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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아 May 20. 2024

엘리트주의는 사하라 낙타에게 전멸의 패러다임이다

사막은 관광하러 가는 곳이 아니다. 볼 것이 없다. 할 것이 없다. 

트레킹, 레이스, 마라톤… 사람들은 무언가 할 일을 준비해서 사막에 간다. 

꼭 사막에 가서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색다른 환경이 주는 신선한 자극이 있을 것이다.   


사막의 메마른 땅은 정서를 메마르게 한다. 상상력은 할 일이 없어 길을 잃는다. 

별난 단어를 찾아 억지 부리지 못하고 무력해진다. 

『울고 싶을 땐 사하라로 떠나라』라는 책 제목에 놀랐다. 사막에 가는 데 그렇게 갈급한 의미가? 

사하라를 가면 실컷 울 수 있다는 것일까? 아니면 눈물이 쑥 들어간다는 것일까?  


사막은 무얼 하러 가는 곳이 아니다. 나의 생각이다. 

눈에, 어깨에, 다리에 잔뜩 들어 가있는 힘을 빼는 곳이다. 

해가 떠서 질 때까지 조용히 망연하게 앉아 있는 곳이다. 

고요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라는 뜻의 단어 '관조'가 있는데, 그것을 하는 곳이다. 


조용한 시간이면 자신의 내면을 들어다 보라, 좀 더 자신이 되어보라, 이런 말은 듣지 않으면 좋겠다.

망망한 모래 벌판에서 그 같이 어려운 일을 하라는 주문을 받고 싶지 않다. 

사막이 아니라 어떤 곳에서도 '너 자신을 알라'는 말처럼 난해한 말은 없지만. 

“사막은 무엇을 깨닫기 위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이미 깨달았기 때문에 가는 곳이다.” 철학자 시오랑(Cioran)의 말이 맞는다.



그렇게 아득하고 막막한 사막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에게 독이 되고, 남에게 해가 되는 악심이 없다. 

놓쳐 버린 기회, 저질렀던 실수, 가슴 때리는 후회, 배반으로 날카롭게 찔린 상처가 쌓여 내뿜는 독소가 없다. 

바짝 야윈 몸에는 그런 것이 들어갈 여지도 보이지 않는다. 

타겔무스트를 두른 사이로 저 깊숙이 보이는 두 눈은 겁도 없고 겁도 주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그랬다.


모래 위에 깔아 놓은 카펫에 앉아 환영한다는 시를 읊어주는 노인에게도,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는 젊은이에게도, 흙바닥에 앉아 부실한 도구로 은을 녹여 팔찌 목걸이 귀걸이를 만드는 젊은이에게도, 시장에서 열대 과일과 마른 양념을 늘어놓고 기다리는 젊은이에게도 악의가 없다. 

‘유순하다’는 그들에게 써야 하는 단어다. 


우리는 그렇게 살지 못한다. 

연두색 싹이 나서 기세등등한 녹색이 되었다가 갈색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그 위로 눈이 덮이는 변화무쌍한 자연 속에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 수 없다. 

우리에게는 변화가 강박이다. 매일매일 새롭게 달라져야 만족한다. 

변화의 압박으로 몸이 저릿저릿해야 살아 있다고 느낀다. 

사막 사람들처럼 손과 발이 두둑해지고 손바닥과 발바닥에 굳은살이 박힐 시간이 없다. 

관광여행사에서는 북아프리카 사막 관광을 권하지 않는다. 며칠 동안 몇 개국을 주파해야 정신적 심리적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사막은 너무 무료하고 삭막한 곳이다.   



사막은 신의 실수였다. 그런데 신은 실수를 바로 잡았다. 어떻게? 낙타를 만들어서. 

“신은 사막을 만들었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낙타를 만들었다.” 투아레그족의 속담이다. 


아, 낙타! 이 이상하게 생긴 짐승은 사막과 한 몸이다. 

몇 년에 한 번씩 비가 지나가는 땅에 듬성듬성 솟아 있는 바짝 마른풀들 사이로 혼자 멀거니 있는 것을 보면 모래와 구분도 가지 않는다. 

저기, 낙타! 알려주는 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잘 움직이지도 않아서 기다렸다가 아, 저기 있네 했다.


끼리끼리 뭉쳐서 다니지만 그냥 혼자 서있어도 별로 상관없는 것 같은 덤덤한 동물이다. 

혼자 있어도 별로 외로워 보이지 않고 측은해 보이지 않는다. 

원래 잘 싸우지 못해서 물 웅덩이에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멀리 언저리를 떠돌다가 

물도 없고 풀도 없는 곳에서 살게 되었다. 

 

그런데 사막의 혹독한 기후에 낙타만큼 저항할 수 있는 동물은 없다. 

모래바람이 불면 코를 막고 눈을 감는다. 

짐을 싣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15일까지 견딘다. 

겨울이 되어 초목에 물이 많아지면 한 달 이상을 물을 따로 마시지 않고 지낸다. 


이렇게 거의 물을 마시지 않고 살면서도 이상하게 한 번에 어마어마한 양의 물을 마실 수 있다. 

100ℓ가 넘는 물을 한 번에 마신다. 

낙타 말고는 그렇게 많은 물을 한 번에 마실 수 있는 동물은 없다. 

다른 동물은 그렇게 마시면 죽는다. 


낙타는 몸에서 물을 만들기도 한다. 낙타의 등에 불쑥 올라와 있는 혹이 물 주머니일까? 전혀 아니다. 

물이 아니라 지방질이 있다. 그 지방질에 포함되어 있는 수소가 공기를 마시면 들어오는 

산소를 결합해 H²O 물이 된다. 

지방질 40㎏이 있으면 물 40ℓ가 나온다. 

이동식 물 생산 공장이다. 


그런데 만든 물을 인간에게 나누어 주지 못한다. 잘된 일이다. 

인간은 너그러운 짐승이 아니다. 물을 낙타 등에 싣고 가면서 낙타에게 절대 주지 않는다. 카라반의 규칙이다. 사람에게 물을 주면 낙타만 손해다. 



사막 사람들은 낙타를 아낀다. 귀중한 재산이라 함부로 잡지 않는다. 

그들이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넌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거의 타지 않는다. 

대개는 낙타 옆에서 나란히, 낙타처럼 쉬지 않고 걷는다. 

기도를 할 시간이면 동쪽을 향해 짧게 바닥에 엎드렸다가 금방 일어나 다시 걷고, 목이 마르면 물을 얼른 마시고 다시 나란히 걷는다. 


저항력이 강한 낙타도 사막 횡단은 죽도록 고된 작업이다. 

사막 횡단하기 전에 몇 달, 횡단을 마치고 나서 몇 달, 마른풀과 물이 있는 곳에서 빈둥빈둥 쉬어야 한다. 


낙타는 하루 12시간을 쉬지 않고 걸으며 대개 16년~18년 산다. 

이가 닳아서 풀을 씹지 못하게 되면 죽는다. 

지칠 때까지 계속 걷다가 피로가 극도에 달하면 갑자기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조용히 숨을 거둔다. 

그냥 두고 떠난다. 모래 벌판에 하얗게 탈색되어 형체만 남은 뼈가 보이면 낙타다.



사막 사람에게는 요즘도 낙타가 여전히 긴요한 교통수단이다. 

유목민들은 자동차보다 낙타가 월등하게 경제적이라고 평가한다. 

차는 편하고 빠르지만 돈이 든다. 연료도 사야 하고 고장이 나면 부속도 사야 한다. 

낙타는 돈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사방에 돋아 있는 풀과 나무에 달린 잎만 있으면 된다. 


단 모래 땅에서 핑크색 꽃을 예쁘게 피우는 협죽도는 안 된다. 먹으면 죽는다. 

천적은 늘 생각하지도 않은 곳에 따로 있다.    


낙타 고기는 귀한 손님에게만 대접하는 음식이다. 

비스크라와 엘 메니아에서 낙타 고기 쿠스쿠스(couscous)를 먹었다. 

기름기 없는 소고기처럼 퍽퍽한 편이었지만 별로 질기지는 않았다. 

말해주지 않았으면 소고기 색갈이 좀 진하네 하고 먹었을 것 같다. 


사하라 관광 클리셰는 한 줄로 걷는 낙타다. 

필사적으로 대열을 유지해야 한다. 

대열을 벗어나면 길을 잃고 죽는다.


사막 횡단 대열을 유지하기 위해서 꼭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알제리인 친구의 질문이었다. 글쎄, 뭘까? 


맨 앞에 제일 느린 낙타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빠르고 날쌘 낙타를 선두에 세워 놓으면 제 능력을 발휘하느라 마구 빠르게 걸어가고, 

그러면 뒤에서 따라가지 못하는 낙타 생기고, 그러면 전체가 흩어져 버린다. 

그러면 모두 죽는다. 


인간들은 아이들을 어디 데리고 갈 때 말한다. 

네가 잘 걸으니 앞에 가거라. 

그리고 뒤에 처지는 아이들을 감독한다. 

똑똑한 인간 하나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생각하는 멘털이다. 


낙타는 그렇게 하면 다 죽는다. 엘리트 체제란 낙타 무리에게 전멸의 패러다임이다. 


뒤에 처지는 아이를 뒤에 두고 재촉할 것이 아니라 낙타처럼 앞에 가게 하고 

빠른 아이를 천천히 가게 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엄청난 불행이 닥칠까? 

불행이 닥치지 않는다 해도 인간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부질없는 생각이다.


낙타 카라반은 소규모로 20세기 중반까지 남아 있었다. 1960년대를 끝으로 사라졌다.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은 관광 상품이다. 이제 사하라는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를 따라 횡단한다. 


알제리 수도인 알제(Alger)에서 남쪽으로 내려가 니제르(Niger)를 지나 나이지리아(Nigeria)의 라고스(Lagos)를 잇는 사하라 횡단 도로 4,500㎞가 건설되어 있다. 

서울~부산 간 고속도로의 약 14배나 되는 먼 거리지만 연료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알제리의 휘발유 가격은 ℓ당 우리 돈으로 400원이다. 



* '협죽도'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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