
카타르로 하여금 현금을 지원하게 했다. 사실상 하마스는 투표로 승인을 받은 합법적 기구인 것이다.
이스라엘의 선택은 긴 안목에서 좋은 것이 아니었다. 하마스는 그 돈으로 무기를 사고 터널을 팠다.
그리고 이스라엘 감옥에 잡혀 있는 5천 명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군인을 생포해
인질로 잡고 협상하겠다는 작전을 세웠다. 군인만이 목표였는데, 공교롭게 공격 전 날 끝날 예정이었던
뮤직 페스티벌이 하루 더 연장되는 바람에 민간인 희생이 커졌다. 이스라엘 언론에 발표된 사실들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무장 저항을 오히려 원한다는 의혹도 있다.
국제법을 피할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도발을 내버려 두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정보국은 인공지능과 전자 도청 장치 등 최첨단 장비로 무장한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기관이다.
초보적 방식으로 기습한 하마스의 동향을 미리 알았을 가능성이 높으며, 만일 탐지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정보기관의 무능과 방심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생각한다.
10월 7일 공격이 있기 전 미국과 이집트 정보기관들도 하마스의 움직임이 위험해 보인다는 경고를
수차례 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움직이지 않았다. 가자 지구를 밀어 버리기 위해
일부러 그랬을 수도 있다는 의구심이 생기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건국한 1948년부터 팔레스타인과 15회 전쟁을 했다. 모두 이스라엘이 이겼다.
최강대국 미국과 서유럽의 지원은 절대적이었다. 이번에도 승리했다. 그러나 진정한 승리인가?
전쟁의 승리란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평화는 어디에도 없다. 이스라엘은 앞으로 안심하고 살 수 있는가?
꼭 그렇다고 볼 수 없다. 하마스를 척결하겠다는 목표는 달성했는가?
하마스 전원이 사망해 사라졌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 오히려 무차별 집단학살 때문에
하마스의 지원자는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 “하마스는 전멸시키지 못하고 가자 지구만 전멸시키고 있다”라고 한 정치학자가 탄식한다. 그러니까 세계 최강 이스라엘 군대가 자국 국민은 지키지 못하고
상대 민간인을 죽이는 데 화력을 소진하고 있는 것이다. 민간인을 죽인 하마스가 테러집단이라면, 그보다 30배 많은 민간인을 죽인 이스라엘은 테러국가다. 테러를 없앤다는 명분으로 테러를 저지르는 것이
자국민을 지키는 길이 아니다. 모든 군사 작전은 정치적 해결로 마무리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의미가 없다. 평화의 옵션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옵션이 없다.
정치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종교적 시오니즘’, 네탄야후 총리를 비롯한 이스라엘 정치권과 다수의 국민들 사이에 퍼져 있는 이념을
그렇게 부른다. 역사적으로 몇몇 유대인 사상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 개념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은 하느님이 내려 주신 그들의 땅이다. 긴 유랑을 끝내고 돌아와 나라를 세우고 평화와 행복을
가져올 메시아를 기다리게 하신 땅이다. 남에게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신성한 땅이다.
1993년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공존하기 위한 '오슬로협약'을 맺었던 베긴 수상은
이스라엘 젊은이의 총을 맞고 사망했다. 하느님이 주신 땅을 남에게 주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살해했다고
범인은 말했다. 2천 년 전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이 있었던 땅을 아직 다 회복하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평화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땅을 원한다”는 전문가의 말은 거기에 근거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어려운 것은 문제가 이처럼 종교의 차원에 속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차원이라면 타협이 가능하지만 신앙이라는 절대의 영역에 속한 문제이므로 협상이 불가능하다.
신앙은 타협할 수 없다. 2018년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입장을 더욱 강화했다.
이스라엘을 유대 민족의 국가로 규정하고 헤브라이어를 공식어 화했다.
팔레스타인 사람 즉 아랍어를 사용하는 무슬림 아랍인은 원칙적으로 살 수 없는 땅인 것이다.
이스라엘은 피난민 150만 명이 몰려 있는 가자 남부 ‘라파’ 지역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
건국 이후 36차례 그랬듯이 유엔의 정전 결의안도 거부될 가능성이 높다. 국제사회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갈증과 굶주림으로 죽지 않도록 구호품을 전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그러나 4월 2일 식량을 나누어주기 위해 가자 지구에 들어간 국제 구호단체 차량을 이스라엘 군이 공격해
호주, 영국, 폴란드인을 포함한 7명의 봉사자가 사망했다.
출처: 전문가 인터뷰: 쟝-피에르 필리우(Jean-Pierre Filiu, 중동 연구가, 시앙스포 교수), 프랑수아 뷔르가(François Burgat, 정치학자, 이슬람정치 전문가), 알렝 그레슈(Alain Gresh, 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장, 이스라엘-아랍문제 전문가), 쟈크 보(Jaques Baud, 스위스 군사전략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