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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아 Feb 08. 2024

스파르타 교육이 무엇을 남겼다고?

모든 문명의 발상지는 큰 강 유역이었다.

나일, 인더스, 황하와 같은 큰 물줄기와 한 짝을 이루며 성립했다. 


고대그리스문명은 아니었다.

넉넉하게 물을 대고 곡식을 키우게 해주는 물줄기가 없었다. 

가물면 바닥을 드러내기도 하는 개천뿐이었다. 

8할이 산들이고 게다가 높았다. 올림포스 산은 거의 3천 미터였다. 

평원이 없어 가축을 기르지 못하고, 평평한 땅이 없어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포도와 올리브만 자랐다. 


고대그리스 사람들의 평균 기대수명은 15세였다. 아직 몸이 다 자라지도 않은 나이에 죽은 것이다. 

바다에 기대 살 수밖에 없었다. 해안은 가팔라 접안이 어려운 곳이 많았지만 가까운 바다에는 

9천 개가 넘는 섬들이 흩어져 있었다. 이 섬에서 저 섬으로 노를 젓고 다니면서 장사하기 좋았다. 

무역으로 돈을 벌었다. 


지중해 해안선을 따라 농사를 지을 땅을 개발해 1천여 곳이 넘는 농업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었다. 

플라톤은 늘어선 식민지들이 마치 연못가에 둘러앉은 개구리 떼 같다고 표현했다. 

그러니까 ‘그리스’란 발칸반도에 몰려 있던 100여 개 도시국가들뿐 아니라

해안을 따라 흩어져 있던 농업 식민지를 포함한 거대 세력권을 말하는 것이었다. 


소단위 공동체들이 난립했다. 

무장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력이 있는 시민이 중심이 된 공동체들을 도시국가 ‘폴리스’라고 불렀다. 

도시가 왜 국가인가? 각기 정부와 법체계를 가지고 있었고 군대를 운영했기 때문이다. 


폴리스들은 매우 이상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서로 모여 세를 불리고 통일해 강력한 국가를 만들 생각을 하지 않고 맹렬하게 독립을 원했다. 

자유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인간의 존엄성이 거기서 온다고 믿었다. 




100여 개 폴리스 가운데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특히 강성했다. 

교역으로 번창했던 아테네는 군사력만이 아니라 문화 수준도 높았다. 

조각, 철학, 비극... 고대그리스가 남긴 문화유산은 대체로 아테네 시민들의 작품이다. 

거대한 페르시아제국의 침공을 막은 후 심리적 정신적 에너지가 충만했던 시대에 창작한 것이다. 유럽인들을 이때를 '역사의 기적'이라고 표현한다.


스파르타는 가치관이 달랐다. 

건물을 짓는 데도 아름다움을 즐기는 데도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영토를 넓히고 노예의 숫자를 늘리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했다. 

매년 이웃 폴리스들을 쳐들어가서 전쟁을 하면서 자신들의 전투력을 점검하고 확인했다. 전쟁에서 늘 승리했다. 그리고 패배한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었다. 시민의 수보다 노예의 수가 많아졌다.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항상 전시체제를 유지했다. 병영 국가였다. 

아이를 낳으면 산 아래로 굴려서 살아남는 아이만 길렀다는 비정한 이야기는 역사가 플루타르코스가 남겨 놓은 것이다. 학자들이 어디서 그렇게 했는지 찾아보았지만 아직 찾지 못했다. 결국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강건한 시민을 육성하기 위해 집단 교육을 의무적으로 시행한 것은 확실하다. 


남자아이들은 일곱 살이 되면 삭발하고 신발도 없이 집에서 내쫓았다. 스무 살까지 밖에서 살게 했다. 

뛰어놀 나이에 군인이 되어 13년 간 군대 생활을 한 것이다. 

피가 묻어도 보이지 않도록 붉은 망토를 한 벌씩 주고 수시로 몸싸움을 하게 하는 것이 훈련이었다. 

먹을 것도 넉넉히 주지 않았다. 도둑질도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걸리면 너그럽게 눈 감아준 것도 아니었다. 잡히면 채찍질을 했다. 

아이들은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싸웠다. 이 무슨 삭막한 인생인가!



결혼은 나라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첫 10년간은 밤에만 만나게 했다. 

남성들 간에 연대감에 도움이 된다며 동성애를 조장했다. 

엄한 훈육으로 강인하고 용맹한 인간을 키운다고 주장했지만 그들의 선택은 좋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남긴 것은 무엇인가? 

올리브 농장 한 귀퉁이에 약간의 석재가 남아 있다. 

저 높은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서 석양빛을 받으며 장엄하게 버티고 있는 아테네의 신전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스파르타 교육은 그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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