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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아 Jul 26. 2024

관광으로 살아 남은 베네치아는
관광으로 죽어가고 있다

적이 물러갈 때까지 잠시 피신했던 그 개펄에 왜 살겠다고 결심했을까? 

북해 소금물에 잠겨 있던 땅을 개척한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베네치아는 거대한 숲이 통째 거꾸로 물에 박혀 있는 도시다. 나무를 베어다 개펄에 박아 땅을 만들었으니! 

감탄과 존경을 표시할 수밖에 없는 엄청난 노고였지만 사실 멀미가 난다. 

좁은 길을 걷다 보면 옆에 바짝 붙어 출렁거리는 물이 미덥지 않고 불안하다. 

땅처럼 견고하게 나를 받쳐주지 않겠지! 

베네치아 대학 사무실에 뚫린 투명한 유리 바닥 아래로 출렁거리는 바닷물을 보는 것은 얼마나 

공포스러웠던지 상상 이상이었다. 그대로 떨어져 물속에 풍덩 빠질 것 같았다. 


베네치아인들의 과거는 그리 영광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제자 마가의 유골을 돼지고기에 싸서 

훔쳐다가 수호성인을 삼았다. 4차 십자군 때는 기독교 세계 전체의 치욕이 될 일을 했다. 

천 년도 더 지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대신 사과했다. 무슨 일을 했기에?


예루살렘에 가기 위해 지중해를 건너야 했던 4차 십자군은 베네치아에 수송을 의뢰했다. 기대만큼 인원이

모집되지 않았다. 배와 물자를 준비하느라 썼던 돈을 갚으라! 베네치아 ‘조직위원회’가 재촉했다. 

난감해 하는 십자군 측에 베네치아인들이 말했다. 

돈이 안 되면 우리에게 필요한 일을 하라. 땅을 정복해 달라!   


동쪽 비잔틴 제국에는 날벼락이었다. 50만 인구 중 같은 기독교도 십자군의 칼을 피한 것은 3만이었다. 

베네치아가 부강한 제국이 된 것은 비잔틴제국이 베풀어준 무역 특혜 덕분이었는데,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역사적인 배은망덕이었다. 

약탈도 했다. 그때 빼앗아 가져 온 예수님의 십자가를 넣은 함, 4마리 청동제 말의 상, 

2천 여개 보석이 장식된 제단화 ‘팔라 도로(Pala d'Oro)’는 지금도 산 마르코 성당에 가면 볼 수 있다.  




베네치아는 번창했다. 막강한 ‘바다의 제국’이 되었다. 조선소 ‘아스날(Arsenal)’에서 배를 만드는 

작업자가 2만이었고, 지중해를 누비며 장사를 하는 소속 선박이 6천이었다. 

계속 나무를 박아 땅을 늘여 가며 성당, 궁전, 저택을 짓고 호화롭게 치장했다. 시민 대표들이 모여 회의를 

했던 '두칼레(Ducale) 궁전' 대회의실의 천정과 벽은 금박을 두른 그림과 장식으로 호화로움의 극치다.  


불굴의 의지로 무장한 베네치아 사람들의 강한 기질은 16세기 레판토 해전에서 해군력을 잃고 기울기 

시작한 다음부터 더욱더 빛을 발했다. 대단한 생존력이었다. 유럽 전체의 대표주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생존을 위해 여러 사업을 개발했다. 인쇄업에 뛰어들었고, 유리 공예를 시작했다. 

지금은 화재 위험 때문에 ‘무라노’ 섬에 모아 놓은 유리 공방들은 이때 생긴 것이다. 


화가와 음악가들이 모여드는 문화 도시가 되었다. 오페라가 처음 공연되었다. 비발디의 ‘사계’는 얼마나 

경쾌하고 얼마나 화려한가! 너무나 현란해서 때로는 마음 깊이 슬퍼진다. 


쾌락의 도시가 되었다. 카지노가 열려 도박이 성행했고 카니발이 열렸다. 까만 삼각 모자, 코가 길쭉하게 

나온 흰 가면, 긴 망토. 신분을 감춘 사람들이 어둡고 좁은 골목을 배회했다. 

‘카사노바’라는 유럽 최고의 바람둥이도 등장했다. 인구 20만 중에 1만 3천 명이 매춘부였다. 

이름과 가격의 카탈로그가 현재까지 남아 있다. 


이탈리아가 통일되면서 베네치아는 한 도시로 추락했다. 찬란한 제국의 역사를 품고 그대로 잠이 들어 

버린 것 같았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였다. 


그래도 베네치아였다. 마술처럼 물 위에 떠 있는 건물, 반사되어 흔들리는 그림자, 겨울비가 내리면 탁하고 

무거운 바닷물이 주는 우울하고 퇴폐적인 분위기…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말처럼 “한 때 전성기를 누렸던 아름다운 여인”이 금박으로 

화려하게 수놓은 연두색 실크 원피스를 끌며 조용히 걸어가는 모습을 연상시켰다. 

바이런, 괴테, 쇼팽, 프루스트… 수많은 예술가들이 몰려들었다. 낭만주의 예술가들에게 베네치아는 

‘세레니시마(serenissima)’, ‘가장 고귀한’ 도시였다. 

낭만주의와 함께 그 역사도 끝났다.


현재 베네치아가 생존을 위해 마지막으로 올인하고 있는 생업은 관광이다. 

1세기가 훨씬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비엔날레’가 있다. 홀수 해 가을에 열린다. 

여러 예술 분야에서 우수작을 선정해 도시의 상징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다. 

우리 영화인들이 여러 차례 상을 받았던 ‘베네스영화제’도 그중 한 분야다. 


1970년 대 다시 발굴한 ‘카니발’도 있다. 한산한 계절에 관광객을 부르는 이벤트다. 유럽 각지에서 일 년 

내내 기다리며 의상을 준비한 아마추어 제작자들이 장거리 버스를 타고 몰려와서 자신들이 디자인한 

별난 의상과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며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한다.  

‘보가롱가(vogalonga)’라는 보트 대회도 있다. 뜰 수 있는 것은 모두 참가할 수 있다. 

등수는 없다. 6시간 안에 결승선에 도달하면 된다. 

스페셜 관광 상품도 있다. 기억에 남을 특별한 예식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웨딩 플래너도 있고, 가정식을 체험 시식하는 코스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는 요리가들도 있다. 셰프 요리를 대접하면서 음악회나 무도회를 곁들이는 아주 비싼 관광 상품도 있는데, 큰 저택을 가지고 있는 귀족의 자손들이 하는 일이다. 


1층이 바다 물에 잠긴 집에 남아서 살고 있는 5만 정도의 사람들은 너무 많은 위협에 시달린다.

해수면은 계속 높아지고 있고 지반과 건물은 계속 가라앉고 있다. 

가을에서 초봄까지 밀물 때는 곳곳에 물이 넘친다. 산 마르코 광장도 일 년에 5~6 차례 물에 잠긴다. 

광장이 물에 잠기기 3시간 전에 사이렌을 울려 대피하게 하니 잘 들어야 한다. 

물이 빠지고 나면 사람들이 무릎 꿇고 엎드려 성당 바닥에 고여 있는 물을 스펀지로 닦아 낸다. 

2050년에는 바다 높이가 60㎝까지 높아진다고 하는데, 스펀지 가지고 될 것인가?

 

연 2천8백만 명 관광객이 버리는 쓰레기가 매년 3만 톤이다. 일일이 사람 손으로 모아 수레에 실어다 

배에 올려야 한다. 수거 처리 비용이 일반 도시의 3배다. 

커플들은 그렇지 않아도 약한 다리 난간에 자물쇠를 매달고 가버린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철이 없다. 

사랑이 오래 가게 해달라고 아무 데서나 그렇게 떼를 쓴다. 그래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 텐데, 

베네치아 남자들이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공구를 들고 다니게 만든다.

광장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면 화를 낸다. 배설물에 건물의 돌이 삭는다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여기까지 왔는데, 새 밥도 주지 못하느냐고 항의한다. 

이제는 크루즈 선박이 심각한 문제다. 거대한 배가 좁은 수로로 들어오면 물이 넘친다. 배의 높이가 

베네치아에서 제일 높은 건물보다 더 높다. 도시 안으로 들어오지 말고 넓은 바다에 정박하는 방법을 

찾아 달라고 시위를 하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베네치아는 관광으로 생존하면서 관광으로 죽어가고 있다. 


베네치아에는 빨간색의 아주 낭만적인 술이 있다. 백포도주에 캄파리와 레몬수를 섞어 올리브를 곁들이고 

레몬이나 오렌지 조각을 올린 것인데, ‘스프리츠(spritz)’라고 부른다.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 해주는 화려한 색깔의 술을 언제까지 카페에 앉아 마실 수 있을지 지켜 보아야 한다.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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