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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아 May 27. 2024

휴! 중립은 힘들어,
차라리 싸우고 말까? : 스위스

전쟁이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외국 여행이 자유로워졌을 때 

유럽으로 떠난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나라는 스위스였다. 

인터라켄에서 톱니바퀴 열차를 타고 올라가 알프스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다. 

스위스는 관광국가가 아니다. 사람들이 무뚝뚝하고 불친절하다. 

우리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때문에 관광객이 늘어나자 짜증을 내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스위스를 좋아하는 것은 ‘영세 중립국’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나쁜 평화라도 전쟁보다는 낫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언제 들어도 좋은 마법의 단어다. 

우리 군사력이 북한보다 40배 강하니 싸우면 이긴다. 그 생각만 하는 사람들은 어리석다. 

우리가 더 세다는 것을 보여주다가 몇 백만이 죽을 수 있고, 

그 안에 내가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하는 것이다. 


‘중립’이란 무엇인가? 이 편도 저 편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자기편’이다. 

중립? 좋지. 누구든 점잖게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막상 싸움이 나면 달라진다. 

‘중립’이라고 소리 질러 봐야 소용없다. 

나라들 사이도 같다. ‘중립’이라고 선언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면 우리도 진작에 했겠지! 

2차 대전 초기 네덜란드, 덴마크, 노르웨이는 ‘중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히틀러의 군대는 

탱크를 밀고 들어왔다. 덴마크는 단 하루 만에 점령당했다. ‘중립’은 내가 원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스위스는 유럽 대륙 한가운데 있는 작은 나라다. 크기가 남한의 절반도 안되고 인구도 850만으로 

서울보다 적다. 그런데 이 작은 나라가 한 나라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갈라져 있다. 

무엇 하나 통일된 게 없다. 공식 언어가 4개이고, 종교도 신교와 구교 비율이 비슷하다. 

각기 다른 정부, 의회, 법체계, 조세 제도로 운영되는 자치주 26개가 모인 연방 국가다. 

정책은 주민이 투표를 통해 결정한다. 직접민주주의다.

고대그리스인들만큼 맹렬하게 독립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외부의 침공을 단독으로 막을 수 있었다면 절대 연방으로 모이지 않았을 것이다.

 

대단한 싸움꾼들이었다. 중세기 내내 유럽 전역에서 벌어지는 온갖 전쟁에 용병으로 참가했다. 

자치주들이 16~60세 사이 남자들을 징병할 수 있어서 대규모 군대를 일으킬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용감했다. 프랑스 루이 16세의 근위대 스위스인 600명이 혁명군에 맞서다가 

한 명도 안 남기고 전원 사망했다. ‘루체른의 사자상’이 그들을 기린다. 

바티칸은 아직도 스위스 청년들만 모집해서 근위대를 조직한다.


용병은 그들의 직업이었다. 공기가 좋은 산간 지방에서는 인구가 잘 늘어나지만 

먹을 것은 충분하지 않아 산 아래로 돈을 벌러 내려가야 했다. 

산 위에서 양 떼를 몰고 다니는 것보다 용병이 되는 것이 벌이가 나았다. 

고용 기간이 끝나면 유럽을 누비며 무역으로 돈을 벌었다.


16세기 초반 스위스 연합군은 침공한 프랑스 군대에 대패했다. 2만 명 가까이 몰살했다. 

다시는 프랑스를 공격하지 않고 충성하겠다고 약속하고 어떤 전쟁에도 중립을 지키기로 맹세했다. 

스위스 중립의 시작이다. 그러니까 ‘자의 반 타의 반’이었던 셈이다.

프랑스와의 약속을 잘 지켜 유럽에서 줄이어 일어난 전쟁 가운데 어떤 전쟁에도 끼어들지 않았다. 

유럽을 휩쓸었던 나폴레옹전쟁이 끝난 후 승리한 나라들은 스위스를 완충 지대라고 하며 중립으로 

공식화했다. 1907년 헤이그 협약으로 다시 한번 ‘영세 중립국’의 권리와 의무를 확인하고 지위를 인정했다. 

그러니까 중립국은 주변 다른 나라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되고 유지되는 것이다. 

2017년 스위스인들은 싸우지 않은지 170년이 되는 해를 기념했다.  


아무리 다른 나라들이 중립이라고 인정해 준다고 해도 그것만 믿으면 안 된다. 천만의 말씀이다.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우크라이나는 지금 절절하게 느끼고 있다. 

최소 50만이 희생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스위스는 징병제다. 군 복무 기간이 260일이다. 유럽에서는 긴 편이다. 여성들도 원하면 군대에 갈 수 있다. 

제대할 때는 배급받았던 무기를 집에 가져간다. 배운 대로 자기 집을 지켜야 할 것이 아닌가?

중무장 국가다. 인구 100명 당 보유 무기가 45.7개로 미국, 예멘에 이어 세계 3위다. 방위산업이 세계 5위다. 교량, 터널 등에는 외부 공격을 차단할 수 있는 수많은 폭파 장치들이 묻혀 있다. 

원자 폭탄도 뚫을 수 없는 두께 1미터 지하 대피소가 마련되어 있다. 


그렇게 지켜야 하는 것이 중립이다. 


그런데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전투에 직접 참가하지 않는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직접 무기를 들지 않더라도 전쟁에 영향을 주는 일체의 행위를 삼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웃 국가들이 가만두지 않는다. 두고두고 괴롭힌다. 


스위스는 2차 대전 기간 동안 나치 독일과 금을 거래해 전쟁 자금을 마련하게 해 주었다. 

무기와 기계 부품을 독일로 수출하고 석탄을 수입하는 거래를 했다. 이탈리아로 가는 나치 군수품 열차를 

통과시켜 주었다. 중립국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영국 일간지가 지나간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들추어 집중적으로 비난을 받게 만들었다. 

최근에는 스위스 업체의 기계 부속품들이 무기가 되어 전쟁이나 

독재 정권의 탄압에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추적해 보도한 기사들이 등장했다. 

업체는 알지 못했으며, 설령 알았다고 해도 산 물건을 어떻게 쓰든 판 사람이 

어떻게 하겠냐고 항변했지만, 기자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요즈음은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시험대에 올랐다. 스위스는 자국 은행에 예치되어 있는 

러시아 자금을 동결했다. 수출의 65%가 유럽연합에 매어 있기 때문에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는 동결한 러시아 돈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무기를 사고 전쟁이 끝나고 나면 

복구에 쓰자고 압력을 받고 있다. 그렇게 하고 나면 러시아와는 끝이다. 

게다가 앞으로 다른 나라가 돈을 맡기겠는가? 


그래도 싸우지 않은 것을 잘한 일이었다. 스위스의 1인 당 국민 소득은 세계 4위다. 

독일, 오스트리아 보다 높다. 스위스 아이들이 받는 용돈을 모두 합치면 아프리카 몇 나라의 1년 예산이다. 

이렇게 잘 살게 된 것은 지난 50년 간 특별한 조건에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총생산의 10%를 차지하는 

금융업에 중립은 절대적 조건이었다. 스위스보다 더 독립적이고 더 중립적이며 더 직업적인 금융기관을 

가진 나라는 없다. 스위스 은행 비밀 계좌는 숨겨 놓는 돈의 대명사가 아닌가? 


이렇게 꼼꼼하고 철저하게 비밀을 지켜주며 성실하게 노력하며 살고 있는데도 

무자비한 독재자나 부도덕한 사업가들과 야합하며 더러운 돈을 벌고 있는 치사한 집단으로 취급을 한다. 


휴! 중립은 힘들다. 


유럽연합의 압력이 너무 심해져서 결국 2009년 비밀 계좌를 없애 버렸다. 

스위스 국민이 아니면 비밀 계좌를 갖지 못한다. 그 많은 도피 자금을 거절해야 하는 스위스인들은 

생각하지 않을까? 


이왕 준비도 다 되어 있는데, 차라리 싸우고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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