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군대는 4세기 동안 제국을 세우고 다시 4세기 동안 국경을 지키며 제국을 지켰다.
3천3백 명이 어떻게 50만 대군으로 성장했을까? 그래서 1만㎞ 국경을 지키게 되었던 것일까?
로마인들의 군대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전쟁 시즌이 시작되는 3월이 되면 원로원은 병력의 규모를 결정하고 ‘전쟁의 신 마르스 벌판’에
징병 대상자를 불러 모았는데, 세금을 내는 시민만 불렀다.
노예는 아무리 용감하다 해도 군인이 될 수 없었고, 자유인이라도 모두 군인이 될 수 없었다.
보충대에 들어가 25년간 복무하고 나서 시민이 된 후 입대했다.
신분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돈도 필요했다.
전장에 나가는 데 필요한 무기와 보호 장비를 자신이 사서 준비해야 했으므로
능력이 없으면 시민이라도 전쟁에 나갈 수 없었다.
돈이 많을수록 전장에 나갈 확률이 높았다. 재산에 따라 여러 등급으로 나누어
등급별로 전쟁에 나갈 사람을 추첨해서 뽑았는데, 돈이 많은 집단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
뽑힐 확률이 높았고 가난한 집단에는 사람이 많아 뽑힐 확률이 낮았다.
로마인들은 이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지킬 것이 많으니
당연히 더 많이 싸워야 한다. 게다가 돈이 많아 더 좋은 무기를 장만할 수 있으니 더 잘 싸울 수 있다.
병역은 의무가 아니라 명예로운 권리였다. 신분이 높을수록 할 일이 더 많아지는 프랑스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였다.
그런데 사실 이 권리에는 명예 말고도 대단히 실용적인 측면이 있었다는 점은 지적해야 한다.
전쟁에 나가는 것은 이긴 후에 전리품을 배당받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니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였다.
전쟁터가 점점 멀어지고 전쟁 기간이 길어져 직업 군인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적어도 그랬다.
로마 군대에 승리를 가져다준 여러 특징 가운데 학자들이 가장 많이 거론하는 것은 진취성이다.
전통을 고집하지 않고 더 나은 것을 받아들이는 미덕은 당대에는 없었던 특이한 개성이었다.
로마인들은 자신들의 장비보다 더 나은 것을 보면 망설이지 않고 바꾸었다.
가늘고 긴 투창은 원래 삼니움 사람들의 것이었다.
절반은 쇠로, 나머지 절반은 나무로 만들어 가벼웠기 때문에 던지면 멀리까지 갔으며,
일단 박히고 나면 이음매가 부러져 빼서 다시 쓸 수 없었다.
군인들이 서로 붙어서 밀집대형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큰 '사각형 방패'도
원래 삼니움 군대의 것이었다.
허리에 차고 다니며 육박전에서 요긴하게 썼던 그 유명한 ‘중검’ 즉 단도보다 길고 장검보다 짧은,
끝이 뾰족한 칼도 원래 스페인 군대의 것이었고, 귀만 남기고 양쪽 뺨 위로 쇠 조각을 내려뜨려
얼굴을 보호하는 투구도 켈트족의 것이었다. 로마군은 이것들을 모두 가져다 좋게 만들었다.
로마 군단은 대단히 체계적이고 조직적이었다.
준비, 진행, 병참에서 순서를 정하고 “빠르고 정확하게” 실행했으며
인적 물적 모든 자원을 규격화하고 조직화했다.
로마인의 병영 건설은 한 예다.
로마 군대의 가장 큰 단위인 ‘레지오’는 5,000~6,000의 병력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동하면서 어디서나 같은 크기로, 같은 평면도에 따라 병영을 만들었다.
축구장 5배 크기의 땅을 찾거나 아니면 숲을 치우고 새로 조성했다.
둘레에 1m 깊이 참호를 파고, 그 흙으로 1m 높이 담장을 쌓았다.
그 안쪽으로 뾰족하게 깎은 나무를 촘촘하게 박아 울타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네 면 모두 중간 지점에 문을 내고 장교의 텐트부터 사병의 텐트까지 정해진 도면에 따라
같은 간격을 두고 설치했다. 2시간 동안에 이 모든 작업을 끝냈다.
그리고 적군이 쓰지 않도록 떠나기 전 불태웠다.
로마 군대의 규율을 매우 엄격했다. 직업 군인들의 경우에 더했다.
규율을 어기면 구타와 채찍으로 처벌받았다. 너무 가혹했지만 전투에 패하면 모이게 해서
열 명에 한 명씩 처형하기도 했다.
훈련은 철저하고 혹독했다. 투창이나 검술의 훈련은 물론이고, 매일 일정한 리듬으로 걷게 했다.
징을 박은 샌들을 신고 하루 약 30㎞ 정도를 행군했으며 이동할 때는 장비와 무기 합해서
약 50㎏까지 지고 걸었다. 로마 군대는 대단히 빠르게 이동한 군대였다.
19세기 나폴레옹 군대가 등장하기 전까지 그 이동속도를 추월한 유럽 군대는 없었다.
18~25세 나이에 군역을 시작하고 나서는 2년 훈련 기간을 포함해서 25년 근무하고 45세에 퇴역했다.
로마인의 기대수명이 47세였으니 퇴역 후 노후 기간은 길지 않았다.
'베테랑' 즉 퇴역 군인은 숫자가 많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