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성당들은 주인이 있을까? 있다.
일부는 국가나 지자체의 소유이고 일부는 민간단체나 개인의 소유다. 건물의 관리는 물론 주인 책임이다.
국가나 지자체는 세금이 있으니 일단 문제가 없다. 오래된 건물에 손 볼 것이 점점 많아지는 데,
예산은 부족해 어려움을 겪기는 하지만. 그러나 사적 소유는 상황이 어렵다.
국가 보조금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하늘의 별을 따는 것이 낫다.
유럽 관광을 하면서 성당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겠지만,
성당 건물 관리는 쉬운 일이 아니다. 정기적으로 안전 진단을 해야 하고 구조적인 문제가 있으면
예산을 들여 해결해야 한다. 벽이나 기둥에 금이 가면 철제 못을 박아 조이거나 링으로 묶어주고
위에서 잡아 올리거나 아래서 받쳐준다. 갑자기 무너지면 안 되니 꼭 해야 하지만, 큰 예산이 들어간다.
건물 외벽과 돌출된 조각들도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혹시 떨어지기 라도 하면 큰 일이다.
몸에 자일을 묶고 인부들이 매달려 가까이 가서 두드려보고 만져보고 문질러 보고
삭아서 떨어질 위험이 있으면 그물을 씌워 두었다가 한꺼번에 보수한다.
너무 많이 손상되어 있으면 부분 부분 돌을 잘라내고 새것을 똑같이 만들어 끼워 넣는다.
문화재급 성당 지붕 위에는 석재 가공 팀이 상주하면서 작업한다.
프랑스인들은 이집트에서 3천 년 동안 캐낸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석회암을 파내어 고딕 성당을 지었는데,
석회암은 지하에 있을 때는 과장하자면 톱으로 썬다고 할 정도로 무르다.
파리 지하철이 1900년 개통된 것은 지하에서 파고 들어가 터널을 만들기 쉬웠기 때문이다.
고딕 성당 안과 밖을 장식하고 있는 섬세한 조각상도 석회암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돌, 화강암은 그렇게 못한다. 너무 단단해서 쪼개진다.
석회암은 밖에 나오면 단단해져서 건물 짓기 좋은 석재이지만, 공기 중에 떠 있는 산 성분에 부식되어
먼지가 쉽게 쌓인다는 단점이 있다. 대도시 성당들이 거무스레한 것은 그 때문이다.
더러워졌으니 때를 벗겨야 한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섬세한 조각들이므로 평평한 바닥 닦듯이 할 수 없다.
작은 솔로 문지르거나 레이저 광선을 쏘아 때를 빼고 약품 처리를 한다.
그 거대한 성당 벽을 칫솔로 닦는 다니! 감탄사가 흘러 나오게 하는 끈기다.
최근에는 액체 라텍스를 붓으로 발라서 떼어낼 때 때가 묻어 나오게 하는 방법도 쓴다. 문지르는 것보다
쉽지만, 어떻게 하더라도 시간이 많이 들여 긴 호흡으로 해야 한다.
스테인드글라스는 면봉 비슷한 작은 도구로 문질러 닦는다. 유리가 너무 약해져 있으면
유리판을 양쪽에 대서 보강하기도 하고, 똑 같이 만들어 아예 갈아 버리기도 한다.
큰 성당들은 몇 사람 전문가들이 평생을 바쳐 일한다.
매일매일 해야 하는 일도 한 둘이 아니다. 아침이 되면 쇠로 만든 무거운 열쇠로 여기저기 문을 열어야 하고, 시계에 밥을 주어야 하고, 종을 울려야 하고, 성수를 새로 갈아야 하고, 바닥을 청소해야 하고 등등.
일일이 사람의 손이 가야 한다. 파리 노트르담은 50명, 독일 쾰른 대성당은 70명이 정규직으로 일한다.
건물 유지비도 녹녹지 않다. 파리 노트르담 성당은 전기료만 매달 한화 70억이다.
겨울이면 난방비가 추가된다.
입장료를 받으면 되지 않을까? 안 된다. 왕궁이나 고성은 입장료를 받지만 종교 건물은 입장료를 받지 못한다. 방문객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혁명 때 종교를 분리시킨 후유증이다.
국가에서 주는 보조금으로는 건물을 보수하고, 성당 내부에서 양초나 묵주를 판매해 전기료 등
기타 유지비를 충당한다.
1960년대를 마지막으로 프랑스에서는 교회를 더 이상 짓지 않는다.
설령 신축한다 해도 저비용으로 단시간에 올린다. 1922년 파리 교외 도시 렝시(Raincy)의 교회는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해 3개월 만에 완성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건설 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는
유럽 대륙에서 지극히 예외적인 일이다. 1884년 시작해서 현재 140년째 공사가 계속되고 있어
거의 중세 성당과 맞먹는 건축 기간이다. 관광 수입으로 공사를 하기 때문이다. 2026년 완공 예정이다.
유럽인들은 이제 교회에 가지 않는다. 절반 이상이 ‘종교’라는 단어를 들으면 ‘평화’ 보다는 '전쟁'을 떠올린다. 프랑스에서 자신이 무신론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절반이 넘는다. 독일이나 북유럽에는 더 많다.
예수의 부활을 믿는 사람도, 죽으면 천당에 간다고 믿는 사람도 없다.
지난 세기 중반 프랑스인의 95%가 영세를 받았다. 지금은 30%다.
중요한 기독교 지역은 이제 유럽 밖에 있다.
1950년대 4만 5천이었던 신부님의 수가 지금은 5천이다. 파리의 성당에 들어가서
미사를 알리는 광고를 보면 아프리카 출신 신부가 눈에 띈다. 한국인 신부 한 분은 성당 몇을 혼자 관리한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집이 빨리 망가진다. 사방에 버려진 성당들이다.
자물쇠는 녹이 슬고 깨진 창 틈으로 보이는 안에는 풀이 무성하다.
리모델링해서 결혼식이나 세미나 같은 행사를 할 수 있는 리셉션 홀을 만들면 훼손은 일부 막을 수 있다.
그러나 골조를 보강하려면 너무 비용이 많이 들어 포기한다.
몇 년 전부터 부동산 시장에 작은 성당들이 매물로 나오고 있다.
평당 가격이 싸고 넓으며 작은 숲이 딸려 있어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쇼룸이나 전시장으로 개조하기도 하고 개인 주택으로 개조하기도 한다.
천장이 높고 한 통으로 되어 있어 특이하고 개성 넘치는 인테리어를 할 수 있다.
성당 건물만 취급하는 전문 중개업자와 인테리어 디자이너들도 생겼다.
성당은 이제 영적 체험보다는 예술가의 창작품을 보기 위해 가는 미술관이 되었다.
마티스가 죽기 전 건축을 감독하면서 그림들을 남겨 놓은 프랑스 니스의 로제르(Rosaire) 채플,
피카소가 벽화를 남겨놓은 프랑스의 발로리스(Vallauris) 채플, 샤갈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남아 있는
스위스의 프라우뮌스터(Fraumünster) 성당 등에 사람들이 몰린다.
영혼도, 초월도, 신도 없는 유럽의 ‘포스트기독교시대’에도 성당의 소명은 여전히 인간 영혼의 구원이다.
그러나 수행 방식이 달라졌다. 기도와 묵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문화 관광을 통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