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평원에 있는 한 뼘 좁은 땅 오아시스에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대추야자나무 덕분이다.
대추야자는 저절로 자라는 나무가 아니다.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에 사람이 심은 것이다.
처음에는 물을 넉넉하게 주어야 하지만 몇 년 주고 나면
스스로 물을 찾아 뿌리를 깊이 땅에 박고 자라는 씩씩한 나무다.
대추야자는 사막 환경에 최적화된 식물이다.
가지들은 나무 꼭대기 위로 몰려 분수 모양으로 뻗고 자라는데,
잎의 표면을 막이 한 겹 덮고 있어 수분이 날아가지 않는다.
줄기도 죽은 껍질로 두껍게 싸여 있어 수분이 빠져나가지 않는다.
다양한 종류의 갑옷을 찾아서 잘 두르고 있는 나무다.
뿌리는 땅속 15m까지 뻗어 필요한 물기를 찾아 빨아올리는데,
아파트로 치면 5층이 넘는 길이까지 땅을 뚫고 내려간다.
모래밭 한가운데서 30m 높이까지 수직으로 곧게 서있을 수 있는 것은 그 엄청난 뿌리의 힘이다.
대추야자나무의 그늘은 자연산 냉장실이다.
뜨거운 바람과 뜨거운 햇빛을 막아 시원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식물이 뿜는 습기를 공기 중에 잡아 두었다가 아침이 되면 이슬을 맺어 돌려준다.
그 그늘에서 오렌지나 레몬 같은 과실나무를 키우고, 그 과실나무 그늘에 채소를 심어 기른다.
그늘을 한 치도 버리지 않고 모두 알뜰하게 쓴다.
그늘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사막에 가면 알게 된다.
조금이라도 그늘이 보이면 그 속에 머리부터 들이밀고 싶어 진다. 자동차 그림자도 그늘이다.
모자 없이 다니다가 천 조각 하나를 머리에 올리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깜짝 놀란다.
그것도 그늘이라고!
오아시스 사람들에게 대추야자나무 그늘 아래 모여 앉아 박하 차를 석 잔 마시는 것은
‘천국에서 맛보는 행복’이다.
살림이 넉넉한 사람들은 대추야자나무가 우거진 곳에 여름 별장을 가지고 있다. 나름 운치가 있다.
해가 지고 선선해진 후에 바닥에 깔린 카펫에 앉아 설탕이 흠뻑 들어간 쌉쌀한 박하 물을 마시면
햇살로 나른하고 피로해진 몸이 당분으로 속속들이 위로를 받는다.
과연 천국이라 할만하다.
오아시스 사람들에게 대추야자는 버릴 것이 없는 나무다.
줄기로 집을 짓고 가구를 만든다. 단단하기 이를 데 없다.
나무 비슷한 것은 전부 대추야자다. 다른 나무가 자라지 않으니!
넓은 잎이 달린 가지는 지붕을 덮고 울타리를 만드는 재료가 되고 돗자리, 바구니, 밧줄의 재료도 된다.
대추씨도 버리지 않고 빻아서 낙타가 먹게 한다.
꼭대기 가지를 쳐내면 나오는 수액은 봄 절기 여러 달 동안 가족들이 마시는 음료다.
들큼하다. 발효시키면 맥주 비슷해진다.
대추야자나무는 은행나무처럼 암수 나무가 따로 있어 수정해주어야 한다.
수정해서 맺은 열매는 무거운 묶음으로 땅을 보며 휘어져 매달려 있다.
나무 한 그루에 달리는 열매가 천 개나 되는 데, 그 많은 열매가 아주 가느다란 갈색 가지들에 매달려 있다.
열매는 끈끈한 단맛 덩어리다. 말리면 무게의 절반까지 설탕이다.
당분이 많아서 더운 날씨에 아무리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는다.
열매에 들어 있는 다섯 종류 당분은 시간을 두고 차례차례 흡수되어 피로를 회복시켜 주고 에너지를 준다.
사막 지역의 시장에는 어디나 갈색 열매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알제리 비스크라 근방 ‘톨가(Tolga)’에서 생산되는 대추야자열매가 유명하다.
일 년에 한 번 지하수가 범람하는 데, 지하수에 있는 소금기가 열매의 단맛을 더 높여 준다.
우리가 말하는 ‘단짠’이다. 알제 공항 가게에 쌓여 있는 선물용 대추야자 팩을 살펴보면 산지가 대개 톨가다.
서울로 가져온 대추야자열매를 먹고 나서 씨를 화분에 심어보았다.
줄기가 높이 올라가고 녹색 잎이 나와 뻗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힘이 없었다. 도무지 열매가 매달릴 것 같지 않은 몽롱하고 허약한 풀이었다.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강한 햇살이나 건조한 모래가 없으니
그저 그렇게 시간을 보내기로 작정을 한 것 같았다.
맞지 않는 환경에서 자라게 하는 것은 벌을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